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김석범의 '과거로부터의 행진'

[이 책] 김석범의 '과거로부터의 행진'
"인간 재생과 해방이 문학하는 이유"
  • 입력 : 2018. 05.03(목) 2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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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범 작가(가운데)가 지난달 제주북초등학교에서 '4·3 70년을 말하다'란 이름으로 대담을 펼치고 있다./사진=한라일보DB

재일간첩조작사건 소재로
상상 초월한 국가폭력 다뤄

소설 곳곳 4·3사건의 잔상

소설은 제주국제공항으로 변한 정뜨르비행장에서 시작된다. 마지막 대목도 정뜨르비행장에 머문다. 그곳엔 어떤 사연이 있나.

"들렸나? 활주로 아래 땅속에 묻힌 뼛조각의 신음 소리가. 지금까지 상상도 못 했던 희미한 땅의 소리가. 이륙할 때 엔진을 고속으로 회전시켜 발진, 이윽고 굉음과 함께 이륙할 때까지의 몇 분 사이에 분명히 뼈의 소리를 들었다."

약 10년 만에 행방불명인 유해발굴이 재개되는 제주공항 일대는 제주4·3 당시 집단학살지로 알려졌다. 정뜨르비행장은 거대한 묘지나 다름없었다. 땅 아래 놓인 수많은 주검들을 떠올리며 소설은 '뼛조각의 신음 소리'란 표현을 썼다.

4·3 70주년을 맞아 재일작가 김석범의 장편소설 '과거로부터의 행진'(상·하권)이 국내에 번역됐다. 2009년 4월부터 2년 6개월간 일본 월간지에 실렸고 2012년 단행본으로 출간됐던 소설이다.

이 작품은 2010년 일본에서 나온 '죽은 자는 지상으로'에 이어 1970~80년대 한국의 정보기관이 독재정권의 안정을 도모하려 자행한 재일동포유학생 간첩날조사건을 다루고 있다. 한성삼을 주인공으로 간첩조작 과정에서 벌어진 무자비한 폭행과 고문으로 파괴된 인간성의 상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로 재일동포에 대한 영주권이 인정되었지만 일본은 남한과의 국교만을 회복한다. 분단된 조국의 남과 북 어느 한 쪽을 선택할 수 없다는 생각에 재일동포들은 조선적을 고수하는 일이 많았다.

김 작가 역시 무국적인 조선적을 택했다. 남·북 양쪽에서 불편한 인물로 낙인 찍혔지만 통일 조국의 국적 회복을 버리지 않고 있다. 작가는 민단과 총련으로 갈려 여전히 냉전의 시대를 살고 있는 재일동포 사회의 분단의 모순을 온 몸으로 체험했고 이를 주인공 한성삼의 모습에 녹여냈다. 한성삼은 조선적으로 통일의 그날을 기다리겠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4·3사건의 잔상이 간첩날조사건 희생자들의 원한과 겹쳐진다. 시대가 흘렀지만 상상을 초월한 국가 폭력의 기세는 여전했다. "정서적 고향인 제주도에서 발생한 불행한 역사를 되살림으로써 인간의 재생과 해방, 그리고 자유로 향하는 길을 모색하고자 문학을 지속했다"는 작가의 말처럼 분단된 조국과 민족의 상흔을 치유하려는 의지는 이 소설에서도 계속된다. 12권짜리 '화산도'를 공역한 김학동 동국대 일본학연구소 전문연구원이 우리말로 옮겼다. 보고사. 각 1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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