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6)

[강준 장편 연재] 갈바람 광시곡(6)
  • 입력 : 2019. 04.04(목) 20:00
  • 편집부 기자 hl@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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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 작/고재만 그림

2-3. 청춘들의 우격다짐




"학교 그만두고 나처럼 짱꿰 짓 할 거여?"

"아버진 못 배워서 면발이나 두들기고 있어요? 이리저리 뜯기고 외상값 못 받아서 장사 못 해 먹겠다면서요?"

"이 녀석아, 그만큼 힘들다는 소리지. 그래도 짜장 팔아 너희들 키우고 공부시켰어. 이놈아."

"난 싫어요. 나 일찌감치 기술 배워 돈 벌 거예요."

삽화=고재만 화백



"돈이 '나 잡수소' 하고 거리에 굴러다니냐? 공부 싫으면 여기서 배달이나 뛰어. 용돈 줄 테니까."

"서울 가서 기술 배운다니까요."

"그런 소리 하려면 썩 꺼져.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고등학교까진 나와야 괄시 안 받고 사람 행세할 수 있는 거여. 이 덜된 놈아."

용찬은 부자간의 대화를 들으면서 왕금산이 동년배들보다 일찍 사회 돌아가는 이치를 깨우친 놈이란 걸 알았다.



문제는 항상 장종필 때문에 생겼다
워낙 꼴통에다 싸움하기를 좋아했다
세 들어 사는 용찬에게도 삥뜯는 치사한 놈이었다




그 후로 금산은 부산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육지로 가기 전까지 철가방을 들고 식당 일을 도왔다.

금산은 동생을 가르친다는 사실보다 시골 출신이라는 순박함에 끌려서 용찬을 좋아했다. 동갑이라는 걸 알고 둘이는 금방 말을 놓았다.

금산은 가끔 일을 끝내고 수금하다 빼돌린 돈으로 빵이며 아이스크림이며 과자를 들고 밤중에 용찬의 자취방에 들렀다. 그는 자신의 집인 양 편안하게 누워 부산에서 싸움하던 이야기며 자기 집안 사정도 얘기했다. 왕금산은 대륙의 핏줄을 타고나서 그런지 배포도 있고 주관도 뚜렷한 시쳇말로 까진 놈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항상 장종필 때문에 생겼다.

종필은 용찬의 자취방 주인 아들이었다. 고3인데 워낙 꼴통에다 싸움하기를 좋아해서 집안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진학은 진즉에 포기한 듯했다. 게다가 세 들어 사는 용찬에게도 삥뜯는 치사한 놈이었다. 용찬은 시골에서 온 놈이라고 봐줘서 한 번으로 끝났지만 항상 현금을 가지고 다니는 금산은 돈을 빼앗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중간고사를 앞두고 늦게까지 책을 붙들고 있던 밤에 금산이 잔뜩 부어서 용찬을 찾아왔다.

"아이 쓰벌, 더러워서..."

"뭐가 그렇게 불만이냐? 아버지께 야단이라도 맞았어?"

"종필이 새끼 말야. 개새끼. 한두 번도 아니고 말야?"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랬지만 이 기회에 종필의 나쁜 버릇을 단단히 고쳐 주어야 한다고 용찬은 생각했다.

"야. 넌 덩치값 못하고 매번 당하냐? 한 번 붙어 봐. 아무리 집주인 아들이라도 이거 너무 하는 거 아냐? 있는 집안의 자식이 말이야. 세 들어 사는 불쌍한 사람들 호구로 알잖아?"

금산의 얼굴에 금세 화색이 돌았다. 그러면서 주먹을 불끈 쥐어 올렸다.

"맞아. 한 주먹 감도 안 되는 새끼가 주인집 아들이라고 봐 줬더니. 이 새끼 두고 봐. 다음 한 번 건드리면 죽사발 내버릴 거야."



그 말은 사실이 되었다.

며칠 뒤 종필은 배달 다녀오는 금산의 스쿠터를 정지시키고 담배 심부름을 시켰다.

"야 넌 발이 없냐 손이 없냐? 남은 땀 흘리며 일하는데. 돈 없으면 담배 끊던지. 네 돈으로 사셔 펴."

금산이 마음 단단히 먹고 강하게 나오자 종필은 금산이 타고 온 스쿠터 배달통을 걷어찼다.

"어쭈 이 자식, 많이 컸네? 너 지금 개기냐?

"그래, 개긴다. 어디 한 번 맞짱 뜰래?"

"이 어린 새끼가. 너 몇 대 맞고 피똥 쌀래?. 따라와."

둘은 사람들 통행이 뜸한 사라봉 공동묘지로 가서 힘을 겨뤘다. 종필은 양아치들과 어울려 다니며 싸움 잘한다고 소문났지만, 어려서부터 무술 도장에 다니며 등치 키운 금산의 적수는 못 되었다. 몇 번을 때리고 차고 부둥켜안고 뒹글다가 종국에는 코뼈가 부러져 피로 만신장이 된 종필이 더 이상 대항하지 못하고 뻗어서야 싸움이 끝났다.

하지만 종필은 폭력 조직의 똘만이었다. 종필이 당했다는 소식을 들은 패거리들은 방방 뛰었다. 대낮에 야구방망이, 각목 등 도구를 들고 몰려들었다, 미처 대비하지 못한 금산은 순식간에 당했다. 골목길을 지나는 금산을 붙잡아놓고 죽지 않을 만큼만 패 놓았다.



리화에게 소식을 듣고 용찬은 병문안 갔다. 금산은 온몸에 붕대를 감고 퉁퉁 부은 얼굴로 병상에 누워 있었다. 용찬이 다가서자 금산이 부르튼 입술을 억지로 벌려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괜찮아?"

금산은 발음도 제대로 못하고 '좃필이 새끼'란 말만 반복하며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세웠다가 아래로 돌리며 연신 만족한 웃음을 보였다.

붕대를 풀고 근질근질하던 몸을 움직일 때쯤 병원으로 종필이 찾아왔다. 남의 힘 빌어 금산을 작살 낸 게 부끄러웠는지 종필은 미리 와 있던 용찬을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미안하다. 우리 사나이 아니가? 내가 졌다. 우리 친구 먹자."

병문안도 이외였지만 친구 하자는 종필의 제안에 금산의 굳게 닫혔던 마음이 빗장을 풀었다.

"친구? 그럼 나 말 놓는다?"

"네가 언제 나한테 말 올렸나? 너네 나라에선 항상 그렇나?"

"그렇다. 중국에선 마음만 맞으면 나이 상관없이 금방 친구 된다."

그로부터 금산은 두 살이나 연상인 종필과 말을 트고 지냈다. 그때 용찬은 정글의 세계에선 나이나 이력보다 힘이 우선한다는 걸 알았다.



세 사람의 피가 하나의 잔에 합쳐지자 종필이 잔을 들며 말했다
"삼총사 파이팅!"




습기를 머금은 무더위는 밤이 되어서도 사그러들지 않았다. 여름 방학이 가까운 어느 날 샤워하고 잠잘 준비를 하는 용찬에게 대룡반점으로 오라는 기별이 왔다.

부모님이 모임을 갔다고 금산이 군만두를 튀겨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금산이 사투리를 쓰며 과거 부산 살던 이야기에 한참 열을 올리던 중인데 불청객이 나타났다. 장종필이었다.

"너들도 잠 안 오냐? 너무 덥다."

그는 주류 진열대로 가더니 빼갈(白干?)을 꺼내 금산이 말리기도 전에 뚜껑을 땄다.

"어 영업 끝났는데?"

"돈 주면 될 거 아냐. 가서 짜장이나 퍼와."

금산이 팔다 남은 짜장을 그릇에 담아오자 종필은 분위기를 제압하더니 제안을 했다.

"야, 너네 서울 구경해 봤어?"

용찬과 금산은 서로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 방학 때 서울 구경 가자."

서울이라는 말에 금산의 귀가 쫑긋했다.

"난 부산은 살아 봤지만 서울은 못 가 봤다. 그렇잖아도 서울로 튈 생각이었는데 난 좋아. 내 꿈을 위해서 사전답사 하겠어."

"용찬이 넌?"

용찬은 비용 마련할 자신도 없고, 학생 신분으로 제주 섬을 벗어난다는 게 두려워 고개를 가로 저였다. 핑계를 댈 말이 즉흥적으로 떠올랐다.

"난 가을에 수학여행 있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수학 여행비 마련 때문에 감히 어머니에게 말도 꺼내지 못한 일이었다.

"야 븅신아, 수학여행 존나 재미없어. 꼰대들에게 목줄 묶여 끌려다니는 개꼴이야. 내가 가 봐서 알아."

"보충 수업도 받아야 하고..."

용찬이 구차한 변명을 들이대자 몸이 달은 금산이 채근했다.

"방학하면 며칠 쉬는 기간 있잖아? 용찬아. 비용은 내가 댈 테니 같이 가자. 응?"

용찬은 더 이상 거부할 명분이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종필과 금산은 박수치고 탁자를 두들기며 좋아했다.

흥이 오른 종필이 마시다 둔 빼갈병을 들어 유리잔에 부으며 말했다.

"야 우리 이참에 의형제 맺자."

의형제란 말에 용찬도 의기투합했다.

"수업시간에 삼국지를 재미있게 말해주는 선생이 있거든. 유비, 관우, 장비가 도원에서 의형제 결의를 했어. 우리도 삼총사 하자."

종필이 주머니에서 커트 칼을 꺼내더니 자신의 왼손 새끼손가락 끝을 싹 그었다. 금세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그는 그 피를 짜내어 술이 담긴 잔에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재빨리 손가락을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빼고는 곁에 있는 화장지로 감아쥐었다.

진지하게 지켜보던 금산과 용찬도 같은 의식을 행했다. 유리잔은 금세 벌겋게 변했다. 세 사람의 피가 하나의 잔에 합쳐지자 종필이 잔을 들며 말했다.

"절대 배신 않기다. 삼총사 파이팅!"

금산과 용찬도 주먹을 올리며 파이팅을 외쳤다. 종필이 진지한 표정으로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술을 마셔본 경험이 많은지 아무렇지도 않게 손등으로 입술을 훔치고는 군만두를 씹었다. '삼총사 파이팅'을 외치며 금산과 용찬도 술을 나눠 마셨다. 리화의 꼬임에 빠져 빼갈을 마셔 본 경험이 있는 용찬도 술을 마신 후 얼굴을 찡그리지는 않았다.

그렇게 대룡반점 결의를 한 삼총사들은 새로운 경험을 위해 섬을 탈출할 계획을 밤늦도록 논의했다.<강준 작가 joon44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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