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이 된 농사에 대한 의문
자본에서 떼낸 환경직불금
어느새 농사 짓기도 경영이 되었다. 소득이나 이윤의 액수로 농업 경영을 평가하고 비용과 생산성으로 측정하는 걸 당연시 여긴다. 값싸고 품질 좋은 공업제품들이 외국에서 수입되어 소비자들이 혜택을 보듯, 농산물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사에 소득, 비용, 노동시간 등 근대화의 척도를 적용하는 것에 아무런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농사란 농지를 통해 천지자연을 갈고 닦아서 그 은혜를 받는 것이라고 하는 일본의 농(農) 사상가이자 저술가, 농학박사인 우네 유타카씨는 그 같은 인식에 의문을 품었다. ‘농본주의를 말한다’엔 애당초 농사를 진보, 발전시킨다는 발상 자체가 틀렸다며 농사란 그런 것이 아니라는 그의 신념이 담겨 있다.
서른아홉 살에 농부가 된 저자는 일본의 대표적인 농본주의자의 사상과 활동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3대 원리를 끄집어냈다. 첫째, 2000년 이상 계속된 농사는 본질적으로 산업화, 자본주의화, 경제성장과 화합할 수 없다. 둘째, 지역화의 원리로 시골(지방)이 중심이 된 자립·자치를 지향한다. 셋째, 자연에 대한 몰입을 통해 살아가는 인생의 태도다.
저자는 농사의 가치를 시장경제 속에서만 평가하지 말라고 강조하면서 두 차례 독일을 방문했던 경험을 들려줬다. 어느 농촌 마을에서 사과를 주스로 만들어 판매 중인데, 날개 돋친 듯 팔리는 현장을 봤다. 잘 팔리는 이유는 무농약으로 재배된 사과이거나 특별한 착즙 방법을 사용해서도 아니었다. 도시 사람들은 "이 사과주스를 마시지 않으면 이 마을의 풍경이 황폐해지기 때문"에 사 갔다.
유럽연합(EU) 국가의 농민들은 소득의 70퍼센트 이상을 국가나 주, EU 세금으로부터 직접 수령한다. 풍경이나 자연환경의 가치나 그것을 지탱하는 농법에 지불되는 환경직불금 정책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농사에서 반이 넘는 부분을 시장경제와는 별개로 평가하고 그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농사를 자본주의로부터 떼어낸 결과라고 밝힌 저자는 "먹거리의 가치는 그 먹거리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바깥의 자연이나 풍경에 있었던 것"이라며 "이것은 '먹거리는 자연의 은혜'라는 개념을 현대적으로 다시 표현한 농업관"이라고 했다. 김형수 옮김. 녹색평론사. 1만1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