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영종의 백록담] 요즘 시국에 더욱 절실한 '오컴의 면도날'

[현영종의 백록담] 요즘 시국에 더욱 절실한 '오컴의 면도날'
  • 입력 : 2018. 04.16(월) 00:00
  • 현영종 기자 yjhyeo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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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진보논객 진중권 씨와 한 정치인이 날 선 공방을 벌였다.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려던 정봉주 전 의원의 성추행과 관련해서다.

사건은 지난 2011년 12월 정봉주 전 의원이 한 여대생을 호텔 카페로 불러내 성추행을 하려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시작됐다. 해당 여성은 얼마 전 한 인터넷 언론을 통해 이같은 주장을 제기했다. 진중권 씨는 며칠 후 같은 언론에 "정봉주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내용의 글을 게재했다. "여성 피해자가 거짓말까지 해 가며 그 꼴을 당해야 할 이유가 없으며, 그 폭로가 거짓이라면 그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현재의 상황에서 정봉주 전 의원을 굳이 음해하고 공격할 세력이 없다는 의미다.

정봉주 전 의원인은 펄쩍 뛰며 무죄를 주장했다. 심지어 해당 장소에는 가 본 적도 없다며 당일 시간대별 사진 700여장도 공개했다. 무죄 주장을 위해 공중파 방송까지 동원됐다. 정 전 의원은 해당 기고에 대해 "진 교수님 글을 봤고요. 일단 너무 논리적으로 써서 무슨 말씀인지는 잘 모르겠다"고 비켜갔다. 논란이 확대되며 SNS 상에서도 갑론을박, 난상토론이 벌어졌다. 일부는 진 교수를 '적폐' '관종'으로 치부하며 질타를 보냈다. 하지만 그 날 저녁 해당 장소에서 결제한 카드 내역이 확인되며 공방은 일단락됐다.

'오컴의 면도날(Ockham's Razor)' 법칙과도 상통한다.

똑같은 결과를 낳는 두 개의 이론이 경합하고 있을 때, 더 단순한 것이 훨씬 진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론이다. 동일한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개의 주장 가운데 가정이 많은 쪽을 피하라는 것이 요지다. 14세기 논리학을 연구하는 프란체스코회의 수사 윌리엄 오컴이 만든 것으로 알려진다. 여기서 면도날은 은유적 표현이다. 쓸모없는 털을 제거할 때 면도날을 사용하는 것처럼 불필요한 설명을 제거한다는 의미이다.

6·13 전국동시지방선거일이 다가오며 선거판이 과열되고 있다. 상대 후보에 대한 정당한 의혹 제기에서부터 비방·흑색선전, 폭로·흠집내기까지 유형도 다양하다. 제기된 의혹 중 일부는 사실로 확인되며 해당 후보가 사퇴하기도 했다. 상대 후보에 대한 비방·흠집내기가 도를 넘어선 지역도 부지기수다. '음주운전설'은 애교 수준이고, '위장전입설' '불륜설' '사퇴설'까지 나돈다. 몇몇 지역에서는 마타도어와 함께 검찰 고발로까지 치닫기도 한다.

제주라고 예외는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제주도지사 선거 본선 진출 티켓을 놓고 벌이는 공방은 점입가경이다. 김우남 예비후보측의 의혹 제기에 대해 문대림 예비후보가 해명·반박하는 모양새다. 문 예비후보는 김우남 예비후보의 대변인을 허위사실 유포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상태이다. 13일엔 문대림 예비후보측의 '당원명부 유출' 의혹까지 제기됐다. 대결 구도가 구체화되며 현직 원희룡 지사에 대한 날선 평가도 이어진다. 도의원 선거판에서도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비방·폭로가 고개를 들고 있다.

실체적 진실이야 시일이 지나거나 검찰 조사가 완료되면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그나마도 선거가 끝나고서야 이뤄질 공산이 크다. 선거일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마당에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 합리적 의심 속에 정책에 대한 평가나 제기된 의혹의 전후와 맥락을 꼼꼼히 살피면 실체적 진실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불필요한 가정을 줄이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더불어 후보들의 공약을 살피고 따지며, 지역 발전을 위한 정책을 제안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지방자치의 근간인 풀뿌리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해서다. 우리 유권자가 깨어있어야 하는 이유이다. <현영종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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