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규호의 구라오(古老)한 대국] (4)중국식 모던의 길

[심규호의 구라오(古老)한 대국] (4)중국식 모던의 길
"몇몇 깨어났다면 철로 만든 방 부술 희망 있다"
  • 입력 : 2019. 04.10(수) 2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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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운동은 처음으로 학생, 상인, 노동자 등 일반 대중이 연대해 주체의 권리를 주장하고 투쟁으로 승리를 얻었다는 점에서 이전의 운동이나 혁명과 차이를 보였다.

中 최초 소설 루쉰 '광인일기'
문학혁명 등 신문화운동 매진
천두슈 창간 잡지 '신청년'에
대중들 연대 주체 권리 주장
이전 혁명과 달랐던 5·4運動
민중의 희망에 '적막 속 외침'


아편전쟁 패배에 경악한 조야朝野는 서둘러 대책을 내놓았다. 양무운동과 변법자강이 대표적이다. 양자는 서로 다르지만 위로부터의 개혁이자 중체서용中體西用을 근간으로 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조선의 동도서기東道西器, 일본의 화혼양재和魂洋才와 마찬가지로 뿌리는 놔두고 큰 줄기와 잔가지 정도만 바꾸자는 뜻이다. 뿌리가 바뀌지 않는데 어찌 새로운 열매가 열릴 수 있겠는가? 양자는 청조가 내놓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었지만 시세時勢는 전반적인 중화질서의 해체를 요구하고 있었다.

변혁의 조짐은 광둥廣東에서 시작했다. 중앙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남만南蠻의 땅으로 한 번도 천하의 중심이 된 적이 없던 곳, 아편전쟁의 발단이 된 곳, 홍수전洪秀全이 오로지 상제만 섬기면 된다는 뜻의 '배상제회拜上帝會'를 기반으로 태평한 하늘나라(太平天國)을 만들고자 했던 땅이다. 광둥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쑨원은 스스로 제2의 홍수전이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1905년 일본 도쿄에서 성립한 '중국동맹회'에서 총리로 선출된 쑨원은 이렇게 외쳤다. "달로(만주족의 비칭)를 몰아내고 중화를 회복하며 민국을 창립하고 토지를 평등하게 나누자." 초기 조직인 흥중회에서 언급한 바 있는 그의 주장은 강령이 되었다. 이른바 민족, 민주, 민생, 즉 삼민주의三民主義의 시작이다.

1905년 일본 도쿄에서 성립한 '중국동맹회'에서 총리로 선출된 쑨원(孫文).

민족과 민주라는 말은 구라오한 중국문화의 토양과 무관하다. 지금까지 백성이 주인이 된 적이 있었던가? 수십 개의 민족, 게다가 만주족이 통치세력으로 있는 청조에서 민족이란 어떤 민족을 말하는가? 중화민국 성립 이후 오족공화五族共和를 내세워 한족, 만주족, 몽고족, 회족, 장족 등이 함께하는 공화국 성립을 주장하기는 했지만 쑨원이 삼민주의를 제출할 당시 만해도 민족은 화하민족, 중화민족일 뿐 만주족이 아니었다. 이는 당시 팽배한 배만排滿(청조 배척)사조의 영향이자 반청복명反淸復明의 부활이고 구라오한 화이사상華夷思想의 반영이다. 중국에 부족이나 민인民人, 족류族類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지금 민족의 뜻과 다르다. 그도 그럴 것이 Nation의 역어로 메이지유신 시절에 일본의 지식인들이 만든 조어였기 때문이다. 20세기에 들어와 민족이란 말이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은 양이洋夷, 즉 서양 오랑캐의 침략에 대응하면서이다.

민주란 말은 더 이상하다. 원래 민주란 그리스어 demos, 즉 평민이란 말에서 유래한 것이니 중국의 인민에 상응한다. 하지만 전체 인민 또는 그들의 대표가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권력을 행사하고 책임을 지는 정치체제로서 민주주의는 중국역사에서 존재한 적이 없다. 게다가 민주는 일본인이 만든 조어로 주권재민의 뜻으로 풀이할 수 있지만 어순이 반대인 중국어의 경우 주민主民(백성이 주인이 됨)이 된다면 모를까 민주는 영 어색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그들은 아예 음역을 택했다. '더모커라시德謨克拉西(democracy)'.

중국동맹회가 기획한 신해혁명은 절반의 성공일 뿐이었다. 1919년 10월 10일 우창武昌 봉기 이후 여러 성에서 무장봉기와 독립선언이 잇달았다. 마침내 봉건전제왕조에서 인민이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에 의해 국가원수를 선출하고 국가와 정부가 개인이 아닌 공공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공화국인 중화민국이 탄생했다. 이런 점에서 신해혁명은 성공적이다. 하지만 죽 쑤어 개준다는 식으로 혁명의 결과물을 따 먹은 것은 청조정과 중화민국의 거간 노릇을 한 군인 위안스카이袁世凱였다. 청조의 신식군대인 북양신군北洋新軍을 조련하고 우두머리가 되었던 그는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중화민국의 대총통이 되었다. 심지어 제제帝制를 부활시켜 황제를 꿈꾸었다. 어쩌면 실패는 당연한 것인지 모른다. 군대가 없어 청조의 신군 가운데 일부를 활용하고, 국민들의 지지를 얻는데 실패했으며, 무엇보다 당시 중국 전체 사회를 변혁시킬 수 있는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청조가 멸망하고 공화국이 성립되면서 중국은 현대 정치의 체계를 갖추었다. 하지만 아직 세상은 모던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열강과 더불어 군벌까지 끼어들면서 적막과 절망의 연속일 뿐이었다.

"가령 철로 밀폐된 방이 있다고 해보세. 창문도 없고 절대로 부술 수도 없는데 그 안에 깊이 잠든 사람들이 많이 있어. 오래지 않아 질식하여 죽고 말겠지만 혼수상태에서 죽는 것이니 죽기 전의 비애는 느끼지 못할 거야. 지금 자네가 큰 소리를 질러 다소 의식이 있는 이들 몇몇을 깨웠다면 그 불행한 몇몇 사람들은 구제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임종의 괴로움을 당할 것인데, 자네는 그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1922년 12월 베이징, 루쉰魯迅은 친구인 첸쉬안퉁錢玄同이 소설을 써보라고 하자 이렇게 말했다.

목판화에 담은 루쉰 초상.

"그래도 기왕 몇몇이 깨어났다면 철로 만든 방을 부술 희망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겠지."

"물론 나는 내 나름의 확신이 있기는 했지만 희망에 대해서는 오히려 말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희망이란 미래에 속한 것이니 절대로 없을 것이라는 나의 증명으로 있을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을 굴복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나도 글이란 걸 한 번 써보겠노라고 대답했다. 그것이 바로 최초의 소설 '광인일기'이다."('납함 자서自序')

이렇게 해서 중국 최초의 현대소설 '광인일기狂人日記'가 탄생했다. 소설은 천두슈가 1915년에 창간한 잡지 '신청년'에 실렸다. 천두슈는 '신청년'을 통해 1917년 문언 대신 구어를, 고문 대신 백화白話를 사용할 것을 주창하면서 문학혁명을 주도하는 등 신문화 운동에 매진했다.

1918년 '신청년'에 실린 '광인일기'.

1919년 1월 천두슈는 '본지(신청년) 죄안罪案에 대한 답변서'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신청년'에 반대하는 이들은 주로 우리가 공교孔敎, 예법, 국수國粹, 정절, 낡은 윤리, 낡은 예술, 낡은 종교, 낡은 문학, 낡은 정치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이런 몇 가지 죄안에 대해 우리는 전혀 숨길 생각이 없다. 하지만 더모크라시(德莫克拉西)와 사이인스(賽因斯, 과학, Science의 음역), 두 분의 선생을 옹호하기 때문에 하늘을 뒤덮을 만한 대죄를 범할 수밖에 없었다. 덕선생(德先生)을 옹호하려면 어쩔 수 없이 공교, 예법, 정절, 낡은 윤리와 정치를 반대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새선생(賽先生)을 옹호하려면 부득불 국사와 낡은 문학을 반대해야만 한다."

그 해 5월 4일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승전국끼리 모인 파리 강화회의에서 독일이 조차하고 있던 칭다오靑島와 산둥반도를 일본이 차지한 것에 반대하고, 일본이 위안스카이에게 제출한 '21개조 요구'를 거부할 것을 요구하는 대규모 학생 시위가 일어났다. 시위는 전국으로 전파되었으며, 특히 상하이의 학생과 노동자, 상인들이 적극 참여하여 수업거부, 파업, 철시撤市를 벌이기도 했다. 결국 북양 군벌정부는 시위 군중들에게 굴복했다. 5·4운동은 처음으로 학생, 상인, 노동자 등 일반 대중이 연대하여 주체의 권리를 주장하고 투쟁으로 승리를 얻었다는 점에서 이전의 운동이나 혁명과 달랐다. 루쉰이 적막寂寞 속에서 납함(외침)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나 죽을 때까지 휴머니즘과 계몽주의 정신을 잃지 않고 싸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민중의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국의 모던은 바로 이러한 길을 통해 서서히 이루어져갔다.

<심규호·제주국제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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