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도서관에서 만나는 책이야기] (8) 연애소설 읽는 노인

[작은 도서관에서 만나는 책이야기] (8) 연애소설 읽는 노인
개발이란 이름 아래 유린당하는 아마존 위한 서사시
  • 입력 : 2019. 10.18(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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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자(왼쪽) 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위원이 '연애소설 읽는 노인'을 들고 양은심 신머들새마을작은도서관 독서동아리 회원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앵무새·뱀 등장 표지 인상적
아마존 배경 원주민의 이야기
원시와 문명의 경계에 선 노인
"딱 지금 여기까지만 발전을…
바람직한 공존의 방식 떠올려"


'

세상에서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탐독하는 노인에게 아마존의 밀림이 우기에 접어드는 시기에 예상치 못한 비극적인 사건이 벌어진다. 그 일은 그 곳에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고 '연애소설'을 읽으며 자연과 함께 자유로운 삶을 꿈꿨던 노인의 삶을 위협한다.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그 처녀성이 유린당하는 아마존을 지키기 위한 노인과 문명을 둘러싼 투쟁, 그들 사이에 벌어지는 여러 인간들의 모습을 감수성 넘치는 언어로 형상화한 소설이다. 루이스 세풀베다. 정창 옮김/열린책들







▶대담자: 양은심(신머들새마을작은도서관 독서동아리 회원)

대담 진행: 김미자(서귀포시민의책읽기위원회 위원)



▶김미자(이하 김):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읽고 난 후의 전체적인 소감은?

양은심(이하 양): 책 표지에 앵무새, 이구아나, 나비, 뱀 등 제목과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장면이 나옵니다. 이 장면이 연애소설과 혹은 노인과 어떤 관련이 있지? 라는 의아심을 갖고 책장을 넘겼던 기억이 납니다. 책을 읽으면서 표지의 장면이 책 속에 표현된 아마존의 모습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목이 주는 감성적 느낌이 좋았습니다.

이 책은 연애소설을 읽게 된 노인이 인간의 본능적 사랑, 가장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를 읽으며 아마존 밀림에서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입니다. 자연과의 교감과 원주민들과의 교류, 아무리 그들을 이해한다 해도 절대로 원주민이 될 수는 없다는 말은 슬픈 여운을 남깁니다. 함께 생활하며 그들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따라한다 해도 원주민들이 살아온 시간과 그 시간 속에 녹아있는 절제와 희생, 공존의 사고까지는 그저 흉내를 낼 뿐 닮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 아마존을 배경으로 무분별한 개발과 그로 인해 파괴되어가는 원주민들의 삶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양: TV뉴스나 영화, 다큐멘터리 등을 보면 이런 현상이 문제가 된 것은 꽤 오래되었고, 이 소설이 쓰여질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은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지만, 사실 피부로 느끼기는 쉽지 않은 것 또한 현실입니다. 원주민의 삶을 살아보지 않고 그들을 이해할 수 없듯이 우리 또한, 아마존을 '지구환경의 허파'정도로 인식할 뿐이지 원주민 삶의 문제까지 연결해서 생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소설을 통해 나를 조금이라도 그들의 삶 가까이에 놓아볼 수 있었다는 생각은 듭니다.



▶김: 자연과 문명 사이의 경계, 혹은 공존에 대한 생각은?

양: 딱 여기까지만 문명의 발전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습니다. 더 이상은 감당이 어려울 것 같기도 하고 이후에 벌어지는 현상에 대한 우려가, 기대보다는 두려움에 무게가 실립니다. 온난화, 이상기후, 생태계 위협 등을 실감하는 현실이라 걱정이 됩니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치러야할 대가가 혹독해질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당장 피부로 와 닿는 이상기후 현상만 하더라도 생명의 위협을 느낄 만큼 심각하고, 지구환경의 문제라는 걸 알지만 어떻게 대처해야 하고, 어떤 삶을 지향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내 삶에 가까이 다가왔을 때 아차 하겠지만, 그 땐 이미 간극이 더 벌어져서 회복이 힘들어지겠죠.



▶김: 자연과 문명이 공존 가능하다면 어떤 방식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그와 관련하여 제주도에 대한 생각은?

양: 자연과 문명은 지금도 공존하고 있다고 봅니다. 다만, 공존방식이 바람직한지 아닌지에 대한 인식이 차이겠지요. 문명이 발달한 곳에서 혜택을 누리고 있다면, 그 결과도 당연히 혜택을 누린 쪽에서 받아들여야 하겠죠. 그러나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그 또한 경제논리에 의해 책임이 전가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게 문제겠지요.

제주도만 하더라도 쓰레기 문제가 그 어느 지역보다 심각하잖아요. 쓰레기가 외부로 반출되기 어려운 입지조건을 감안해 쓰레기 처리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해결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자연을 보호한다는 미명 아래 오름 탐방로를 개설한 것까지는 좋은데, 군데군데 놓인 나무의자나 데크 등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흉물스럽게 변해갈 때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김: 책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이나 장면이 있다면?

양: 노인이 수아르족 인디오에 의해 점지된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면서 친구였던 누시뇨의 입을 빌려 이런 말을 합니다. "어느 누구도 초탈의 순간에 있는 타인의 천국을 자기 것으로는 삼을 수 없다."라고. 노인이 연애소설을 읽으면서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자신만의 감정에 몰두하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처럼, 그에게 사랑은 소유도 질투도 없는 오로지 사랑 그 자체를 위한 사랑이라는 겁니다. 돌아보면 '사랑'만큼 좋은 말도 가슴을 뛰게 하거나 뜨겁게 하는 말도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랑만큼 힘들고 어려운 단어도 없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김: 사냥을 갔던 백인이 시체로 떠내려 오고, 수아르족이 배후로 지목되었을 때 노인은 원주민이 아닌 짐승의 흔적을 찾아내어, 암 살쾡이가 백인을 살해할 수밖에 없는 심정을 말합니다. "그 짐승은 슬픔과 고통을 이기지 못한 채 주위를 배회하다 반쯤은 미쳐버렸을 것이고, 마침내 복수를 결심했을 것이오."라고. 노인이 말한 암 살쾡이의 입장에서 백인 양키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심정을 대변한다면?

양: 우기에 새끼들에게 줄 먹이를 구하러 나섰다가 돌아왔을 때 백인 양키가 쏜 총에 새끼들과 수놈이 죽어있는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감히 짐작은 안 되지만 참담하고 분노가 일 수밖에 없겠죠. 우기는 사냥이 금지된 기간이고, 더욱이 사냥이 금지된 짐승까지 총으로 쏴 죽였다는 것은 아무런 이유 없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는 거잖아요. 그러면 아무리 짐승이어도 목숨을 건 복수심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김: 노인에게 연애소설을 읽는 행위는 어떤 의미가 있나?

양: 노인은 수아르족들과 생활하면서 밀림의 생태를 잘 알고 있는 문명인이었고, 원시와 문명의 경계에서 유일하게 그들을 이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명인들에 의해서 그들의 삶의 터전이 파괴되는 걸 누구보다도 안타까워했죠. 그런 상황에서 노인의 연애소설 읽기는 죽은 부인과의 사랑을 떠올리며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오롯이 자신에게 몰두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이었습니다. 노인에게는 유일하게 삶의 의미를 지닌 시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김: 끝으로 나에게 책읽기란?

양: 나를 위한 나만의 시간입니다. 나 자신과의 진솔한 대화이며 문학에 대한 동경의 발로이고 스스로를 토닥이는 안도의 시간입니다. 어제 읽었던 책을 오늘 펼쳐들었을 때 '어, 이런 내용이 있었나?'하는 날들이 많아지고 책과 마주하는 시간 또한 극히 제한적이지만 읽기에 대한 행위를 멈출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나마 책을 펼쳐놓고 활자를 접하는 시간이 나에겐 휴식이고, 깨어있는 유일한 시간이니까요.



신머들새마을작은도서관


아파트 단지 내에서 책을 매개로 주민과의 소통을 꿈꾸는 작은 도서관이다. 햇빛이 드는 소박한 공간에 문을 열고, 누구든 책을 펼칠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을 꿈꾼다.

2000여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으며, 독서동아리 활동도 진행 중이다. 신머들은 이 지역을 일컫는 방언에서 따왔다.

이용시간은 화·목요일 오후 6~9시, 일요일 오후 1시~오후 5시까지이다. 정해진 시간 외에도 주민이 원하면 언제든 이용가능하다. 주소 서귀포시 서호남로 92-16. LH아파트 2단지 내. 전화 064)738-2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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