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농업유산, 밭담을 잇는다] 돌을 쌓는 사람들 (1) 프롤로그

[세계농업유산, 밭담을 잇는다] 돌을 쌓는 사람들 (1) 프롤로그
밭담을 지켜 온 사람들… 제주의 미래를 다시 묻다
  • 입력 : 2020. 01.01(수) 00:00
  •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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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라일보DB

밭담 쌓는 일의 단절… “경관 자원 무너질 것”
밭담 축조 기술 등 전승 위한 삶의 기록 중요
장인 지정 등으로 밭담 보전·활용 토대 갖춰야

제주밭담이 유엔식량농업기구(FAO) 세계중요농업유산(GIAHS)으로 지정된 지 5년이 넘었다. 제주를 넘어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 받으면서 해마다 밭담축제가 열리고 밭담길이 조성되는 등 밭담을 보전·활용하려는 움직임이 이어져 왔다. 하지만 사라져가는 밭담을 미래 세대로 잇기 위한 남은 과제도 많다. 밭담을 있게 한 '사람들'에 대한 조명도 그중 하나다.

한라일보는 새해를 맞아 밭담을 따라 흐르는 삶의 이야기를 만난다. 밭담이 세계농업유산으로 지정되는 과정에서 그 가치를 집중 조명하고 보전 방안을 모색했던 본보 '흑룡만리 제주밭담' 기획의 연장선이다. 오늘날 제주 농업, 밭담 경관을 있게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제주밭담의 지속 가능한 미래를 다시금 고민한다.

▶제주인과 밭담… 돌 쌓는 일의 단절

하늘에서 내려다 본 제주는 수많은 조각을 짜 맞춘 듯하다. 온 섬을 잘게 쪼개며 흐르는 검은 밭담은 제주만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내보인다. 오늘날 제주를 상징하는 대표적 문화경관이다.

그 뒤에는 오랜 세월 돌을 쌓아온 제주사람들이 있다. 화산섬 제주에서의 삶은 돌과 뗄 수 없었다. 땅을 갈아 농사를 지을 때도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돌을 마주해야 했다. 이를 다루는 것은 숙명 같은 일이었다.

제주사람들은 돌에 쓸모를 더하며 삶을 이었다. 예부터 돌로 담을 쌓아 밭의 경계를 구분 짓고 소와 말의 침입을 막았다. 밭담으로 바람을 막아 땅을 보호하고 농작물을 길러내기도 했다. 척박한 환경에서 오랜 세월 농업이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돌에 쓸모를 불어넣은 제주인의 삶의 지혜 덕이었다.

돌담을 쌓는 일은 돌 일을 하는 '돌챙이'(석공의 제주어)만의 일이 아니었다. 과거 제주사람들은 땅을 일구며 손수 돌을 고르고 밭담을 쌓았다. 농사를 짓고 밭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담을 쌓는 법을 몸으로 익히고 이를 자식 세대로 이어갔다.

하지만 밭담이 사라지는 상황과 맞물려 밭담을 쌓는 일도 단절되고 있다. 각종 개발과 농경지 감소, 농업 형태의 변화 등으로 밭담이 무너지고 있지만 이를 다시 쌓을 수 있는 사람은 줄어들고 있다. 이는 농업유산인 밭담의 지속 가능성을 크게 위협하는 요인이다.

조환진 제주돌빛나예술학교 교장은 "땅이 있어도 직접 농사를 짓지 않고 그 땅을 빌려 대규모로 농사를 짓는 일이 많아지면서 밭담이 무너져도 다시 쌓지 않는다. 농업인구 고령화 등으로 인해 밭담을 쌓을 사람도 감소하고 있다"며 "허물어진 밭담을 그대로 두면 제주를 대표하는 경관 자원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밭담, 미래 세대로 잇기 위한 ‘사람’에 주목

돌을 쌓아온 제주사람이 있었기에 농업유산인 밭담이 지켜질 수 있었던 것처럼 밭담의 가치를 후세에 전하는 일에도 '사람'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의 이야기를 남기는 것은 밭담 축조 기술을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전승 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이러한 필요성은 지난 11월 제주특별자치도가 주최한 '2019 제주밭담 보전관리 및 가치 제고 방안 세미나'에서도 제기됐다. 당시 주제발표에 나섰던 공공정책연구소 나눔 홍선영 박사는 "돌 일을 하는 사람들의 경험과 기억을 생애사적으로 채록하는 것은 곧 마을의 인적 자원을 발굴하는 일"이라며 "이 과정을 통해 밭담의 보전관리를 위한 주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밭담 장인을 발굴해 지정하는 것도 밭담의 보전·활용을 위한 단단한 토대라는 점에서 시급하다. 이미 정부와 제주도가 2014년 세운 '제주밭담 보전관리 종합계획'에도 포함된 일이지만 일부 사업을 통해 밭담 장인 20여 명을 조사하는 데 그쳤을 뿐 체계적인 관리에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강승진 제주도농어업유산위원장은 "밭담을 쌓아온 사람들이 있었기에 제주 농업이 이어지고 제주의 관광 자원인 밭담 경관이 가능했다"며 "밭담 장인, 석공 등으로 불리는 전문가를 발굴해 인증하고 대우하면서 밭담 쌓는 일의 보수·관리 자문과 밭담축제, 교육 등에서의 역할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위해선 장인 인증 기준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 인증을 위한 위원회를 구성해 기준을 마련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밭담을 쌓아 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장인을 발굴해 지정하는 것은 곧 오늘날 제주 농업과 문화, 환경을 있게 한 사람들에 대한 조명이다. 농사를 지으며 돌을 쌓는 일을 몸으로 익힌 제주인과 수십 년 돌 일을 해 온 석공의 이야기가 언젠가 잊힐 수 있다는 점에서 늦출 수 없는 과제이기도 하다.

조환진 제주돌빛나예술학교 교장은 "석공은 제주의 경관을 만들어 왔지만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직업으로 배우려는 사람도 없는 현실"이라며 "제주의 자원을 보전하기 위해서도 이들에 대한 제대로 된 조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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