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김선자의 '제주 신화, 신화의 섬을 넘어서다'

[이 책] 김선자의 '제주 신화, 신화의 섬을 넘어서다'
"열린 바다 통해 신화가 드나들었다"
  • 입력 : 2019. 01.03(목) 2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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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머리당영등굿 송별제 장면. 김선자 신화학자는 제주 신화와 중국 신화의 유사성을 통해 바다라는 열린 공간을 통해 신들의 이야기가 오고갔음을 살폈다.

중국 소수민족 신화 연구자
대·소별왕에서 잠수굿까지

제주신화와 유사성 촘촘히

제주 무속신화인 세경본풀이의 주인공인 자청비. 갖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마침내 농경신으로 우뚝 서는 당찬 여성이다. 자청비는 제주 신화를 대표하는 여신이지만 그를 둘러싼 이야기가 전개되는 모양새는 낯설지 않다. 특히 중국 신화와 연결지어 보면 유사한 대목이 적지 않다.

자청비가 하늘에서 내려온 문도령을 보고 한눈에 반해 남장을 하고 따라나서는 장면은 양축 전설을 떠올리게 한다. 멀리서 다가오는 문도령에게 물 한 바가지를 떠 주면서 버들잎을 띄워주는 건 북방 만주 지역의 버들여신이나 주몽의 어머니 유화 부인과 연관이 있다. 자청비가 하늘로 올라가 문도령의 아버지에게 혼인 허락을 받아내는 과정은 윈난성의 여러 민족에게 전승되는 곡식 기원 신화들과 비슷하다.

이처럼 제주 신화는 나홀로 있지 않다. 중국 등 제주 주변 여러 지역의 신화와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다. 바다라는 열린 공간을 통해 오래 전부터 교류가 이어져왔기 때문이다.

신화학자 김선자(연세대 중국연구원)의 '제주 신화, 신화의 섬을 넘어서다'는 '제주만의 것'으로 여겨온 제주 신화의 지평을 넓히고 있다. '중국 소수민족 신화 기행' 등을 쓴 중국 신화 전문가의 시선으로 제주 신화가 아시아 다른 지역의 신화와 공통의 모티프를 나누고 있는 지점을 포착해냈다.

대별왕과 소별왕, 삼승할망, 가믄장아기, 칠성신, 설문대할망, 제주도 본향신, 잠녀굿과 영등할망 등 제주 신화와 동아시아 신화는 다르면서도 닮은 점이 곳곳에 드러난다. 제주 신화와 중국의 인연은 본풀이 속 가상공간에서 확연하다. '바다 건너 머나먼 강남천자국'이 그곳이다. 이는 중국 남부 지역에 거주하는 소수 민족과의 관계 속에서 제주 신화를 읽어낼 이유가 된다.

사제가 전승하는 서사무가, 신들이 깃들어 있는 성소, 마을 사람들의 공동체성을 확인하는 큰굿(제사)에서도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들 신화는 산지항 등에서 출토된 고고학 자료나 신창리 해저 유물, 옛 제주 사람들의 숱한 표해록에 거론되는 중국의 지명 등과 더불어 물길을 통해 사람만이 아니라 이야기도 오고갔음을 짐작하게 만든다.

저자는 "제주 신화는 '섬'이라는 공간에 갇혀있는 신화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소수민족 신화와의 수많은 유사성이 그것을 보여 준다"면서 "바다의 길과 육지의 길을 통해 제주 신화의 신들은 이미 아시아의 여러 신들과 만나고 있었다"고 말했다. 북길드. 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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