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의 제주문화사전] (35) 앞바르 생태관

[김유정의 제주문화사전] (35) 앞바르 생태관
인간은 자연의 동반자… 자연 지배자라는 생각 버려야
  • 입력 : 2020. 11.16(월)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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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 자연대상 4가지로 분류
자연에서 얻는 것에 감사
삶도 생태계 흐름에 맞춰


#2020년 인지혁명 원년(元年)

세상이 변한다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지구 전체를 한 순간에 바뀌게 만든 인지혁명을 가져왔다. 어제의 시간은 변한 것을 감지하지 못하게 우리 자신도 알지 못하게끔 천천히 변해왔다. 산업이 전파되는 속도에 따라 분명 시간이 필요했고, 차차 우리가 살던 주위의 풍경이 하나 둘 변하더니 어느새 우리 동네도 자신이 길을 찾기가 어렵게 됐다. 바다는 메워지고, 해안은 온통 관광용 시설로 채워진다. 동네에서 유명했던 건물이 파괴되고, 의미 있는 장소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제주인의 정신세계를 아우르던 신당이 철거되거나 방치돼 행락객의 쓰레기만 바람에 펄럭인다. 바다는 산업시설들의 표적지가 되고 마을은 온통 새 단장을 시작한다. 도시재생의 의미를 농촌과 해촌에 발 빠른 공모제도를 이용해 마을 살리기를 디자인으로 치장하면서 제주도 어디를 가나 낯설게만 느껴지는 이국 풍경을 만난다.

섯산이물당에서 본 앞바르.

제주도 전역에 늘어난 카페, 커피숍, 펜션, 빌라, 타운하우스가 한라산 정상만을 남기고 버짐처럼 중산간 지대까지 퍼지고 있다. 그간 10여 년, 바다에서 한라산까지의 개발 바람은 가히 태풍의 속도로 휘몰아쳤다. 이제 마을은 따뜻한 온기가 없어졌고 디자인 잘 된 마을에 사람 냄새가 없다.

그러나 코로나19로 모든 것을 주춤거리게 했다. 코로나19가 어느 때보다도 분명하게 사람들을 깨닫게 만들었기에 2020년은 인류의 새로운 인지(認知) 혁명의 원년(元年)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구시대(구세대)와 신시대(신세대), 혹은 구산업(몰락하는 산업)과 신산업(떠오르는 산업), 그리고 모든 시스템에서 구체제와 신체제, 지구 환경의 보존과 파괴의 문제 등의 이유가 분명해졌다.

인류 진화에서 적응하는 종(種)은 오래 살아남고 적응하지 못하는 종은 소멸된다는 문명사적 관점으로 보게 되면, 변화의 속도가 과거보다 훨씬 빨라졌다는 것이다. 문명의 성장과 쇠퇴를 거듭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침내 우리 곁에서 익숙한 것들이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기분은 그리 유쾌하지 못하다. 사람은 친근한 것에 애착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영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한데, 그 심리의 밑바닥에는 안전과 안정을 바라는 욕망이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시간의 힘은 삶의 무게를 더 짓누른다.



#앞바르 생태관

생태적 사고란 자연을 정복하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더 오래도록 살아가기 위해서 다른 생물들과 함께 자연의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이다. 원래 인간은 먹을 만큼만 자연에서 가져왔고, 상황에 맞춰 생태와 협력하면서 살아왔다.

물질 때 여자들이 이용했던 패물.

우리는 일찍이 앞바르에서 이것을 배웠다. 앞바르는 마을의 생존을 지켜주는 위대한 자원이기도 하다. 앞바르는 대정읍 모슬포 지경의 동네 바당이다. 어떤 마을에서는 알바당이라고도 한다. 제주도 해안가 마을은 대개 이 앞바르가 있다. 바르는 바다(바당)을 말하는데 바릇 궤기(바닷고기)라고 할 때에도, 또 바다에 가는 일도 바릇간다고 했다. 앞바르 반대말로 먼바다 작업을 지칭하는 난바르가 있다.

알은 아래를 말하는 것이다. 알동네(아랫동네), 알드르(아랫 들), 망알(후망보는 아래)이라는 지명이 있고, 바람알(바람 아래), 배또롱 알(배꼽 아래), 우알(위, 아래)이 위치에 해당하는 말도 있다. 알드르(下野)와 웃드르(上野)는 대정현(大靜縣)을 중심으로 현(縣) 아래 넓은 벌판은 알드르, 현 위쪽 목장지대는 웃드르라고 한 것이다. 알드르 동산이물의 섯알오름은 동산이물 마을 서남쪽 아래(섯알) 오름인데 마을을 중심으로 마을 사람들이 방위에 따라 붙인 이름이다.

앞바르라는 개념은 그 마을 주민들의 바당밭이다. 제주에서는 자연 대상지를 밭으로 인식한다. 자연이 키워내는 것을 시간적으로 조절하며, 그것을 공유해야하기 때문에 바당도 경영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경작지로 인식했던 것이다.

제주 밭의 생산적 개념을 크게 나누면 바당밭, 드르팟, 곶밭, 산밭 등이 있다. 바당밭은 말 그대로 해전(海田), 들은 드르팟(野田), 중산간 지대의 곶(곶자왈)은 곳밭(藪田)이고, 산림지는 산밭(山田)을 말하는 데, 이런 분류는 자연 자체를 허투루 활용하지 않고, 마을사람들과 공존하기를 꿈꿔 소중하게 다룬 의미이다. 이런 밭들은 소유 또한 공유지가 많았고, 사유지도 협의에 의해서 쉽게 이용했다. 바당밭은 물 때를 기준으로 채취와 포획이 이루어진다. 드르팟은 기능이 매우 다양하지만, 의례의 필요 시나, 수확 이후에 자유로웠다. 수렵은 계절에 맞게 필요한 사람에 한 해서 이루어지고, 곶밭 또한 땔감, 수렵, 열매 채취 등 필요한 사람에 한하여 이용했다. 그래서 신들도 밭마다 많다. 바다에는 용왕신, 드르팟에는 조상신, 곶밭에는 직능신, 산전에는 목축신 등이 있는 것이다. 이 모두가 자연신의 형태를 하고 있어서,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를 매개해주는 믿음을 갖게 하는데,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자연으로부터 얻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모든 자연 대상지가 밭이 되는 것이다.



#앞바르의 생태구조

앞바르 새원은 만을 형성하고 있는 마을 앞의 바다를 에워싸며, 다시 그 속에 여러 원담들이 있다. 원담 안은 안전지대이다. 새원, 먹돌원, 산이물원, 모도리 수눌이 있다. 모도리는 돌묵상어다. 돌묵 상어는 큰일에 횟감으로 인기가 높다. 물은 산이물을 중심으로 간조 시간에 따라 남녀가 따로 이용하는 망알물(남), 패물(여), 먹돌원물(남)이 있다.

낚시 후 남자들이 이용했던 먹돌원물.

앞바르는 하모리 잠녀들의 단골 물질터인데 운진여까지 그야말로 생활의 터전이었다. 옛날 인근에는 도살장, 오일시장, 고아원, 통조림공장, 감젯공장 등이 있었다. 동쪽에는 일제강점기 비진여에 방파제가 조성돼 현재에 이르고 있고 미군들도 자주 놀러왔다. 앞바르는 마을 사람들이 고망 낚시터인데 낚시를 하려면 느껍(미끼)을 스스로 잡아야 한다. 앞바르에서 물질하는 해산물들은 소라, 전복, 굴멩이(군소, 바다달팽이), 문어, 톳, 우무(천초), 청각, 럼피(넙패), 보말 등이었고, 고망낚시로 잡는 물고기는 돔, 우럭, 돌우럭, 조록, 심방어랭이 등이었다. 여는 검은 여가 있다. 이 밖으로 외해(外海), 즉 난바르이다.

앞바르의 지리적 특성은 등고산 아래로 모슬봉 뒤는 웃드르→하모리→앞바르(섯산이물→패물→섯산이물당→망알물→조수웅덩이→새원→검은 여)→난바르가 된다. 이때 조수간만의 차가 생태계 흐름을 조절하고 사람들은 물때에 맞춰 앞바르에 간다.

<김유정 미술평론가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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