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29/제주청년희망사업 진단] (1)프롤로그

[창간29/제주청년희망사업 진단] (1)프롤로그
미래를 꿈꿀 수 없는 제주, 청년들이 떠나고 있다
  • 입력 : 2018. 04.22(일) 19:00
  • 채해원 기자 seawo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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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학생이 한라대학교 교내에 걸린 각종 취업관련 정보가 적힌 현수막 옆을 지나고 있다. 강경민 기자

20~30대 순유입 5000명 육박 vs 청년 脫제주 가속화
주거비 전국 1위·월평균 임금 최저 등 팍팍한 제주살이
“일자리만 제공하는 시대 끝… 청년·기업 함께 성장해야”

청년문제는 '88만원 세대'라는 키워드에서 'N포세대'까지 확장됐다. 비정규직 일자리, 청년실업문제로부터 시작된 고민이 청년의 자립·주거·문화까지 확장되며 논의의 폭을 키워온 것이다. 그 결과 청년일자리 정책이 발표되고 청년기본법 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한 사람의 고민, 청춘세대의 열병으로만 치부돼던 것이 사회구조적문제로서 함께 해결해야 하는 과제로 인식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청년들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취업전선은 처음 청년실업문제를 논의했던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고등학교 졸업 직후부터 공무원 시험준비에 몰두하는 학생,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6개월 이상씩 자기소개서·면접 준비에 매달리는 취업준비생 등. 사회의 문턱은 장벽처럼 거대해진지 오래다. 그 속에서 이른바 취업 성공자와 실패자가 나눠지고 열등감·자괴감에 무너지는 청년들이 나타나고 있다.

▶제주에서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청년들=제주 지역도 전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더 큰 문제가 있다면 지역사회의 성장동력인 청년인재들이 제주에서 미래를 꿈꾸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주지역 청년인구는 통계상 계속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시도 및 연령별 순이동 추이를 살펴보면 제주로 순수하게 유입(전입-전출)된 청년 인구(20~39세)는 4800명이다. 이에 따라 인구대비 유입된 청년 인구 비중(순이동률)은 20대는 1.3%, 30대는 4.4%로 전국 최고다.

그럼에도 일선에서는 '청년들이 떠난다'는 얘기가 나온다. 학업을 이유로 제주를 떠난 청년들은 다시 돌아올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고, 제주로 이주했던 청년들은 먹고 사는 일에 허덕이다 떠나는 실정이다.

제주의 자연을 즐기기 위해 이주를 결심했던 A(35)씨는 4년만에 이곳 생활을 접었다. 여유를 찾기 위해 떠나온 제주에서 더 바쁜 삶을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게스트하우스 스태프로 일하던 A씨는 급여가 충분치 않아 아르바이트까지 하다 결국 짐을 쌌다. '제주까지 와서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생각에서다.

제주에서 고등학교를 나와 타 지역 대학에 진학한 B(29)씨는 선뜻 제주행을 선택하지 못하고 있다. 학자금대출과 주거비, 식비 등을 고려하면 월 200만원 이상의 수입이 보장돼야 하는데 제주에서 금융권, 공기업 등을 제외하면 그만한 임금을 받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외 계약직 서비스업·일용직은 다소 보수가 많다해도 고용불안에 시달릴까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 박경호 청년협동조합 이사장은 "20·30대 청년층이 순유입되고 있다는 통계에만 주목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청년층의 유입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유출도 가속화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물가는 1등, 노동환경은 꼴등=청년층의 유출은 제주살이가 만만치 않다는데 그 이유가 있다. 월세 등 주거비용은 이미 서울·경기 지역과 비슷하게 오른데다 임금은 전국에서 가장 낮다. 청년들의 비정규직 비율도 다른지역보다 높다. 임금은 물론 조직문화, 노동환경 등 일자리 질이 청년들의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발표된 제주청년종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제주지역 대학생은 전국에서 두번째로 높은 주거비를 부담하고 있다. 제주지역 평균 월세는 38만8000원으로 서울(41만4000원)에 이어 두번째로 높았고, 전국 평균 32만8000원에 비해 5만원이나 비쌌다. 게다가 소득 대비 주거비 비중을 나타내는 RIR(Rent to Income Ratio)은 78%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이는 주거비용은 전국 상위권에 들만큼 높지만 임금수준은 타지역에 비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2017년 4월 기준 상용근로자의 시·도별 월평균 임금액을 살펴보면 제주는 245만원으로 전국에서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평균 312만원에 비하면 67만원이나 낮은 셈이다. 반면 일하는 시간은 긴 편이다. 시·도별 월평균 근로시간을 살펴보면 제주는 177.3시간으로 전국 평균 근로시간(173.2시간)보다 4시간 많이 일하고 있다. 청년들이 선호하는 서울 지역(월 임금 344만원·근로시간 166.3시간)과 비교하면 한 달에 돈은 99만원 적게 벌고 일은 11시간 더 하는 셈이다.

게다가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비율마저도 높다. 2017년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제주지역 임금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20~24세 67.5%(전국 61.7%), 25~29세 50.3%(전국 40.7%), 30~34세 42.8%(전국 35.6%) 등으로, 전국 평균보다 5.8~9.6%p 더 높았다.

이처럼 낮은 임금, 열악한 노동조건, 높은 물가 속에서 청년들은 미래를 그릴 수 없다. 때문에 평균보다 떨어진 청년의 삶의 질, 노동의 질을 끌어올릴 필요성이 제기된다. 더 나아가 일하고 싶은 제주, 비전이 있는 제주를 그려나가야 한다는 제언도 이어진다.

박경호 청년협동조합 이사장은 "일자리를 만들어 제공하기만 하는 시대는 끝났다"며 "노동환경 개선, 삶의 균형을 찾을 수 있는 조직문화 형성 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청년과 기업·지역이 어떻게 하면 함께 성장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지는 올 한해 '제주청년희망사업 진단' 기획을 통해 도내 청년 일자리 현황과 지역 일자리 정책 등을 살펴본다. 현장과 정책을 넘나들며 제주도 청년일자리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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