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목 중 가장 많은 비중 차지
4·3 학살의 현장에도 폭낭들쇠락하는 공동체 문화 증거
제주 마을마다 수령이 오랜 폭낭('팽나무'의 제주 방언)이 하나씩 있었다. 폭낭은 단순한 나무를 넘어 마을의 구심점 역할이자 고향을 상징해왔다. 민간신앙의 성소에도 당의 신목으로 가장 많이 보이는 나무가 폭낭이다. 2008년 제주도가 '제주문화상징' 99선 중 하나로 폭낭을 주저없이 꼽은 이유다.
한라산, 화산섬 돌, 제주 거욱대, 제주 돌담 등을 주제로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제주가 품은 이야기를 풀어내온 강정효 작가가 이번엔 사진집 '폭낭'을 엮었다. '제주의 마을 지킴이'란 부제를 달고 현장을 누비며 틈틈이 촬영해온 제주 지역의 폭낭을 한데 모았다.
사진집은 신목(神木), 4·3의 기억, 댓돌과 폭낭으로 나눠 폭낭에 스민 제주 역사와 문화를 전한다. 흑백으로 담긴 폭낭들은 공통적으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본향당신의 신목 기능을 하는 폭낭은 어제의 모습이 아니다. 신목은 신령이 나무를 통해 강림하거나 그곳에 머물고 있다는 믿음의 산물이다. 하지만 지역민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신당들이 개발바람에 훼손되면서 신목도 원형이 바뀌고 있다. 작가는 "인간의 탐욕에 신들도 쫓겨나고 있다"고 했다.
폭낭은 4·3 학살의 현장도 지켜봤다. 북촌리 당팟, 동복리 장복밧, 교래리, 가시리 안좌동 등 참혹한 죽음이 벌어지던 그곳에 폭낭이 있었다. 명월리 폭낭 군락은 무장대 은신처가 될 수 있다며 토벌대 측에서 제거하려 했지만 마을 사람들의 호소로 간신히 화를 면했다.
폭낭과 댓돌도 급격한 도시화 속에 도로 확장, 주차 공간 확보 등을 이유로 베어내고 철거되고 있다. 폭낭의 부재는 나무 하나가 수명을 다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폭낭 아래 댓돌에 모여 마을 대소사를 논의하던 공동체 문화가 희미해지고 있는 점을 보여준다.
강 작가는 사진집에서 줄곧 팽나무를 방언인 폭낭으로 칭했다. '폭'이 열리는 수목이기에 팽나무 분포도가 높은 제주에선 이 나무의 표준어가 폭낭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한그루. 2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