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녀를 말하다](9) 강원도 삼척시 초곡·갈남리

[한국 해녀를 말하다](9) 강원도 삼척시 초곡·갈남리
마을어장 갯녹음으로 악화… 해산물 소득도 절반으로 '뚝’
  • 입력 : 2017. 09.14(목) 00:00
  • 고대로 기자 bigroad@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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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시 초곡항 전경.

제주해녀 황영조 어머니 ‘몬주익 영웅’ 만들어
2000년대 초반 해녀 1명 하루 성게 530㎏ 채취
현재 180~210㎏ 수준… 갯녹음 등 원인 지목
갈남리 해녀 7명중 제주출신 5명 고령화 진행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초곡리.

소나무숲과 초승달 모양으로 길게 뻗은 넓은 백사장의 문암해수욕장이 있는 자그마한 어촌마을이다. 80여가구 10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지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따낸 '황영조 선수'의 고향이기도 하다. 어머니 이만자(77)씨는 제주 협재리 출신으로 출향물질을 나왔다가 이곳에 정착해 황 선수를 몬주익의 영웅으로 키워냈다.

초곡리 어촌계원 중 물질하는 해녀는 1명에 불과하다.

사진은 왼쪽부터 곽명순·박정숙·김태희·양애옥·이연옥씨.

이에 따라 초곡리 마을어장의 해산물 채취는 머구리 잠수부와 인근마을인 원덕읍 갈남리 해녀들의 몫이다. 해산물을 잡으면 초곡어촌계와 갈남리해녀들이 50대 50으로 나눠 갖는다.

현재 물질하는 갈남리 해녀(회장 김태희)는 모두 7명으로 곽명순(72·용수리)·양애옥(70·대평리)·박정숙(69·용수리)·김태희(69·용수리)·김월선(69)씨 등 제주출향해녀 5명과 제주해녀에게 물질을 배운 현지 해녀 1명, 제주출향해녀 2세 1명이다. 제주출향해녀들은 60~70년대 이곳으로 물질을 왔다가 가난한 갈남마을 총각을 만나 결혼하고 지금은 모두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

크레인을 이용해 성게 망사리를 옮기고 있는 모습.

김태희 해녀회장은 물질을 하면서 민박집도 운영하고 있다. 박정숙씨는 원래 제주서 물질했던 해녀가 아니었다. 이곳에서 물질하는 친구 김태희씨를 만나기 위해서 왔다가 갈남마을 총각 이삼옥(71)씨를 만나서 21살인 1969년에 결혼했다. 18살에 갈남리 총각과 결혼한 양애옥씨는 "시집올 때는 시댁이 초가집이었는데 물질을 해서 번돈으로 5년만에 슬레이트 집으로 개량했다"고 한다.

특별취재팀은 지난 8월 6일 새벽 5시 30분 초곡항을 찾았다. 갈남리 해녀들의 오늘 물질작업은 성게 채취이다.

박정숙씨의 남편 이삼옥씨가 운전하는 트럭을 타고 초곡항에 도착한 해녀들은 항내 탈의실이 없어 구석진 곳에서 잠수복(고무옷)으로 갈아 입었다. 이씨는 정치망 심해어장(60m)을 13년동안 하다가 어장이 사라지자 현재는 갈남리 마을어장 해녀 작업선 일과 주변마을에서 물질 요청이 들어오면 해녀들을 데려다 주는 일을 하고 있다.

물질채비를 마친 해녀들은 마을어장 관리선 진양호에 올라 초곡리마을어장으로 이동했다. 진양호 선장 심철희(초곡어촌계 간사)씨의 어머니도 제주출신이다. 심 선장은 해녀들이 원하는 장소에 내려주고 육지로 돌아와 있다가 물질이 끝날 시간이 되면 다시 바다로 나가서 해녀와 성게를 운반해 온다.

이곳 바닷속은 암반이 잘 발달돼 있으나 갯녹음이 진행돼 있었다. 일부 수중 암반에는 "30년 전만해도 미역과 다시마가 너무 많아 노를 저울 수 없을 정도였다"는 말이 믿기 힘들 정도로 하얀 무절석회조류가 가득했다. 이삼옥씨는 "7~8년전만 해도 하루에 해녀 한 사람이 성게를 530㎏까지 잡았지만 지금은 갯녹음이 심해 해산물이 줄어 들었다"고 했다.

성게 채취는 미역보다 깊은 수심에서 해야 하기 때문에 해녀들의 물질모습은 다른작업을 하는 해녀들보다 힘들어 보였다. 들숨과 날숨 사이 이어지는 해녀들의 '숨비소리'는 조용한 바다 위를 쉼 없이 수놓았다.

해녀들은 약 6시간에 걸친 성게 채취작업을 마치고 낮 12시30분쯤 항구로 들어왔다. 진양호 양 옆에는 성게로 가득 찬 태왁 망사리가 매달려 있다.

성게 작업을 마치고 배를 타고 돌아오고 있는 해녀들.

태왁 망사리는 항구에 설치된 크레인을 이용해 육상으로 끌어 올려졌고 해녀들이 크레인에 매달린 망사리밑에 있는 매듭을 풀자 야구공 크기의 성게가 플라스틱 콘테이너박스 안으로 우루루 쏟아져 내렸다. 해녀들의 성게 채취량 기록은 심철희 간사가 맡고 무게를 잰 성게는 항구에 대기하고 있는 중개상인의 냉동탑차에 곧바로 실려졌다.

이날 해녀들이 잡은 성게는 1인당 약 180㎏에서 210㎏. 1㎏가격이 3600원임을 감안하면 이날 해녀들은 평균 72만원 상당의 성게를 채취했다. 하지만 이중 절반은 초곡어촌계의 몫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실제 이날 해녀 1인당 수익은 36만원 정도. 그래도 하루 일당 치고는 꽤 짭짤하다. 제주여성들의 강인함을 보여주고 있는 갈남리 제주출향해녀들도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앞으로 10년이내 이곳에서는 '숨비소리'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잠수병과 만성질환을 동반한 직업병으로 고통받는 해녀가 되려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이다.

강원도에서 해녀들에게 연 10만원짜리 복지바우처카드를 지급하고 자부담 40%로 1년에 잠수복 한 벌을 지원해 주고 있다. 잠수병 치료비 자부담분까지 지원해 주고 있으나 해녀물질의 명맥유지는 불투명하다. 이달 현재 강원도 나잠어업인은 616명. 남자(머구리 잠수부) 323명, 여자(해녀)247명이다. 지역별 해녀는 강릉 40명, 동해 9명. 속초 9명, 삼척 61명, 고성 113명, 양양 15명이다. <특별취재팀=고대로 부장, 강경민 차장김희동천·강동민 기자>



[전문가 리포트]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사

“해녀 복지에 따뜻한 손길 필요…

백화현상 근본적인 대책마련 시급”


갈남마을은 1960년대 미역의 수요가 늘면서 이를 채취할 해녀가 필요했다.

매년 1·2월이면 삼척시 갈남마을 사람들은 제주도로 가서 해녀를 모집했는데 이들을 해녀사공이라 한다.

해녀사공 한 사람이 보통 해녀 10~12명을 모집해서 데리고 왔다. 그래서 많을 때는 40~60여 명의 해녀가 물질을 했다. 해녀사공은 3월에 해녀들을 데리고 오고 8월 명절(추석)전에 제주도로 데려가 주었다.

결혼한 해녀의 경우 가족과 장기간 떨어져 살기가 힘들었기 때문에 갈남마을까지 온 해녀들은 대부분 처녀들이었다. 보통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이었다. 당시 물질을 하면 해녀사공이 10%를 갖고 해녀가 90%를 가졌다.

제주해녀들은 물질이 끝나면 동네총각들과 어울려 놀기도 했다. 이들중에는 마을청년과 결혼해 지금도 활발히 물질을 하면서 삼척바다를 책임지고 있다. 해녀가 없는 주변 마을의 해산물 채취까지 도맡고 있다.

갈남마을 해녀 10명중 제주출신은 7명으로 서귀포시 안덕면 대평리가 고향인 양애옥씨는 지금도 오빠와 언니가 살고 있어 매년 제주도를 다녀온다. 60년대 부터 물질을 했던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출신 홍영녀씨는 현재 무릎이 아파서 물질을 하지 못한다.

이제 이들의 복지에도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 시점이다. 제주도는 물론이고 울산 등지에서도 해녀가 있는 마을에 탈의장을 건립해 해녀의 복지 향상에 관심을 기울이는 지자체가 늘고 있다.

갈남마을 해녀의 지속에 가장 큰 장애는 백화현상(갯녹음)이다. 백화현상이 점점 심각해져서 매년 해산물 채취량이 줄고 있다.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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