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백두대간 동쪽 홍두깨, 그 홍두깨가 아니다

[책세상] 백두대간 동쪽 홍두깨, 그 홍두깨가 아니다
제주 민속학자 고광민의 '동(東)의 생활사'
  • 입력 : 2019. 11.01(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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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도구·언어 생활사
문화 다양성 함몰 경계

'제주도의 생산기술과 민속'(2004), '제주 생활사'(2016) 등 '필드 노트'를 기반으로 제주 민속을 저 밑바닥까지 캐냈던 그이지만 '한국의 바구니'(2000)처럼 일찍이 그의 연구 영역은 뭍까지 뻗쳐 있었다. 제주 안에서 바깥을 보고, 그 바깥에서 제주를 보며 생활사를 기록해온 그다.

민속학자 고광민. 그가 이번엔 '동(東)의 생활사'를 냈다. 동해안에 접해있는 백두대간 동쪽을 중심으로 그곳에 살아가는 이들의 농업, 도구, 언어를 살폈다. 강원도 영동, 경북, 경남의 낙동강 동쪽 지역이 해당된다.

저자는 산과 바다, 논과 밭, 마을을 삶의 공간으로 삼아 살아가는 방식을 '원초경제사회'로 불렀다. 원초경제사회 사람들은 산야에서 초목, 논과 밭에서 양식, 강과 바다에서 수산물을 취하며 생계를 꾸려간다. 그들은 지역 풍토를 반영해 그에 적합한 갖가지 도구를 창조하고 계승해왔다.

이같은 생활공간에 맞춰 산야·전답·마을·갯밭·도구의 생활사를 적어 나갔다. 이 과정에서 멧돼지 사냥 과정, 소의 일생, 논거름과 밭거름, 미역밭 주인, 디딜방아, 대그릇과 싸리그릇, 물동이 등이 등장한다. 제주와 얽힌 사연도 보인다. 울산과 그 주변 지역 어촌 마을 사람들을 통해선 미역밭 생태와 제주 해녀들의 관계를 들여다봤다. 동해안에서 통나무배를 일컫는 '띳가리'는 제주도 '떼'와 비교해 탄생 배경을 짚었다.

저자가 고향 제주를 넘어 낯선 땅까지 누비는 이유는 한국의 문화가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이 위치한 백두대간 서쪽에 철저하게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에 식생활 도구였던 백두대간 동쪽 홍두깨의 의미는 사라지고 의생활 도구인 백두대간 서쪽 홍두깨만 살아있는 건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호미만 해도 지역에 따라 각기 달랐지만 이른바 국가주의, 단일 민족주의의 영향으로 지금은 그 다양성이 함몰된 상태다.

그는 "한반도에서 살아온 백성들의 입장에서 생활사 자취를 발굴하는 일은 계속 이어가고자 한다"고 했다. 한그루. 2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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