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의 하루를 시작하며] 마음 읽기

[김연의 하루를 시작하며] 마음 읽기
  • 입력 : 2020. 12.09(수) 00:00
  • 강민성 기자 kms6510@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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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없이 아버지의 기일이 돌아왔다. 시간이 흘러도 익숙해지지 않는 날이 있다. 어제인 듯 그날의 공기와 그날의 하늘과 그날의 숨소리가 온몸에 달라붙는 그런 날, 아버지의 기일이 그렇다. 눈을 뜨면 습관처럼 뉴스를 보고 SNS를 둘러본다. 그러다 발견한 시 한편에 울컥 눈이 뜨거워졌다. 시 한편이 그날의 나의 마음을 읽고 다독여 줬다.

아버지는 살아생전 본인의 인생을 글로 쓰면 장편소설 한권으로도 부족하다 하셨다. 딸이 글을 쓰니 한번 써보지 않겠냐고 종종 농담 삼아 물어보시곤 했었다. 그때마다 나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소설 몇 권쯤의 사연은 다 있다고 볼멘소리를 하곤 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소설 같은 삶의 이야기는 이미 내 마음에 새겨져 있다.

삶과 인생은 문학과 이어져 있다. 어쩌면 문화 예술 중에 가장 불친절한 장르가 문학일지 모른다. 선택을 해야 하고 시간을 투자해 읽어야 하며 스스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허나 삶의 서사구조를 품고 그 속의 다양한 희로애락을 담아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하는 힘 또한 문학에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은 감정을 드러내 자아를 발견하고 독자는 글을 매개체로 감정을 환기시킨다. 그러한 과정들이 문학치료라는 틀 안에 담겨있다. 문학이 가지고 있는 비현실성과 상상이 현실에 적절하게 스며들 때 우리의 일상은 좀 더 조화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올해처럼 모든 사람들의 심신이 지친 시절에는 글이 좀 더 힘을 발휘하기를 기원하게 된다.

2020년은 사계절이 온통 아프다. 한 고비 한 고비를 어렵게 넘으며 당도한 한 해의 끝, 계절. 우리는 유례없는 수능을 치렀고 으레 치르던 축하와 격려도 거리두기에서 자유로운 마음으로 전할 수밖에 없었다. 연말의 풍경도 사뭇 다르다. 거리를 반짝이던 트리도, 따뜻한 온정을 기다리는 구세군 자선냄비도 스마트폰으로 발길을 돌리고 67년 동안 한 해의 끝과 시작을 알리던 보신각 종소리도 올해는 침묵한다고 한다. 각종 연말 행사와 송년모임은 꿈도 꾸지 못하며 어쩌면 우리는 유독 추운 연말을 보내게 될지 모른다. 그러나 꿋꿋하게 고비들을 넘겨왔듯 만남은 조금만 더 미루고 마음은 한발 다가서며 다른 방식으로 2020년을 보내줘야하지 않을까. 관계 속에서 받은 상처가 고독 속에서 받는 상처로 옮겨가지 않도록 시간을 보내는 지혜로운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올 연말에는 차분히 나의 마음을 읽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퍽도 힘들었던, 아직도 낯선 일상생활 속에서 당연히 견뎌야 했던 무게들을 되돌아보는 시간. 스스로 알아주고 스스로 다독여주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따뜻한 이불 속에서 군고구마처럼 달달한 책도 읽고 차곡차곡 쌓여있는 감정의 찌꺼기들을 글로 표현하고 공감가는 문장에 밑줄을 그으며 잠시 눈시울을 적셔도 좋다. 여전히 외로운 거리두기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일지라도 우리에겐 쉼표 같은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다. 소중한 모든 이들이 고즈넉하지만 고독하지 않게 2020년을 보내주길 기원한다. <김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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