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어마이블루를 열고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공식 SNS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1인 출판사의 책을 한 권 소개했는데 며칠쯤 지나 다른 동네서점 SNS에 입고 소식이 올라왔다.
우리는 처음부터 200종의 책만 입고하는 걸 원칙으로 삼았기에 입고 책의 기준이 엄격한 편이다. 보통 인터넷 서점이나 기사 검색을 해서 괜찮은 책을 발견하면 목록을 만들어둔 뒤 반드시 오프라인 서점에서 직접 살펴보거나 구매해 한 번 더 만듦새와 내용을 확인한다. 그리고 같은 분야의 책들 중 가장 괜찮은 책부터 순위를 매겨 놓고 그중에서 출고율이 가장 낮은 책, 즉 서점 입장에서 이윤이 가장 높은 책을 입고한다. 한정된 종수에서 항상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 서점 입고 책들은 물론 내 기준에서긴 하지만 만듦새와 내용이 어느 정도 보장되면서 책의 출고율도 일정 수준을 넘지 않는 것들이다.
처음엔 다른 동네서점에서 입고한 것이 당연히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안 알려진 책이라도 세상에서 그 책을 나만 알란 법은 없으니까. 하지만 그 이후로 우리가 책을 소개할 때마다 며칠 후 그곳의 '새 책 입고 목록'에 매번 똑같은 책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서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국 특정 책 소개를 거의 중단하다시피 한 계기는 엉뚱한 데서 터졌는데, 서점을 열고 1년쯤 지나 다른 지방에서 온 관광객 손님이 자기네 동네서점이랑 우리의 분위기가 너무 비슷하다고 한 것이다. 부랴부랴 SNS를 찾아서 들어갔더니 오픈한 지 두어 달 남짓한 곳이었고, 뭔가 비슷한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이걸 가지고 뭐라 하기는 애매한 상황이었다. 정면 벽의 타공판을 이용한 디스플레이나 책의 종수를 제한한 점, 무엇보다 목록 중에 겹치는 게 유독 많긴 했지만, 당시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의 개성이나 소신 없는 동네서점이 오래 갈 리 없다고 믿는 것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가 더 이상 책 소개를 올리지 않아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곳은 오픈한 지 1년도 안 되어 문을 닫고 말았다.
얼마 전에 출간된 어느 유명한 동네서점 주인장의 책에도 이와 비슷한 일화가 나온다. 그 서점만의 독특한 시그니처인 '읽는 약' 봉투를 다른 지역의 동네서점에서 양해도 구하지 않고 똑같이 베껴서 팔고 있더라는 것이다. 이런 콘셉트는 사실 특허도 낼 수 없어서 대놓고 따라 한다고 법적인 조치를 취할 수도 없다. 다만 우리가 소개하고 파는 품목이 읽는 약, '책'이기에 그런 식의 무례에 대해 씁쓸함을 더 짙게 느낄 뿐이다.
디어마이블루는 올해로 벌써 4년차가 됐다. 지난해의 위기로 많은 동네서점들이 문을 닫았지만 또 새롭게 문을 여는 동네서점들도 있다. 조금이라도 먼저 서점을 연 사람으로서 꼭 한 가지만 얘기하자면 우리가 파는 '책'은 그 자체로는 차별성이 없다. 우리 서점에서 파는 책은 대형서점에도 있고 온라인 서점에도 있고 다른 동네서점에도 있다. 이것을 어떤 콘셉트로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결국 그 서점의 개성이자 힘인 것이다. 세상천지 새로울 게 없다지만 새로 등장하는 동네서점들이 남을 따라 하기보다는 치열한 고민과 전략으로 자기만의 빛을 발하면서도 오래가는 그런 동네서점들이 되길 바란다. <권희진 디어마이블루 서점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