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으로 읽는 제주예술사](5) 시민 위한 문화전당 '제주시민회관'

[공간으로 읽는 제주예술사](5) 시민 위한 문화전당 '제주시민회관'
'관광 제주' 밑그림 그리던 때 8만 시민 위한 복합공간
  • 입력 : 2017. 06.20(화)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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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민회관 전경.

1년여 공사 거쳐 1964년 7월 3일 옛 오일장터에 화려한 개관
2000여 관객 수용 가능… 연극·영화·실내 체육 시설 등 구비
제주문예회관 건립 전까지 제주음악사 주요 공연 다수 열려


첫 삽을 뜬 지 1년여만에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회색건물은 만국기로 뒤덮였다. 건물 옥상에 올라서면 제주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제주읍에서 제주시로 승격한 해가 1955년. 시 승격 9년만에 8만 시민을 위한 문화전당이 제주시에 생겨났다.

1964년 7월 3일 개관식을 가진 제주시민회관 이야기다. 지금은 전문 공연장, 영화관, 체육 시설 등에 밀려났지만 한때 제주지역에서 벌어진 굵직한 문화·실내 체육 행사는 대부분 제주시민회관을 거쳐갔다.

▶제주관광호텔 이어 김태식이 설계 맡아=1964년 1월 17일, 전국적으로 시행되던 야간통행금지가 제주에 한해 완전 해제된다. 이는 제주를 관광도시로 키우려는 정부의 의지와 무관하지 않았다. 밤 시간대 자유로운 이동이 보장되면 내도 관광객 유인에 도움이 될 것으로 봤다. 1950년대 연간 5000명도 안되던 내도 관광객은 1961년 1만1178명으로 급증하던 때였다.

1961년 태평양지역관광협회(PATA)총회를 통해 제주가 매력적인 관광지로 소개됐고 1965년 3월엔 PATA 대표단이 제주를 찾는다. 1963년엔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바탕으로 제주와 부산을 잇는 정기여객선 도라지호가 취항한다. 같은 해 제주도를 일일 생활권으로 바꿔놓은 제주~서귀포간 제1횡단도로 개통이 이루어졌고 제주 최초의 관광호텔인 제주관광호텔이 지어졌다.

제주시민회관이 개관하던 해인 1964년 12월에 열린 제3회 제주예술제 음악제. 제주예술제는 탐라문화제의 전신이 되는 행사다. 사진=제주예총 제공

제주시민회관은 정부와 제주도가 '관광 제주'의 밑그림을 그리는 작업에 열을 올리던 시기에 탄생했다. 제주시민들의 숙원사업으로 남문로 옛 오일장 터에 부지를 마련해 연극·영화만이 아니라 실내 체육장을 구비한 공간으로 건립이 추진됐다. '수세식 변소'를 갖췄다는 점도 이채롭다.

당시 1646만원의 예산이 투입된 제주시민회관은 서울시공무원이던 김태식이 설계를 맡았다. 김태식은 앞서 제주관광호텔을 설계한 건축가였다. 제주시민회관은 제주도내에서 처음 시행된 철골구조 건축물로 최대 2000명까지 수용이 가능했다.

개관식엔 시민 1000명이 몰렸다. 고향 제주를 떠나 서울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이 준비한 무용과 소인극이 제주시민회관 무대를 처음 밟은 공연으로 기록된다. 지역 신문엔 서양화가이자 교육자로 활동했던 김인지 제주시장이 오현고 교악대가 팡파르를 울린 개관식 현장에서 감회에 젖은 채 눈시울을 붉혔다는 대목이 나온다.

▶제주교향악단·합창단 창단 연주 장소=제주시민회관은 연극·음악·대중예술 분야 등 오랜 기간 제주 대표 공연장 역할을 맡았다. 탐라문화제의 전신인 제주예술제와 한라문화제의 음악제, 민속예술제 등 제주지역 문화행사는 물론 뭍나들이가 어려웠던 제주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을 초청 공연 장소로 쓰였다. 1979년의 경우 명창 초청 이웃돕기 민속예술 공연, 극단 민예의 '놀부뎐', 선명회 합창단 초청 무대가 잇따랐고 이듬해엔 추송웅 모노드라마 '빨간 피터의 고백', 국립합창단 연주회 등이 제주시민회관 무대에 올려졌다.

제주 음악사에 기억될 만한 무대도 제주시민회관에서 이어졌다. 제주시립합주단 창단 연주가 1985년 3월 열렸다. 같은 해 4월엔 제주시립합창단이 창단 기념 연주를 가졌다. 1987년 4월엔 제주시립교향악단이 이선문의 지휘 아래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 등으로 신춘음악회를 열며 제주지역 교향악단 시대의 출발을 알렸다.

제주시민회관의 '독주' 체제는 1988년 8월 대극장과 전시실을 둔 제주도문예회관이 등장하면서 서서히 막을 내린다. 클래식 음악과 무대극이 떠나간 자리엔 마당굿이 들어앉는다. 제주4·3을 자유롭게 말하기 힘들었던 1988년 11월 제주시민회관에서 굿판 '4·3의 밤'이 펼쳐졌고 이듬해 4월엔 4·3추모제가 진행됐다.

건물이 낡았다는 이유 등으로 허물어질 위기에 몰렸던 제주시민회관은 지금까지 반세기 넘게 제주시 이도1동을 지키고 있다. 지난 한해 공공 행사나 생활체육 시설로 제주시민회관을 이용한 인원은 모두 합쳐 5만명이 넘는다.



50년 넘은 제주시민회관


제주 도심의 대표적 유산 문화적 활용방안 찾아야



지난 13일 오전 제주시민회관. 실내에서 땀흘리며 배드민턴을 치고 있는 동호인들이 눈에 띄었다. 지난해 제주시민회관 이용자 중에서 가장 많은 횟수를 차지하는 분야가 생활체육으로 나타났다.

그래서일까. 지난해 2월 제주시민회관은 '제주시민회관 체육관'이란 이름으로 문화재 등록 추진대상에 오른 적이 있다. 문화재청이 전국적으로 건립된 지 50년 이상 경과한 근현대 체육시설 중에서 문화재적 가치를 지닌 시설에 대해 문화재 등록을 추진하면서 제주시민회관도 그중 하나로 제시했다.

제주시민회관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는 입구의 주춧돌 비문. 착공·준공 날짜와 제주시장, 설계자, 감독자 이름 등이 보인다. 진선희기자

당시 문화재 등록 추진대상 체육시설은 전국 7곳이었다. 앞서 문화재청은 근현대 문화유산의 체계적 보존관리 기반 마련을 위해 실시해온 근현대 문화유산 목록화 사업의 하나로 1876년 개항 이래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1988년까지 건립된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현존 체육시설 113건에 대한 목록화 작업을 완료했다. 이들 체육시설 중에서 전문가 자문회의를 거쳐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문화재적 가치가 큰 7곳을 문화재 등록 대상으로 선정한 거였다.

이같은 내용이 알려지자 제주시민회관 인근의 일부 주민들은 '문화재'란 말에 민감한 반응을 드러냈다. 지정 문화재처럼 재산권 행사에 제약이 따를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결국 논란 끝에 등록 문화재 추진은 없던 일이 됐다. 이 과정에서 지자체가 등록 문화재는 재산권 피해가 없다는 점을 지역 주민들에게 제대로 알리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제주시민회관은 문화·체육 등 도심에 자리잡은 복합 공간으로 그 존재감이 컸다. 반세기가 넘게 한 자리를 지키며 섬이라는 환경에서 피어난 제주예술의 흔적을 품어온 곳이다. 원도심의 여느 건축물처럼 허망하게 사라지는 일은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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