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천연보호구역 이어 1970년 국립공원으로 지정
생물권·세계유산·지질공원·람사르습지로 세계적 명성
이 글을 준비하면서 우연히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문장을 만났다.
'기원전 3세기에 스리랑카의 데바남피야 티샤왕은 세계 최초로 자연보호구역을 공식적으로 지정했다. 2000년이 지난 후 웨스트요크셔의 유럽인이 이와 비슷한 생각을 떠올렸고, 그로부터 다시 50년이 지난 후에 미국에 옐로스톤국립공원이 생겼다. 그리고 1900년에는 지표면의 0.03%가 보호구역이 되었고, 1930년에는 그 수가 0.2%로 늘었다. 천천히, 천천히 10년이 지나고 또 10년이 지나면서 한 번에 숲 한 곳씩 보호구역이 늘었다. 연간 증가율은 너무 작아서 거의 감지하지 못할 정도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지표면의 무려 15%가 보호구역이고, 그 수치는 꾸준히 늘고 있다.'
빌 게이츠가 미국의 모든 대학과 대학원 졸업생에게 선물한 화제의 책으로 2019년 국내에 소개된 '팩트풀니스(FACTFULNESS, 사실충실성'>에 나오는 대목이다. 저자 한스 로슬링이 "사회와 문화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사소하고 더뎌 보이는 변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축적된다"며 소개하는 내용이다.
한라산도 국제보호지역으로서 더디지만 끊임없는 변화와 축적의 시간을 거쳐왔다. 1966년 천연보호구역에 이어 1970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래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지정(2002), 세계자연유산 등재(2007), 물장오리오름 산정화구호 습지(2008) 1100고지 습지 람사르습지 등록(2009), 세계지질공원 인증(2010), 숨은물벵디 습지 람사르습지 등록(2015).
천연보호구역과 국립공원은 한라산 보호의 서막을 장식한다. 2020년은 한라산이 국립공원 지정 50년이 되는 해다. 3월 24일을 공식 지정일로 기념한다.
한라산은 누구나 안다고 한다. 우리는 한라산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한라산은 탐라 개벽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숱한 역사의 격랑과 모진 삶의 환경을 이겨냈던 선인들의 강인한 의지의 표상이며, 제주인들의 영원한 삶의 터전이다. 제주섬 한복판에 좌정한 제주도의 상징이자, 생명 그 자체가 한라산이다.
'제주인들은 한라산 기슭에서 태어나 살다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 뼈를 묻는다. 한라산은 제주도민의 삶과 역사, 문화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영역이다. 한라산이 제주도요, 제주도가 곧 한라산이라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한라산 총서)
내가 한라일보 선후배 동료, 전문가들과 한라산을 탐사한 것은 1998년 한라산 학술대탐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20여년 전이다. '생명의 원류-하천과 계곡'은 2002년까지 한라산과 그 속을 관통하는 17개 하천을 4년여간 답사하는 대장정이었다. 한라산 학술대탐사는 2003년 10월 제주섬 동서 장축에 분포하는 오름 탐사인 '한라대맥을 찾아서'와 '한라산 환상숲길을 가다'(한라산 둘레길)로 이어졌다. 그 모태가 바로 한라산이다.
400개 가까운 오름이 점과 점으로 제주섬을 둘러싸고, 계곡과 하천은 선과 선으로 해안에 닿는다. 한라산은 제주와 도민들을 존재케 하는 생명의 공간이자 자원의 보고다.
한라산은 4대 국제보호지역을 갖고 있는 전 세계 유일한 지역이다.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한라산과 아름다운 땅 제주는 신이 우리에게 선물한 보물이자 세계인이 함께 가꾸어야 할 유산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한라산의 최근 반세기는 위상을 증명해 온 역사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한라산국립공원 지정 50년
한라산을 천연보호구역과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움직임이 구체화된 것은 1960년대에 이르러서다. 그 과정에 국제 환경 기구와의 공조가 눈길을 끈다. 바로 IUCN(세계자연보전연맹)이다. 1963년 11월 IUCN의 공원설계 전문가인 윌리엄 하트(Willian J. Hart)가 방한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돌아간 후 방한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이때 '한라산'을 언급한다.
하트는 보고서에서 ▷원거리 관광 가치 ▷유사 이래의 역사적 가치 ▷특유한 과학적 가치 등이 인정될 수 있는 지역에 대해서는 보호를 위해 적당한 조치가 취해져야 할 필요성을 지적하면서 그 지역에 한라산을 비롯 설악산, 흑산도 등을 꼽고 검토를 권유했다. 이 보고서는 한라산이 천연보호구역과 국립공원 후보지로 부각되고 정부 차원의 조직적인 학술조사가 착수되는 단초를 제공한다.
문화재관리국은 1964년 2월과 3월에 문화재위원회 분과위원회 회의를 열어 한라산 등을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하기 위한 종합학술조사계획을 세우고 기초자료를 얻기 위한 현지 예비답사를 실시할 것을 결의했다. 그해 4월에는 IUCN 산하 국립공원위원회 위원인 로버트 씨크(Robert Seeke)가 국제협력차 내한해 천연보호구역 지정 절차에 관해 논의한다. 10월에는 문화재위원회 분과위 박만규 위원을 한라산 조사책임자로 결정하고 구체적인 조사일정을 확정지었다.
한라산천연보호구역과 국립공원 지정을 위한 정부차원의 학술조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학술조사는 지질과 동물, 식물분야에 걸친 최초의 종합조사였으며 참가인원도 56명에 달했다. 국내 최고 권위의 학자들이 한라산에 집결한 것이다.
조사단의 면면만 살펴보더라도 식물의 경우, 박만규 단장을 비롯해 이영노 임기흥 오덕봉 이우철, 그리고 제주출신으로는 부종휴가 포진했다. 동물분야에도 원병오, 조복성 등 당대 최고 실력자들이 두루 망라됐다.
한라산 학술조사는 11월 5일부터 20일까지 실시됐다. 이때 한라산국립공원 획선이 결정되었다. 학술조사보고서는 4년 후인 1968년 '한라산과 홍도'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그 이전에도 집단적인 학술조사보고서는 이미 있었지만 이처럼 규모를 갖춘 조사보고서가 단행본(424쪽 분량)으로 발간되기는 사실상 처음이었다.
조사보고서는 한라산 자생식물이 1782종에 이른다고 공식 언급했다. 이전까지 공식적으로 발표된 한라산 자생식물은 이덕봉이 '제주도식물상'(1957)에서 언급한 1465종이었음에 비추어 무려 300여종이 추가된 것이었다. 여기에는 제주출신의 식물학자 부종휴 등의 공이 컸다. 이처럼 한라산은 각종 희귀 동·식물 등 생물의 종 다양성과 경관자원 등 자연자원의 보전 및 학술적 가치가 대단히 높은 지역으로 평가됐다.
한라산이 천연기념물(제182호)로 지정된 것은 학술조사 후 2년이 경과한 1966년 10월 12일이다. 이같은 조치는 한라산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기에 앞서 천연자원을 보호하려는 것이었다. 한라산 천연보호구역은 91.654㎢이다. <글=강시영 (사)제주환경문화원장, 사진=강경민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