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시작하며]사우(思友)를 그리며

[하루를시작하며]사우(思友)를 그리며
  • 입력 : 2016. 12.21(수) 00:00
  • 편집부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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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가 시작된 지 55일. 먼 산을 바라보니 부질없는 상념에 젖어 든다. 씁쓸하고 답답하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 속에는 쉬이 잊혀지는 사람도 있고, 기억 속에 오래 남는 사람도 있다. 기억 속에 오래 남는 사람의 양태는 상대방을 인정하고, 칭찬하고, 따뜻하게 감싸 안는 마음씨를 가진 사람이다. 짧은 만남이더라도 헤어질 땐 아쉬움이 남고, 다시 만날 기약이 기다려지고 믿음이 풍요한 사람이다.

불법(佛法)에서도 이런 사람을 가리켜 선지식(善知識)이라 일컫는다. 석존(釋尊)의 제자가 어느 탈스승에게 "좋은 벗을 사귀고, 좋은 벗과 함께 생활한다는 것은 불도(佛道)에서 한부분의 성공이 아닙니까?"라고 묻자 석존은 "좋은 벗을 가지는 것은 불도의 한 부분의 성공이 아니라 전체의 성공"이라고 화답한다. 좋은 벗과 만나서 대화를 하며 우정을 넓혀 나가는 일은 인생의 승리를 여는 길이다.

그러나 현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난세의 현상이 두드러져 젊은 세대들은 앞날에 대한 위기감을 많이 느낀다. 이런 세상에서 대화를 나누며 즐길 수 있는 친구가 많이 있는 건 행복한 일이다. 더욱 마음속까지 툭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다면 그 복됨을 말해 뭘하랴.

그래서일까 예부터 단 한 사람의 고귀한 친구조차 갖지 못한 사람은 사는 값어치가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친구도 친구 나름이다. 묵(墨)에 가까이하면 반드시 검고, 주(朱)에 가까이하면 반드시 붉다. 그 임금을 알려면 그 좌우를 살펴보아야 하고, 그 아들을 알려면 친구들을 보라고 했다.

이 세상에는 벗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해로움을 주는 사람도 있다. 이로움을 주는 벗은 정직하고, 성실하고, 박학다식하고 따뜻한 인성을 겸비한 사람이고, 해로움을 주는 벗은 아첨하고, 굽실거리고, 말을 둘러대는 사람이다.

그리고 본을 받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본인이 먼저 다가가서 친구로 사귀라는 영국 속담이 있다. 그러면 타인도 너의 친구가 될 것이다. 본디 우정이라는 나무는 그리 빨리 자라지 않는다. 이 나무를 튼실하게 키우려면 오랜 세월 동안 사랑과 진실과 믿음의 거름을 쏟아부어야 한다. 생각하는 우정은 산길 같아서 서로를 아끼고 위하고 정성을 다하는 마음이 오갈 때 이루어진다. 그렇지 않으면 잡초가 우거져서 이내 산길은 묻히고 만다.

금은 불로 시험 되고 우정은 곤경에서 시험 된다. 친구 간에 서로 마음을 터놓고 숨김없이 친하게 사귀는 것을 간담상조(肝膽相照)라 하였고, 친구가 잘되어 기뻐하는 것을 송무백열(松茂栢悅)이라 했다. 소나무가 무성하니 잣나무가 기뻐하는 마음으로 우정의 나무를 키워야 한다. 옛날 중국의 관중과 포숙이 매우 다정하게 서로 도우며 사귄다는 고사에선 관포지교(管鮑之交)란 문자가 생겨났고, 목숨까지 함께할 수 있는 사이를 물경지교(勿頸之交)라 했다.

거문고의 명수 백아와 그의 벗 종자기는 차원 높은 예술적 경지를 넘나들면서 돈독한 인간적 교분을 쌓고, 함께 공감하고 감탄하는 생활을 주고받았다. 종자기가 돌연히 타계하자 그 소식을 접한 백아는 "내 음(音)을 참으로 알아주는 지음자(知音者)가 돌아갔으니 거문고를 타 뭣하랴" 한탄하며 마침내 거문고 줄을 끊었다. 여기에 유래된 것이 백아파금(伯牙破琴)이 아닌가.

필자에겐 앞서 피력한 선현들이 고고한 사우 관계는 아니지만 40여년을 함께 지내온 지기지우(知己之友)가 있다. 내일도 약조한 날이다. 세모의 문물보다 마음의 별을 헤며 소주잔을 나누면서 그간의 회포를 풀어 보리라.

<부희식 제주수필문학회장·전 사대부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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