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형의 한라칼럼] 3·1운동 100주년… 여전한 분단의 그늘

[이윤형의 한라칼럼] 3·1운동 100주년… 여전한 분단의 그늘
  • 입력 : 2019. 02.26(화) 00:00
  • 이윤형 기자 yhlee@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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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한반도는 지금 역사의 변곡점을 맞고 있다. 지난해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27, 28일엔 베트남 하노이에서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세기의 담판을 예고하고 있다. 분단시대의 그늘은 조금씩 걷혀가고 있다. 70년간 이어져온 분단체제와 냉전상태를 허물고 평화의 여정을 시작하기 위한 움직임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대립과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 평화에 대한 기대감은 한층 높아졌다.

그럼에도 분단의 그늘은 여전하다. 한반도에 평화의 봄기운이 움트기 시작해도 쉽게 자리를 비켜주려 하지 않는다. 반공과 이념의 굴레는 곳곳에서 똬리를 틀고 앉았다. 틈만 나면 불거지는 5·18에 대한 망언이나 제주4·3을 둘러싼 역사왜곡 문제도 근원은 여기에 있다. 분단에 기댄 이분법적 잣대는 항일 독립운동가들에게도 덧씌워졌다.

일제강점기 야만의 시대를 살았던 독립운동가들은 민족주의자나 사회주의자, 혹은 아나키스트(Anarchist)든 빼앗긴 국권을 되찾는 것이 목표였다. 항일투쟁과 광복을 위한 수단이자 노선으로 민족주의, 사회주의 혹은 아나키즘 사상을 받아들인 측면이 강하다. 하지만 항일투쟁에 헌신한 이들은 사회주의자라는 이유 등으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독립유공자 선정에 있어서도 불이익을 당해왔다. 해녀항일운동처럼 일제에 항쟁했던 여성 활동가들의 경우도 소외받기는 마찬가지다. 3·1운동 100주년의 숭고한 의미를 생각하면 무겁기만 하다.

제주도 3대 항일운동의 하나인 조천만세운동은 서울 등지에서 유학하면서 사회주의 사상을 접한 인사들이 주도적으로 나서면서 전개됐다. 이후 1920년대, 30년대 지속적으로 전개된 항일독립투쟁에 있어서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렇지만 독립유공자로 서훈이 이뤄진 경우는 극히 일부 인사에 지나지 않는다. 아직도 많은 인사들의 활동상이 역사의 그늘에 묻혀있다. 이름 없는 항일운동가들은 얼마나 많은가.

해녀항일운동이라고 별반 다르진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제주 해녀들을 일제에 맞선 여성 독립운동가로 평가하며 그에 맞는 정당한 평가와 합당한 예우를 약속한 바 있으나 후속조치는 더디기만 하다. 정부가 해주기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제주도가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야 한다.

정부는 지난해 6월 독립유공자 포상기준 개선책을 마련, 여성과 학생의 독립운동 공적을 적극 인정하고, 사회주의 계열 활동가에 대해서도 포상을 전향적으로 인정해 나가겠다고 했다. 이제는 그동안 소외됐던 제주지역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지사나 여성독립운동가들에게도 하루빨리 정당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항일운동역사에 있어서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그 헌신과 희생이 차별받는 일이 있어선 안된다. 당당한 주역으로 대접받아야 하고, 우리 사회가 그에 합당한 예우를 해줘야 할 책무가 있다. 한반도 분단체제에 획기적 변화가 예고되는 마당에 언제까지 독립운동가들을 케케묵은 이분법적 시각으로 가둬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분단시대의 잣대로, 이념 혹은 진영논리로 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폄훼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이윤형 행정사회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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