[책세상]이야기로 풀어낸 제주굿판의 도체비들

[책세상]이야기로 풀어낸 제주굿판의 도체비들
김순이의 '제주신화'
  • 입력 : 2016. 10.14(금) 00:00
  • 표성준 기자 sjpyo@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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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잘 먹으면 잘 먹은 값, 못 먹으면 못 먹은 값을 꼭 하고야 마는 성질머리가 있지. 우린 돼지고기 좋아하지. 흑돼지 백돼지 앞갈비 뒷갈비 앞다리 뒷다리 앞머리 뒷머리 열두신뼈 좋아하고, 시원석석한 횟간(膾肝)이나 염통 콩팥 좋아하고, 큰창자 작은창자 좋아하고, 더운피 단피 그거 좋아하지. 수수떡 수수밥 좋아하고, 청주나 탁주나 소주도 좋고, 거 뭣이냐, 양놈들 좋아하는 포도주나 위스키 꼬냑도 좋아하고, 중국 놈들 좋아하는 고량주 죽엽청주도 좋지…"

제주신화는 크게 일반신화와 당(堂)신화, 조상(祖上)신화로 나눌 수 있다. 일반신화는 잉태와 해산, 농사와 풍요 등 인간의 삶에서 필요한 것들을 관장하는 신들이 주인공이다. 당신화는 마을의 본향당이나 신당에 좌정해 마을을 지켜주는 신들이 등장한다. 조상신화는 원래 한 집안에서 모시던 신의 영험함이 알려지면서 마을 전체로 넓혀진 신들의 이야기이다. 서두의 인용문은 일반신화 중 우리 삶의 핵심을 관장하는 열두 신의 이야기인 열두본풀이 열두 번째인 영감본풀이에서 구술하는 내용이다. '먹은 값 하는 도깨비 신'인 영감의 내력을 풀어가는 내용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원시 고구려어와 고려시대 몽골어, 조선시대 중세 언어에 동남아 언어까지 뒤섞인 제주 굿판의 무가(巫歌)는 제주 토박이라도 쉽게 알아들을 수 없다. 저자는 지난 2000년부터 심방(무당)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낯선 제주어를 현대 우리말로 바꾸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제주신화로 기록해왔다. 국문학을 전공한 시인이면서 민속학자인 저자가 오랜 세월 굿판을 드나들며 현장에서 경험하고 훼손된 원형을 복구하려는 학문적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

저자는 구송(口誦)으로 전해온 신화의 느낌을 해치지 않으면서 우리말과 제주어의 멋을 더해 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신화의 주인공인 신들은 물론 신화 속 조연들까지 생생하게 살아나 신화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책은 개인의 한을 풀고, 가족과 친족 간 갈등을 해소하고, 마을의 화합과 상생을 도모하는 기능과 함께 음악, 미술, 무용, 연극의 요소가 버무려진 종합예술로서의 제주 굿판의 모든 걸 즐길 수 있는 제주신화 총설이다.

앞서 인용한 영감본풀이에 나오는 도깨비 신이 되풀이해서 하는 말이 있다. "우린 먹으면 반드시 먹은 값을 한다!" 저자는 먹어도 먹은 값을 하지 않고 입을 싹 닦아버리는 염치없는 사람들을 향한 일갈이라고 해석한다. 여름언덕. 3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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