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학교] (9)귀덕초 '그림책 만들기'

[책읽는 학교] (9)귀덕초 '그림책 만들기'
다함께 만드는 그림책… “상상의 나래 펼쳐요”
  • 입력 : 2019. 12.03(화) 00:00
  •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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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생이 함께 그림책 만들기
지난 2017년부터 3년째 이어져
우리고장 탐방으로 건져올린
이야기 보따리 '한 가득'
아이들 책 읽는 재미 키우고
교사에게도 새로운 자극으로

귀덕초 어린이들이 그림책에 들어갈 그림을 들어보이고 있다.



'내가 이 책의 주인공이라면 어떨까.' 함께 책을 읽고 둘러앉은 시간, 아이들은 주인공이 된 걸 상상하며 저만의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책의 큰 줄거리에서 뻗어나간 또 다른 생각은 이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교사들은 번뜩 이런 생각에 닿았다. '그럼, 우리 이야기를 만들보는 건 어떨까.' 귀덕초등학교가 3년째 이어오고 있는 그림책 만들기의 시작이다.

어린이들이 함께 만든 그림책.

그림책을 만드는 건 귀덕초 아이들이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지난해부턴 책 표지 디자인도 아이들이 맡고 있다. 그 곁에 교사들은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그렇게 함께 만든 책은 2017년 '그림책, 마음을 물들이다'를 시작으로 지난해 '그림책, 마음을 꽃 피우다'로 이어졌다. 귀덕초는 올해에도 아이들의 글과 그림을 엮은 새로운 책을 펴낸다.

모두의 손을 거친 그림책은 풍성한 이야기보따리가 됐다. 1~2학년이 한 주제에 자신의 경험을 담은 작품을 실었다면, 3~6학년은 더 나아가 학년 또는 모둠별로 줄거리가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거기엔 '엄마를 바꾼 문제집', '앨리와 앙리의 옷장 탐험', 'YOU(유)튜버 김해일', '한밤의 학교'처럼 개성 넘치는 제목이 달렸다.

이야기를 따라 펼쳐지는 색색의 그림도 모두 아이들의 작품이다. 배경부터 등장인물까지 어떻게 표현할지 머리를 맞대 한 두 장면씩 완성해 냈다. 3년째 아이들과 함께 그림책을 만들고 있는 정선아 교사는 "역할을 분담해 그림을 그리기 전에 어떤 등장인물이 필요한지, 누가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등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나눈다"고 했다. 아이들의 이러한 고민이 더해지면서 이야기 속 그림은 서로 어색함 없이 연결된다.

3·4학년의 우리 고장 탐구 활동.

그림책 만들기는 학교생활 속에 자연스레 이뤄지고 있다. 다혼디배움학교(제주형 자율학교)인 귀덕초의 중점 교육활동을 통해서다. 아이들은 지역의 역사, 인물, 지리, 자연환경, 사회 문제를 탐구하며 이야깃거리를 모으고 온작품읽기, 전통미술 활동 시간에 이야기를 짓고 그림을 그린다.

정 교사는 "올해에도 마을과 학교 주변을 답사하고 우리만의 이야기는 무엇이 있을지 의논하는 과정을 거쳤다"며 "그림책 만들기는 교육활동의 결과물을 내는 일련의 과정처럼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처음엔 그저 막막한 일이었지만 책을 만드는 재미와 보람은 크다. 아이들은 이를 계기로 책과 좀 더 가까워지고 있다. 3학년 이단비 양은 "그림책을 만들면서 책에 대해 관심이 많아졌다"고 했고, 조미현 양은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그림책을 만드는 일은 교사들에게도 새로운 자극이 됐다. 아이들과 함께 만든 그림책이 한 권 두 권 늘어나면서 늘 새로운 것을 고민하는 데 마음이 간다. 독서교육 업무를 담당하는 양지은 교사는 "선생님들부터 마을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내용이 담긴 그림책을 찾아보고 함께 읽기도 한다"고 했다.

귀덕초는 모두가 함께 '책 읽는 학교'를 그리고 있다. 교사들은 전문적 학습공동체를 통해 틈틈이 책을 읽고 독서교육과 연계한 문화체험연수로 책 읽기의 소중함을 느낀다. 교장실 문턱도 낮췄다. 3~6학년 아이들은 중간 놀이시간에 '100명의 위인을 가슴에 품다'를 주제로 교장선생님과 마주하고 있다. 자신이 읽은 위인전으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다. 이정애 귀덕초 교장은 "모든 교직원이 좋은 책을 함께 읽고 그 속에서 책 읽기의 소중함을 느끼며 성장하는 것은 아이들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은기자

[왜 책인가?] 이정애 귀덕초등학교 교장 ‘책은 밥이다’

'책은 밥이다' 몇 년 전 EBS기획특강에서 10여 년간 범시민 독서운동을 실천하신 남유진 전 구미시장님이 하신 말씀이다.

밥을 먹듯 책을 읽어야 한다는 말씀에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지혜롭게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늘 책을 가까이해야 하고, 그러려면 밥맛처럼 책 맛이 좋아야 한다.

책을 읽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부모님들이 많다. 학교에서 독서교육을 충실히 하여 자녀가 책을 좋아하도록 이끌어주길 기대하신다. 그러나 책읽기를 좋아하는 아이, 책의 맛을 아는 아이로 키우는 것은 학교 독서교육만으로는 달성하기 매우 어려운 과제다.

일본에서는 아기가 첫 예방접종을 위해 보건소에 가면 접종이 끝난 후 그림책을 읽어 준다고 한다. 그림책 선생님은 엄마 품에 안긴 아기에게 제주말로 '얼랑쉬'를 하면서 재미나게 책을 읽어주고 그 책을 선물로 준다. 엄마는 돌아와서 선생님이 읽어주던 모습 그대로 아기에게 읽어준다. 아이에게 첫 번째 책 맛은 한평생 잊을 수 없는 달콤함이었을 것이다. 이것이 일본 사람들이 책을 좋아하게 되는 큰 이유가 아닐까 한다.

우리 아이들이 책 맛을 아는 사람, 책 읽기를 즐기는 시민으로 자랄 수 있도록 학교에서는 온책읽기를 비롯하여 이런저런 독서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국가 또는 시도차원에서도 일본의 보건소와 같은 입학 전 독서시스템을 구축하여 아이부터 어른까지 책을 즐기는 가정, 사회가 되는데 도움되기를 기대한다.

※이 취재는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의 지원을 받아 이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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