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으로 읽는 제주예술사](14)소극장 피고지고 피고지고

[공간으로 읽는 제주예술사](14)소극장 피고지고 피고지고
꺼져가는 소극장 살리자며 연극인들 거리로
  • 입력 : 2017. 10.30(월) 2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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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무대·하늘극장·예인아트홀·한얼 등 사라진 공간
1993년 개관 세이레극장은 부침 겪으며 간신히 명맥
연극 전용 탈피 관객과 소통 늘리는 소극장 잇단 조성


1995년 1월, 차가운 거리로 나간 제주 연극인들이 있다. 극단 다솜과 극단 세이레가 그들이다. 이들은 '꺼져가는 소극장, 우리가 살립시다'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세이레소극장 살리기 캠페인을 벌인다. 변종수씨가 이끄는 다솜은 마임 공연으로 행인들의 발길을 붙잡으며 거리 모금 운동에 나섰다. 이 무렵에 소극장 임대료를 마련하기 위한 일일 찻집도 연다.

소극장 살리기 운동은 그 해 9월에도 이어진다. 제주의 극단 아라, 무, 다솜, 세이레 등 4개 극단과 경남의 창원현대극장이 한달이 넘도록 세이레극장에서 각기 다른 빛깔의 공연을 이어간다. 소극장 연극을 활성화하겠다며 치렀던 제1회 소극장 페스티벌이다.

미예랑 소극장에서 소극장 연극축제가 펼쳐지고 있다. 사진=연극협회제주도지회 제공

▶거리 모금·일일찻집 운영 등 회생 안간힘=제주지역 민간 소극장의 운명은 가혹하다. 한자리를 오래도록 지켜온 소극장을 만나기 어렵다. 자그만 극장 안에서 제주 연극인들이 있는 힘을 다해 작품 한 편을 무대에 올리고 역량을 키워가지만 1년을 버티기가 쉽지 않다. 전국연극제가 1992년과 2001년 두차례 제주에서 개최되는 등 겉으론 화려한 시절을 났지만 소극장의 형편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개관과 폐관을 거듭하며 지금까지 명맥을 잇고 있는 세이레극장은 제주여상 앞에 있던 자유무대 소극장 자리에서 시작됐다. 세이레는 자유무대를 재정비한 뒤 강상훈씨 연출로 1993년 11월 30일부터 12월 24일까지 한달 가량 '배비장전'을 원작으로 만든 '배걸덕쇠뎐'을 장기 공연하며 본격적인 가동을 알린다. 당시 자유무대는 한 회 공연에 180여명이 입장할 수 있는 규모였다. 세이레는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제작된 작품인데도 전용 소극장이 없어서 한번 무대에 올려지고 사장되어버리는 현실을 바꿔보겠다며 장기 공연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세이레극장은 1997년 1월 운영난으로 문을 닫아야 했다. 거리 모금, 소극장 페스티벌 등 제주 안팎의 연극인들이 소극장 살리기 운동을 펼치고 다솜이 세이레극장 간판을 유지한 채 '네팔 가는 사람들'을 장기 공연하며 관객을 끌어모았지만 역부족이었다.

2006년 3~4월 한달간 다솜 극장에서 '좋은 연극 보여주기' 시리즈로 공연된 '광(狂)'. 사진=변종수씨 제공

세이레극장 이전에는 연극동우회 다솜이 1993년 제주시 삼도1동 건물 지하에 소극장인 '다솜 작은무대'를 만든다. 다솜은 그 해 3월 '다솜 작은 무대'에서 창단 1주년 기념공연으로 '그것은 목탁구멍속의 작은 어둠이었습니다'를 선보였고 이듬해 1~2월엔 '돼지와 오토바이'를 장기 공연했다. 하지만 이 공간 역시 머지않아 사라졌다.

▶10년 넘게 한자리 지켜온 공간 드물어=제주지역 소극장의 불씨는 그래도 꺼지지 않고 살아났다.

제주시외버스터미널 앞 하늘극장, 제주시 동문로터리 부근에 있던 예인아트홀, 제주시 관덕정 인근 옛 시청 건물에 둥지를 틀었던 한얼 소극장 등 그 이름들이 가물가물해지던 때, 새로운 소극장들이 하나둘 생겨난다.

긴 침묵을 깨고 테러제이 간드락 소극장이 2004년 9월 제주시 아라동에 문을 연다. 간드락 소극장은 '할머니의 낡은 창고', '섬 이야기', '어이그 저 귓것' 같은 창작극으로 공간의 색깔을 드러내며 관객들을 모았다.

2007년 9월엔 극단 이어도 대표를 맡았던 연출가 김광흡씨가 제주시 중앙로에 70석 짜리 미예랑 소극장을 꾸민다. 같은 해 12월 세이레극장도 세이레아트센터란 이름으로 제주시 연동으로 옮긴다. 소극장 폐관 이후 2000년 이래 제주시 용담동에서 재기를 노렸던 세이레극장이 세번째 마련한 공간이었다.

제1회 소극장 연극축제에 참가했던 극단 이어도의 팸플릿.

미예랑 소극장이 10년째 한곳에 머무르고 있는 걸 제외하면 간드락 소극장은 제주시 삼도2동 문화의거리로, 세이레아트센터는 제주시외버스터미널 근처로 이사했다. 그래도 지금껏 살아남았다는 점에 안도해야 할까.

연극 전용은 아니지만 현재 제주엔 관객의 접근성을 높이려는 여러 색깔의 소극장이 운영되고 있다. 제주시 원도심 간드락 소극장과 이웃한 곳에 아트세닉이 자리잡았고 서귀포 원도심에는 서귀포문화빳데리충전소가 있다. 연기학원을 운영하며 2006~2007년 극장을 꾸렸던 변종수씨는 제주시 기적의도서관 근처에 '문화놀이터 도채비'를 차리고 지난 7월 첫 공연을 가졌다. 예술공간 오이는 제주시 삼도2동 원도심을 떠나 제주시 연동에서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제주연극협회 '소극장 연극축제'

도내 민간 소극장에 문호 개방을


제주엔 소극장 연극축제가 있다. 1995년 세이레극장에서 열었던 소극장 페스티벌과는 다른 행사다. 극단 정낭, 이어도, 무, 가람 등 4개 극단이 참여해 1991년 첫발을 뗐다. 올해로 26회째를 맞는다. 지난 28일 막을 내린 이번 소극장 연극축제는 극단 가람의 '낮술'부터 극단 세이레의 '하녀들'까지 제주도내외 5개 극단이 9차례 공연을 벌였다.

지난해 세이레아트센터에서 열린 소극장 연극축제에서 극단 세이레가 공연을 벌이고 있다.

이 축제는 말그대로 제주지역의 소극장 문화를 확산시키는 계기를 만들기 위해 시작됐다. 연극협회제주도지회가 매해 연말이 되면 펼쳐왔다.

소극장 연극축제가 그동안 그 취지를 제대로 살렸는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소극장 연극축제란 이름만 달아놓고 900석에 이르는 문예회관 대극장이 공연 무대가 된 일이 있을 정도다.

제주지역 민간 소극장을 알리고 그곳에서 공연을 풀어내려는 움직임도 소극적인 편이었다. 그보다는 공립인 문예회관 소극장을 주무대로 쓰는 일이 많았다. 그러다 극단이 운영하는 민간 소극장이 소극장 연극축제의 장소가 된 해는 2010년 무렵부터다.

하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다. 연극협회도지회에 소속된 극단이 운영하는 극장을 위주로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소극장 연극축제라고 부르면서도 민간 소극장은 일부만 참여해왔다. 올해도 미예랑소극장과 세이레아트센터를 무대로 활용하는 데 그쳤다.

연극협회도지회는 이번 소극장 연극축제를 두고 "연극이 관객들에게 보다 쉽고 친숙하게 다가가게 하기 위해 시작된 사업"이라고 했다. 공간 구조상 배우과 관객이 한층 가까워지는 소극장은 공연의 현장성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연극협회도지회가 소극장 활성화를 통해 제주지역 연극발전을 꾀한다는 목표를 정했다면 문호를 개방할 필요가 있다. '소극장'에 무게를 실은 소극장 연극축제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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