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함께] 새 시조집 김윤숙 시인

[저자와 함께] 새 시조집 김윤숙 시인
"오름과 바람이 전하는 사연을 詩로"
  • 입력 : 2018. 11.01(목) 2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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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숙 시조시인이 제주의 산과 오름, 섬 밖에서 만난 풍경 등에서 길어올린 작품들로 시조집 '참빗살나무 근처'를 냈다.

제주 안팎 산과 들 밟은 곳
쌓이고 쌓인 이야기와 교감

닫힌 섬의 운명·아픔도 담아

따거운 햇살 가려줄 모자, 편안히 땅을 밟을 운동화 신고 나선 길이었을까. 갖가지 기능성에 알록달록 차려입지 않아도 제주섬 곳곳 자리잡은 오름들은 우리에게 길을 내어준다. 땀흘린 산행길에 마주하는 바람은 어느 순간 마음의 궁상을 떨쳐내도록 이끈다.

제주 김윤숙 시인의 새 시조집 '참빗살나무 근처'에 담긴 70여 편을 읽어가며 그런 장면이 먼저 그려졌다. 산과 오름에서 만난 풍경들이 시가 되고 있었다.

'참빗처럼 나뭇잎을 파고드는 햇살에/ 한라 능선 차오르는 치렁치렁 머릿결/ 언젠가 마주친 소녀 빛나던 이유 알겠다// 어머니 나를 눕혀 서캐를 고르시던/ 그 손길 설핏 든 잠, 홀로 깨어 서러운 날/ 땀 냄새 절은 머리칼 참빗살나무 근처다'('참빗살나무' 중에서)

시인은 참빗이란 이름에서 저절로 유년을 떠올렸다. 참빗으로 서캐를 찾아내던 어머니의 따스한 손길, 한라능선의 구불거림처럼 길게 늘어진 머릿결. 한라산 참빗살나무는 이제는 사라진 아련한 그 날을 불러냈다.

폭염의 날들을 견디고 가을이 오듯, 시도 지난한 시간을 받아들여 절로 스며나는 일이라 말하는 시인은 제주섬 안팎 발디딘 곳에서 차분하게 시정을 길어올렸다. 물영아리, 걸서오름, 순천만, 묵호항, 목포, 하논, 엉또폭포, 소길리, 청산도 등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다. 여물고 단단한 땅 위엔 그 공간을 거쳐간 숱한 이들의 발자국이 배어있다. 시인은 긴 세월 속에 쌓이고 쌓인 그 사연들과 교감하며 자그만 틈새로 들려오는 이야기에 귀기울인다.

이 여정엔 동식물 등 또 다른 생명체가 말을 건넨다. 편백나무, 뱀딸기, 평사리 범부채꽃, 한라산부추꽃, 노랑줄무늬거미, 산굴뚝나비, 망초꽃, 삘기꽃 등은 우리네 인생사를 비춘다.

시인이 그들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건 때때로 섬이라는 닫힌 공간의 한계를 느끼기 때문이리라. 시인은 '갈매기 날갯짓은 못 다한 자유였을//그때나 지금이나 내 이마로만 오는 이여// 섬머리 첫 물음 앞에 아직 놓인 수평선'('내 이마로 오는 수평선')이라며 '너울의 저 건너편'으로 가닿으려는 소망을 드러낸다.

이같은 섬에서 무자년 4월의 비극이 벌어졌다. '뼈 속에 파고드는 공포와 추위도 잊고 맨 발의 젖은 옷자락 두 팔에 안은 아기와 숨을 몰아쉬며 무작정 뛰었'('비설(飛雪)')던 어머니가 있었다. 섬이었기에 희생과 고통이 더 컸던 게 아닐까. 시인은 '바닥 차오른 아기별들' 보자며 상생으로 가는 간절한 바람을 전한다. 작가.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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