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4·3 희생자 가족으로 견디고, 살아남기

[책세상] 4·3 희생자 가족으로 견디고, 살아남기
제주작가회의 '돌아보면 그가 있었네'
  • 입력 : 2018. 01.05(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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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소설가·평론가 6명 만난
최연소 입산자·수형인·유족 등
'… 4·3사람들' 첫 권으로 발간

"제주도에 죄업느 불쌍한 사람만 다 죽어씀니다. 어느 말랑 쓰고 어느 말랑 아니 쓰리.… 사람을 군닌압에 끄러다 세와서 총으로 쏩고 창으로 칵칵 찔으고 그 자리에서 다 죽어씀니다."

얼마전 만난 서귀포시 어느 마을의 할머니가 꺼내 보인 노트 속 글귀다. 1924년생인 할머니가 볼펜으로 눌러쓴 자전적 기록엔 제주4·3 당시의 참혹함이 생생했다. 맞춤법은 틀렸지만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할머니가 느꼈을 그날의 두려움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하며 그 시절을 건너온 사람들이 한둘이겠는가. 그것들을 애써 꺼내놓지 않았을 뿐 4·3체험 세대와 유족들은 전쟁보다 끔찍했던 날들을 견뎠다.

제주작가회의가 제주4·3 70주년을 앞두고 그 아픈 사연들을 불러냈다. '작가가 만난 4·3사람들' 시리즈 첫 권으로 펴낸 '돌아보면 그가 있었네'다.

380여쪽으로 묶인 책에는 '물 위에 쓴 시' 등 6편의 글이 실렸다. 시인, 소설가, 평론가 등 6명이 4·3 피해 당사자와 후손들을 인터뷰한 뒤 각기 다른 방식으로 풀어냈다.

현택훈 시인은 최연소 입산자였던 김성주 시인과 나눈 이야기를 실었다. 시를 통해 끔찍한 4·3의 악몽을 참아냈다는 김 시인은 산사람들에 대한 섣부른 평가보다 그들이 왜 산으로 들어간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한다.

김영란 시인은 수형인으로 고초를 겪은 박순석 할머니의 '가련한 인생'을 담았다. 박 할머니는 4·3수형희생자 불법군사재판 재심청구 소송에 참여하는 등 이젠 당당히 자신의 과거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홍임정 소설가는 눈도 못감은 채 세상을 뜬 4·3희생자 변창래씨의 생애를 가족의 구술 등으로 재구성했다. 고인은 상가리 마을을 기습한 군인들에 의해 스물 아홉의 나이에 총살당한 인물이다.

김세홍 시인은 섯알오름에서 학살당한 문혁하와 양일·순일 자매의 삶을 좇았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이 제일 고생스러웠다"는 자매의 말은 평범한 일상도 누리지 못했던 희생자 가족의 현실을 드러낸다.

4·3 시를 줄곧 써온 김경훈 시인은 '제주4·3의 대명사이면서도 제주4·3희생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덕구의 가족을 만났다. '이덕구 가족으로 살아남기'란 제목이 지난 시간의 고통을 그대로 말해준다.

김동현 평론가는 3·1 발포사건 당시 체포되었던 사람들에게 가벼운 형량을 내렸던 양을 검사와 그의 아들 양금석을 소재로 픽션을 썼다. 양을 검사는 이 일로 모진 고문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제주도 지원을 받은 이 책은 비매품으로 제작됐다. 제주4·3을 알리는 사업으로 기획했으면서도 더 많은 독자들과 만날 수 있는 통로는 제한해버렸다. 도서출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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