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상주의 한라칼럼] 워싱톤 야자수의 추억

[강상주의 한라칼럼] 워싱톤 야자수의 추억
  • 입력 : 2021. 01.26(화) 00:00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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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드라마였는지 기억은 안나지만 "생각이 바뀌었으면 행동도 달라져야한다"라는 대사가 있었다. 때론 급작스런 생각의 변화도 있지만 대부분은 여러 상황에서 관찰된 것들이 연결돼 생각이 바뀌고 또 아이디어도 생긴다. 그래서 우리는 주위 상황을 잘 관찰해보면 새로운 작품도 나올 수 있다.

80년대초 중문관광단지에 갔더니 육지와는 다른 이국적인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특히 잘 닦여진 도로 옆 워싱톤야자수가 줄지어 서있는 모습은 마치 영화 속 외국 같았다. 마음이 설레고 우리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 하고 마음 속 깊이 각인됐다.

90년대초 평화로를 이용해 서귀포를 다녀오는데 무수천과 노형소방파출소 사이 도로가 6차선으로 확장되면서 중앙분리대가 설치되고 그 분리대 안에 키 작은 사철나무를 심고 가로등까지 설치됐다. 또 인도에는 벚나무가 식재됐다. 이 길을 지날 때마다 너무나 멋진 도로라 생각돼 제주시청 도로건설담당자와 통화를 했다. 도로의 과업지시는 제주시청이 했지만 설계는 전문설계회사에서 했다고 한다. 이 도로도 내 머리 속에 깊이 각인됐다.

1995년도 미국에서 1년 연수를 받을 때 여름방학에 방문한 가족들과 미국 최남단 키웨스트를 갔었다. 플로리다반도 남단 마이애미에서 키웨스트까지 섬과 섬이 모두 다리로 연결돼 그 길이가 200㎞가 넘었다. 그 중 마이애미는 길 양옆으로 꼭대기까지 매끈한 워싱톤야자수가 있어서 보기가 좋았고 남국의 정취가 흠뻑 느껴졌다.

1998년도에 민선 서귀포시장이 되고 나서 재정부담이 많은 월드컵경기장을 지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엄청 고민했지만 결국 짓기로 결심을 했다. 경기장을 잘 짓는 것은 당연하고 더 중요한 것은 월드컵 개최 도시가 됨으로써 외국의 어떤 월드컵 개최 도시와도 뒤지지 않도록 서귀포시의 면모를 일신해야겠다는 일념이었다. 그 중 하나가 도로혁명인데 당시 대부분 2차선인 일주도로나 중산간도로 등 기간도로를 6차선이나 4차선으로 확장하는 것이었다. 이 기간도로의 모습이 서귀포시 이미지를 좌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 앞서 언급한 내게 깊이 각인된 생각들이 연결됐다. 중앙분리대를 만들고 그 안에 워싱톤야자수를 식재해 보는 사람들이 이국적이구나 하는 생각과 따뜻하고 온화한 이미지를 갖게 하고, 또 혹시 모를 중앙선 침범도 방지토록 했다. 아울러 가로등은 인가 주변에 설치하는 게 원칙이지만, 미래를 대비하고 교통사고 예방을 겸해 분리대 안에 높게 설치했다. 길 양옆 인도에는 제주산 사철 푸른 먼나무를 식재했다. 당초 중앙분리대 워싱톤야자수 아래는 양잔디를 심어 연중 따뜻한 서귀포를 연상토록 했다. 후에 일부 구간은 꽃댕강나무로 교체했다. 그래서 서귀포의 명물 워싱톤 야자수길이 탄생됐다.

그러나 아쉬운 것도 있다. 서귀포 비석거리부터 효돈동 끝 효례교까지 당시 건설부에서 35m 기간도로로 건설했다. 6차선, 중앙분리대가 있는 것으로 요청했지만 4차선으로 분리대는 없고 인도는 매우 넓게 완성됐다. 그후 6차선으로 하고자 중앙정부와 협의해 위험도로개선사업으로 선정받았다. 총사업비는 60억원이 조금 넘었다. 2006년도 서귀포시예산으로 서귀포시의회를 통과해 확정됐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지금까지도 꿩 구어 먹은 소식이다. 도로는 예전 그대로이고 참으로 안타깝다. <강상주 전 서귀포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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