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대통령의 서가(書架)

[백록담]대통령의 서가(書架)
  • 입력 : 2016. 10.31(월)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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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이맘때였다. 제주문화포럼이 명사들의 책장에서 꺼내놓은 책들로 전시를 열었다. 이름해서 '멘토들의 특별한 책 전시-내 책장의 책'. 문인, 종교인, 교육자, 언론인 등 여러 분야 '멘토'들이 '삶의 어느 한때를 건너게 해준 책,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마음속에 흐르는 책, 함께 나누고 싶은 책'을 내보였다.

3일 동안 이어진 행사의 마지막날, 전시장인 제주시 전농로의 문화공간 제주아트로 향했다. 전시에 초대받은 어느 선생님의 책장이 궁금해서다.

전시장엔 '멘토'마다 책장에서 뽑아온 몇 권씩의 책과 함께 서가 사진이 배경으로 서 있었다. 평소 전해졌던 그 모습처럼 사진 속 선생님의 서가는 애써 꾸미지 않은 얼굴을 하고 벽 한쪽에 자리했다. 그 앞엔 김현, 프로이트, 마르크스, 루카치, 아도르노, 칸트 등이 쓴 10여권의 책이 놓였다. 어느 평자가 '서늘한 전율'이라고 했던 선생님의 글에 때때로 등장하는 저자들이다.

서재는 내밀한 정신의 산실이라는 말이 있다. 외따로 서재를 두지 않더라도 지금 누군가 읽고 있는 책은 그 사람의 내면, 품격 같은 걸 짐작하게 해준다.

그 늦가을의 전시가 떠오른 건 근래에 새삼 화제가 되고 있는 어느 여성 정치인의 '어록' 때문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를 맡았던 2005년에 대변인으로 함께 일했던 그의 말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박근혜 위원장의 자택 서재를 둘러보고 박 위원장의 지적 인식능력에 좀 문제가 있다 생각했다. 서재에 일단 책이 별로 없었고 증정받은 책들만 주로 있어 통일성을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여기가 서재인가'하는 생각을 했다."

그는 박 대통령이 정치적 식견이나 인문학적 콘텐츠가 부족하고 신문기사를 깊이있게 이해 못한다는 말도 했다. 그는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후보 지지를 선언한다.

지난 한주, 최순실씨로 대표되는 인물이 대통령과 몰래 관계를 맺고(비선) 이같은 비정상적인 관계에 연루된 실세들이 나라의 이익이나 권리를 독차지(국정 농단)했다는 뉴스가 쏟아졌다. 보도 대로라면, 대한민국 권력순위 1위가 아무개라는 세간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국민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났다.

2012년 18대 대선에서 전체 유권자의 75.8%가 투표에 참여해 51.6%의 득표율로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얼마전 17%로 추락했다. 그간 흔들림 없는 지지를 보냈던 영남권과 60대 연령층까지 대통령에 대해 비호감으로 돌아섰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과거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주로 연설·홍보 분야에서 최순실씨의 도움을 받았다"는 박 대통령의 대국민사과 이후에는 지지율이 무려 14%까지 떨어졌다. '지난 대선 때'와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만으로 비선의 영향력을 한정한 사과문이 오히려 여론을 싸늘하게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평론가 김현의 글을 거칠게 인용하자면, 책 속에 담긴 삶의 원형들은 이 세계에 무엇이 결핍되어 있고 우리는 왜 불행한가를 반성하게 만드는 표지들이다. 지금의 삶 속에서 책이 그려낸 원형들을 찾아보려는 싸움을 통해 짐승스럽고 더러운 것들은 조금씩 극복된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은 국민들이 느끼는 불행이나 결핍을 극복할 방안을 어디에서 찾았던 것일까.

해외에 머물던 최순실씨가 검찰 소환에 응하겠다며 어제(30일) 입국했다. 온다, 못온다 하던 핵심 인물이 결국은 왔다. 등 돌린 민심을 돌려세우는 계기가 될까. 다시 숨가쁜 한주가 될 것 같다. <진선희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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