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수한 발자국의 증언들 제주 알뜨르와 홋카이도 잇다

무수한 발자국의 증언들 제주 알뜨르와 홋카이도 잇다
아트스페이스·씨, 오카베 마사오 초대 '기억의 활주로…'
프로타주 작업으로 전적지 강제 동원 노동자들 흔적 선명히
"과거를 현재로, 다시 다음 세대로"… 시민 참여 작품도 전시
  • 입력 : 2021. 07.12(월) 17:03
  • 진선희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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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카베 마사오 초대전 개막에 앞서 12일 언론에 공개한 아트스페이스씨 전시장. 진선희기자

그것은 잊힌 전쟁을 일깨우는 작업이었다. 치유하듯 어루만지는 종이 위에 서서히 드러나는 무늬들은 그날을 기억하는 언어가 되었다. 흑과 백이 교차하며 화면 위 무수히 찍힌 발자국도 그랬다. 살육의 현장으로 향할 비행기들이 뜨고 앉았을 활주로 건설에 동원된 한국과 일본 노동자들의 피땀 어린 흔적이었다. 전적지인 일본 홋카이도 네무로시 마키노우치 옛 해군 비행장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알뜨르비행장은 그렇게 만났다.

제주시 중앙로에 있는 아트스페이스·씨가 이 같은 풍경을 담은 작품으로 오카베 마사오(79) 초대전을 연다. 홋카이도와 제주도를 상징하는 이름을 각각 붙인 '기억의 활주로-숲의 섬에서 돌의 섬으로' 전시다.

오카베 마사오는 2007년 제52회 베니스비엔날레 일본관 대표 작가로 1977년부터 프로타주를 주요 매체로 택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프로타주는 '문지른다'는 뜻의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말로 탁본과 유사한 기법이다. 오카베 작가는 종이에 흑연이나 먹을 이용한 프로타주 작업으로 "과거를 현재로 끌어내어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있는 것들을 굳건히 하려는 시도"를 벌여왔다.

홋카이도 마키노우치 옛 해군 비행장에서 프로타주 작업으로 '발견'한 한국과 일본 강제 동원 노동자들의 발자국이 벽면을 따라 흩어져 있다.진선희기자

오카베 마사오 작가가 고향인 홋카이도 마키노우치 옛 해군 비행장 활주로에서 프로타주한 작업. 검은 활주로가 벽면에 길게 누워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진선희기자

이번 전시에는 2003년 중학생과 함께하는 프로타주 워크숍에서 '발견'한 마키노우치 해군 비행장 콘크리트 바닥에 새겨진 일본인 지카타비 발자국과 짚신을 신었던 조선인 발자국, 작가의 고향에 있는 해군 비행장과 꼭 닮아 충격적이었던 알뜨르비행장 격납고 프로타주 작품 등을 만날 수 있다. 그의 제주 방문은 고길천 작가와의 인연으로 2019년 처음 이뤄졌다. 작가는 이번에 전시장 내 알뜨르비행장 시리즈에 투명 아크릴을 씌워 화면에 반사된 지금 우리의 모습, 그 너머에 비치는 일본 군 비행장과 마주하도록 했다. "예술은 시간과 사회, 지역 사람들의 삶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려 깊은 행위"라는 그의 예술관을 떠올리게 된다.

알뜨르비행장 시리즈엔 투명 아크릴을 씌워 관람자들이 어제와 오늘, 미래를 연결하며 사유할 수 있도록 했다. 진선희기자

지난 5월 기획전 연계 프로그램으로 해군기지가 들어선 강정마을에서 진행한 시민 참여 워크숍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진선희기자

안혜경 아트스페이스·씨 대표는 반년 가깝게 이 전시를 준비하면서 지난 5월엔 강정마을과 알뜨르비행장에서 시민 참여 프로타주 워크숍을 진행했다. 땅이 전하는 목소리가 차츰 선명하게 다가오는 프로타주를 경험하며 "예술은 이런 것"이라는 소감이 공유됐던 워크숍 결과물도 전시된다.

이달 15일부터 8월 4일까지(오후 12시~6시) 아트스페이스·씨 3층과 지하 전시실. 첫날 오후 5시 30분에는 조성윤 제주대 명예교수의 '알뜨르 비행장', 최성희 평화활동가의 '폭력을 낳는 '평화'' 주제 강연이 열린다. 전시와 연계해 '반딧불의 묘'(7월 25일 오후 6시), '아버지의 눈물: 두 번의 눈물, 이중 징용'(8월 1일 오후 6시)도 상영한다. 코로나19로 작가가 직접 전시장에 올 순 없지만 지난 5월 한국과 일본을 온라인으로 연결해 나눴던 대화 장면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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