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호의 구라오(古老)한 대국] (1)'구라오'-오래되고 완숙한 문명

[심규호의 구라오(古老)한 대국] (1)'구라오'-오래되고 완숙한 문명
6000년 축적된 ‘늙은 문화’… 격의 방식으로 새 길
  • 입력 : 2019. 03.06(수) 2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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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하족에서 시작된 한족 이민족 침입에도 정체성
3212권에 달하는 사서 축적된 것을 지금에 대응
타 문화권의 어려운 개념 자기 나름 방식 해석 가능


연재를 시작하며

중국문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중국인이란 누구인가, 중국은 어떤 나라인가라는 물음만큼이나 어리석다. 한 개인의 내력을 읊는 것조차 지극히 어려운데, 인산인해人山人海, 지대물박地大物博(땅은 크고 생산물이 풍부하다)한데다 낡고 오래된 역사가 층층으로 쌓여져 있는 거대한 나라의 총체를 말한다는 것이 어찌 사리에 맞겠는가?

그런 까닭에 중국인은 안에 있어 중국을 알지 못하고, 외국인은 밖에 있어 중국을 알 수 없다는 우스개가 나왔는지도 모른다. 한족을 중심으로 하되 55개의 소수민족이 공존하는 다민족 국가인 중국은 우리나라의 40배가 넘는 땅덩어리에서 근 5천년의 문명사를 유지하고 있다. 그것을 한 두 권의 책으로 논술한다는 것은 이렇듯 처음부터 가능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중국인은 누구인가라든지 중국은 어떤 나라인가, 그리하여 중국문화는 어떠한가에 대한 나름의 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학문이 진리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중국에 관한 모든 학술서는 기실 이러한 해답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 어떤 것인들 나름의 결론을 내지 않았던가? 그 결론은 바로 그 작가의 중국인, 중국문화에 대한 나름의 해답이었을 것이다.

지금부터 시작하는 ''구라오'한 제국, 중국에 대한 단상' 역시 일개 중국학도가 보고 느끼고 실제로 경험한 중국문화에 대한 하나의 작은 견해일 뿐이다. '열반경'은 여섯 명의 장님이 코끼리를 만져보고 각기 자신의 의견을 제시한 것을 두고 전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일부만 아는 단견의 어리석음을 꾸짖었지만, 장님이 아니라한들 코끼리를 정확하게 이해 또는 인지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일부에 대한 견식이 보다 진지한 것이 아닐까? 그 작은 견식이 모이고 또 모여 대충의 윤곽을 드러냈을 때 비로소 전체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장님 코끼리 만지듯 중국 문화에 대해 조금씩 만져나가려고 한다.

촉감은 다음 몇 가지 키워드를 제시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구라오(古老)와 모던(摩登)', '중원과 사이四夷', '역사歷史와 사서史書', '남북南北', '개체와 군체', '가족과 국가', '인군人君과 인신人臣', '음양과 오행', '유가와 도가', '예속禮俗', '문사철文史哲', '관장官場과 시정市井', '한어와 한자', '도교와 불교', '농업과 상업', '식색食色', '의식주', '관시와 메이관시(沒關系)' 등등.

4대문명.

넓은 의미에서 문화를 인간이 창출해낸 총체라고 한다면, 그 핵심은 당연히 인간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인간이 창출해낸 문화가 곧 그 인간의 특색을 반영한다는 뜻이다. 이런 점에서 중국문화는 곧 중국인의 특별한 색깔에서 비롯된다. 중국인들은 어떤 특색을 지녔는가? 그 까닭은 무엇이고, 내력은 어떠한가? 연재를 통해 우리는 중국인이 지닌 독특한 색깔의 내력을 찾아갈 것이며, 그것으로 중국문화에 대한 작은 견해를 종합하고자 한다.

얼마 전 에번 오스노스의 '야망의 시대'와 한우덕의 '중국 함정'을 읽었다. 문득 과연 G2의 현대중국을 바라보는 우리에게 낡은 중국, 오래된 중국의 과거를 살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 것인가 고민했다. 하지만 현대 중국의 문화양태 역시 고대 중국의 뿌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해석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지난 과거를 배우는 이유는 현재를 보다 정확하게 살피고자 함이다. 마찬가지로 낡고 오래된 중국문화를 되짚어보는 것은 지금의 중국문화를 이해하고자 함이다. 새롭게 독자 여러분들과 중국문화를 함께 이야기할 기회를 얻게 되어 기쁘다.




중국은 구라오(古老)한 대국이다. 대략 기원전 4000년에서 2500년까지 삼황오제三皇五帝로 대표되는 신화와 전설의 시대(고고학적으로 앙소, 용산문화 시기)를 지나 기원전 2070년 세습 왕조로서 하夏나라가 건국하면서 왕조 체제를 갖추고, 기원전 1600년 상商이 건국하면서 절대적인 권력을 지닌 통치자가 궁전을 건설하고 제의를 주도했으며 문자(갑골문과 금문金文)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1046년 주周 왕조가 건국하여 봉건제도를 운용하면서 정치체제를 완비하고 동주東周 시대, 즉 춘추전국시대(춘추, 기원전 770년. 전국, 403년)에 완숙한 문사철(文史哲)과 다양한 문물을 갖춘 이른바 추축樞軸의 시대(Axial Age)를 맞이했다. 이렇듯 중국은 6000년의 역사를 이어온 오랜 나라라는 점에서 '구라오'하다.

한족의 기원인 화하민족.

 물론 인류의 4대 문명 가운데 하나로 지금의 중국을 낳은 황하 문명이 가장 오래된 것은 아니다. 이에 앞서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중심으로 기원전 7000년부터 약 1000여 년 간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문명이 꽃을 피운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함무라비 법전과 쐐기 문자로 대표되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황화 문명에 비해 적어도 2000년을 앞섰다. 또한 기원전 3200년부터 약 3000년 동안 나일 강을 중심으로 통일왕국을 이룩했던 이집트 문명이나 기원전 3000년 중엽부터 약 1000여 년 동안 인더스 강 유역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인더스 문명 역시 황하 문명만큼이나 오래된 역사와 문물을 자랑한다. 그러나 그들 문명은 오래되었을 뿐(원고遠古) 노숙老熟하지 않다.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지거나 절단되어 연속 불가능의 상태로 박제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황하 문명에서 발원한 중화문명은 한족漢族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화하족華夏族(이른바 염제와 황제의 족속)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후 여러 민족과 교류(전쟁을 포함하여)하며 공동체문명을 건설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전체 인구의 92%를 차지하는 한족漢族이 주도권을 잡고 있으며, 이민족의 침입과 통치를 겪으면서도 한족의 정체성을 완전히 상실한 적이 없었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고대문명과 다르다. 주원(周原)을 중심으로 하상주夏商周 삼대 정권이 선진적인 문화를 통해 수렴과 확장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이후 중국문화를 형성하는데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이후 진한秦漢시대를 거치면서 한족은 끊임없는 영토 확장으로 지금의 판도를 형성하기에 이른다.

황하의 중류. 황하문명의 발원지다.

 구(古)는 단순히 오래되었음을 의미하지만 라오(老)는 늙었다, 오래되었다, 친숙하다는 뜻 외에도 품위가 있음, 어른, 어버이, 신하의 우두머리라는 뜻이 있다. 늙은 말이 길을 안다(老馬識途)는 말처럼 늙음은 지식과 경험이 축적되어 노련, 노숙의 뜻이자 그만큼 사리판단에 능숙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람이 '라오'의 지경에 이르면 숱한 역정을 거치면서 달관 지경에 이를 수 있다. 삶이 원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라오'하면서 그런 것이라고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늙은 문화는 축적된 것이 많다. 특히 사서史書가 오랜 기억을 문자로 기록하고 있다면 더욱 더 그러하다. 중국 고대 왕조에서 편찬한 정통 사서의 총칭인 24史는 전설에 나오는 황제黃帝부터 명조 숭정崇禎 17년(1644년)까지 4000 여 년의 역사로 전체 3212권 4000여 만 자이다. 여기에 '신원사新元史'와 '청사고淸史稿'를 합치면 26사가 된다.

 땅을 파면 유물이고, 서고에는 켜켜이 쌓인 고적이다. 학자는 오래되고 낡은 서고의 사서司書가 되고, 정치가는 사서 외에도 정론서, 예컨대 '정관정요貞觀政要'나 '자치통감資治通鑑'에서 벗어날 수 없다. 예를 들어 1949년 이후 마오쩌둥이 거주했던 중남해의 국향서옥菊香書屋은 이름 그대로 하나의 작은 도서관(6,7만 권)과 같았는데, 마르크스, 레닌, 엥겔스, 스탈린 등 공산당에 관한 서적 외에도 사기史記를 비롯한 24사, 루쉰 전집 등과 더불어 앞서 말한 정론서가 소장되어 있었다.

마오쩌둥이 거주했던 '국향서옥(菊香書屋)'. 이름 그대로 하나의 작은 도서관과 같았다.

 축적된 것이 많으니 새로운 외래문화를 접하면 곧 자신들의 서고로 달려가 책을 들추기 마련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인도에서 전래된 불교에 대응한 격의格義의 방식이다. 격의란 개념이 처음 나온 것은 양梁나라 혜교慧皎가 지은 '고승전高僧傳'인데, 동진시대 승조僧肇는 '조론肇論'에서 같은 의미로 연류連類라는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진여산석혜원晉廬山釋慧遠'에 따르면, 혜원이 "스물네 살에 대중들에게 강론을 시작했는데, 어떤 손님이 강론을 듣다가 실상實相(여래실상如來實相, 제법실상諸法實相)의 뜻이 무엇인지 어려워하여 혜원과 한참동안 문답을 주고 받았다. 하지만 그 손님은 그럴수록 더욱 의문이 생기고 애매한 점이 많아졌다. 혜원이 '장자莊子'에서 비슷한 내용을 끌어와 연계시키자 이에 의혹을 품던 이가 환하게 깨달았다. 이런 일이 있은 이후로 도안道安은 세속의 책을 폐하지 않고자 했던 혜원의 바람을 특별히 들어주었다."

 현대 학자 탕용동湯用의 '이학理學, 불학佛學, 현학玄學'에 따르면, 격의란 일종의 유비類比를 통한 이해라고 할 수 있는데, 격格은 비교한다는 뜻이고, 의義는 명칭 또는 개념의 뜻이다. 주로 인도 불교의 개념을 유가나 도가, 또는 현학의 개념으로 치환하여 설명하는데 많이 사용되었다. 산스크리트 어의 다르마(dharma, 법 또는 진리)는 도가의 도道로 치환되고, 니르바나(nirvana, 궁극적인 행복의 상태)는 열반涅槃으로 음역되었다가 적멸寂滅, 해탈解脫, 멸도滅度, 심지어 도가의 무위無爲 개념으로 치환되었으며, 중국문화권에서 존재하지 않았던 공空 개념은 도가의 무無로 이해되었다. 또한 실라(sila, 윤리나 도덕)는 유가 개념인 효孝로 바뀌었으며, 불교의 오금五禁(살생, 도둑질, 음사, 망언, 음주를 금함)은 오상五常(인의예지신)으로 해석되었다.(안지추顔之推, '안씨가훈顔氏家訓') 이러한 격의의 방식은 고대에만 유효했던 것이 아니다.

옌푸가 번역한 '천연론(天演論)'. 다른 문화권의 이해하기 힘든 개념을 자기 나름의 해석을 통해 이해하는 격의의 방식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중국 근현대에 서구문화를 최초로 번역하기 시작한 옌푸(嚴復)는 헉슬리(T. H. Huxley)의 '진화와 윤리(Evolution and Ethics)'를 '천연론天演論'으로 번역했는데, 천연이란 영어 Evolution(진화)의 번역어로 천지만물, 즉 자연의 변화를 뜻한다. 또한 그는 논리학의 방법론인 연역법을 일반에서 특수에 이르는 것으로 '주역'의 학문, 귀납법은 특수에서 일반으로 이르는 것으로 '춘추'의 학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격의의 방식은 서역에서 들어온 후추가 오랑캐 산초나무(호초胡椒), 자동차가 기차汽車, 기차가 화차火車, 컴퓨터가 전뇌電腦로 바꾼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축적된 것이 많으니 지금과 대응시킬 것도 많다. 마카오와 홍콩 등 중국의 특별행정구에 대한 중국의 통치 방식인 '일국양제(一國兩制)'는 한 무제가 당시 고조선이나 안남국에 군현을 설치한 후에 제시했던 통치 방식에서 비롯된다.

 이처럼 격의의 방식을 통해 전혀 다른 문화권의 이해하기 힘든 개념들이 중국인들의 관념 속에 새롭게 자리하게 되었으며, 자기 나름의 해석이 가능해졌다. 구라오 문화의 역량은 이렇듯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판단하는데 거대한 작용을 한다. 이는 오래되고 완숙한 중국문명이 지닌 장점이자 또한 단점이기도 하다. <심규호·제주국제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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