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우리말로
코로나 시대 ‘허의 문명’
첫 장을 열면 책을 엮은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곧바로 '노자 도덕경' 안으로 독자를 이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글귀가 '道可道 非常道'(도가도 비상도, 도를 도라고 말하면 그것은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 도를 도라는 어떤 규정된 관념의 틀 속에 가두지 말라는 뜻으로 시간의 흐름 속에 시시각각 변화하는 현상이 언제나 그렇게 지속된다는 점을 천명하고 있다.
2500년 전 노자의 '말씀'이 격변하는 21세기에 닿았다. 철학자 도올 김용옥이 81장에 걸친 '노자 도덕경'을 우리말로 옮기고 그 뜻을 해설한 '노자가 옳았다'이다.
도올이 노자를 접한 시기는 20대 초반의 대학생 때였다. 노자를 통해 학문의 진로를 동양철학으로 정한 그는 지금까지 50년 넘게 노자를 핵심축으로 동서양의 다양한 학문을 축적해왔다. '노자가 옳았다'는 지난 노자연구를 총결산한 노작으로 전 지구적인 위기 상황에서 노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도덕경 3장의 한 대목을 보자. '不尙賢 使民不爭'(불상현 사민부쟁, 훌륭한 사람들을 숭상하지 말라! 백성들로 하여금 다투지 않게 할지니.) 도올은 여기에서 지금의 대학입시병이나 스펙 운운하는 사회병태에서 생겨나는 가치서열의 조작을 읽는다. 노자는 상현의 사회구조화가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목표를 '경쟁'이라고 갈파했다. 경쟁하면 문명의 질서에 예속돼 통치가 매우 용이해지고 가치관의 획일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노자의 정치철학은 근원적으로 '쟁'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거였다.
현재의 우리 문명은 경쟁구조와 경쟁심을 기본 동력으로 삼아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고 소비를 부추기는 자본주의적 경제발전을 지향하고 있다. 이같은 문명 발전의 귀결은 오늘날 우리가 맞닥뜨린 세계 기후 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이 아닐까.
무엇을 채우려는 인간의 작위가 작동해온 우리 문명의 근본적인 자세 변환을 요구받고 있는 때에 노자는 일찍이 부쟁(不爭)을 말했다. 노자의 철학은 무위의 철학이고 비움인 허(虛)를 존중한다. 허가 있어야 자연의 순환이 가능하고, 인간 존재의 순환이 가능하고, 문명의 순환이 가능하다. 도올은 이제부터라도 노자의 통찰을 받아들여 '허의 문명'을 새롭게 건설하자고 호소한다. 통나무. 2만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