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제주 마을탐방] (2)서귀포시 성산읍 수산1리

[2021 제주 마을탐방] (2)서귀포시 성산읍 수산1리
수산곶 너른 들에 펼쳐진 땅심 깊은 마을
  • 입력 : 2021. 08.17(화) 00:00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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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내 최초 목마장·유일한 내륙 진성 등 지정학적 요지
제주 기념물 ‘수산진성’ 수산초등학교 담장으로 남아

신과세제·영등제·백중마불림제·군인굿 등 당굿 다양
“제2공항 매듭 통해 마을 만들기 사업 재추진되기를”

서귀포시 성산읍 중산간 일대에 드넓게 펼쳐진 수산평의 들판을 품은 마을 수산1리는 성산읍 관내 22개의 오름 중 다섯 곳이 자리 잡은 그야말로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유서 깊은 마을이다. 넓은 들판 가운데 서면 멀리 일출봉을 안고 망망하게 펼쳐진 바다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서 유사 이래 지정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이어왔다. 고려가 원나라의 수중에 들어갔던 시절에는 제주 최초의 목마장인 '탐라목장'이 들어서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탐라총관부의 동아막이 수산평에 들어섰으며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도 군사 요새가 들어선 바 있다. 조선 초 제주도에 3성(三城) 9진(九鎭)이 설치될 당시 아홉 곳의 진성 중 유일하게 내륙인 이곳에 수산진성을 축성한 것을 봐도 제주 동부의 요지였음이 짐작된다.

진안할망당

구전에 의하면 이미 1000여 년 전 마을이 생겨났고, 본격적으로 각성바지들이 모여들며 마을의 위세가 커진 것은 대략 500여 년 전이라고 한다. 수산진성 또한 이와 비슷한 시기인 조선 세종 때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다. 현재 수산초등학교의 담장으로 남아있는 수산진성의 성벽은 9진(九鎭) 중 유일하게 성곽이 남아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성곽의 규모를 보면 동서 134m, 남북 138m, 전체 둘레가 489m로 성안에 우물이 있고 군기고, 병사, 객사까지 갖춘 든든한 요새였다. 수산진성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5년 제주도 지정 기념물 62호로 지정됐다.

제주의 해안이 아닌 내륙에 위치했다는 특징 말고도 수산진성에는 다른 진성 어디에도 없는 슬픈 신화가 전해온다. 봉건시대의 공공건축 대부분이 백성들의 부역에 의해 지어진 것처럼 수산진성도 인근 주민들의 부역과 조세에 기대어 만들어졌다. 이 성이 만들어질 당시 세금을 낼 가산이 없던 한 여인이 나라에 바칠 것이라고 어린 딸 하나뿐이라며 읍소했다. 여인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관원들이 빈손으로 돌아간 뒤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성담을 아무리 단단히 쌓아도 연거푸 무너지는 것이 아닌가. 이런 사고가 이어지는 사이 근처를 지나던 스님이 여인의 딸을 제물로 바치면 성을 쌓을 수 있다는 말을 뱉고 사라졌다. 결국 스님의 말은 현실이 돼 어린 계집아이가 희생을 당한 뒤 성이 번듯하게 완성됐다.

수산진성의 성벽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진성 안에서 계집아이의 울음소리가 귀곡성처럼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마을사람들이 아이의 원령을 달래야 한다며 끊임없이 청원하기에 이르자 진성의 우두머리는 성곽 한쪽을 내어줬다. 그리하여 수산진성 바로 곁에 신당 하나가 생겨났으니 오늘날 '진안할망당'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진안할망당은 이 마을의 본향당인 '울레마루하로산당'과 더불어 마을의 지킴이 중 하나로 좌정해 지금까지도 기원하는 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수산1리의 본향당인 울레마루하로산당은 '울레마루하로산또'를 모신 곳으로 제주도 지정 민속자료 중 하나다. 수산1리, 수산2리, 고성리, 오조리, 성산리, 난산리, 신양리, 시흥리에 이르는 여덟 마을이 함께 모시던 곳인데 근래에는 여섯 마을이 공동으로 섬긴다. 여러 마을이 섬기는 만큼 당굿 또한 다양해서 음력 정월 초이틀의 신과세제, 정월 보름의 영등제, 이월 열사흘의 영등송별제, 칠월 초이레의 백중마불림제, 동짓달 열나흘의 시만곡대제가 있다. 이 밖에도 수산1리 주민들만 참가하는 '군인굿'이라는 마을굿을 정월달 안에 택일해 이 당에서 치른다. 이 밖에도 검은머들당과 신술당 등의 신당도 있어 마을의 지킴이로 자리 잡고 있다.

울레마루하로산당의 당굿

울레마루하로산당의 다채로운 굿 중 다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 영등굿이다. 보통 영등굿은 제주의 해안마을에서 치러진다. 수산1리처럼 바다가 없는 중산간 마을에서 치러지는 사례는 남원읍 한남리와 구좌읍 송당리 정도로 손에 꼽을 만큼 드문 사례다. 더욱 특이한 점은 영등굿의 말미에 치르는 액막이의 과정에서 희생제물로 바치는 수탉을 수산1리에서는 두 마리 준비해 한 마리만 희생시키고 다른 한 마리는 고성리 주민들에게 건네준다는 사실이다. 고성리 주민들은 영등굿이 끝난 뒤에 이 닭을 자기 마을로 가져간다. 그리고 다음 날 고성리 광치기 해안에서 다시 영등굿을 벌여 그 닭을 짚배에 실어 먼 바다로 띄워 보낸다. 이런 사례는 제주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으니 수산1리 영등굿의 가치를 드높이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부부바위

한편 수산1리사무소 곁에는 '부부바위'라고 불리는 한 쌍의 너럭바위가 있다. 마치 사람이 깎아놓은 침대처럼 평평한 한 쌍의 바위는 본래 이 자리에 있던 것이 아니다. 애초에 성읍리 좌보미오름에 있던 것이 큰 홍수에 수산1리까지 떠밀려와 남편 바위는 도리못에 부인 바위는 웃물밧에 멈춰 섰다고 한다. 그 뒤 홍수가 걷히자 이번에는 긴긴 가뭄이 찾아왔는데 밤마다 남편 바위가 울음을 울기 시작했다. 이에 마을사람들이 부부 바위를 한곳에 나란히 모시자 울음소리는 물론 가뭄까지 멎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지금도 마을사람들은 이 바위의 영험을 굳게 믿고 있어서 각종 개발로 훼손될 위기에 처하자 리사무소 인근으로 옮겨놓고 잘 보존하고 있다.

이처럼 다양한 신앙과 전설을 품은 천혜의 비경 수산1리는 자랑거리가 많은 마을인데 급속한 사회변동에 따른 농촌 공동화 현상의 격랑을 넘지 못해 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부침을 겪어야 했다. 급기야 수산초등학교까지 사라질 위기에 몰리자 고심 끝에 마을에서 60호의 대왕주택을 만들어 취학아동이 있는 외지인들에게 저가로 분양하며 학교를 지켜냈다. 그 뒤 마을 전체인구 1000여 명 중 10%에 이르는 새로운 얼굴들이 인입되며 활기를 되찾았다.

김문식 이장의 말에 따르면 "이주민들이 들어오며 활력이 생기자 여러 가지 마을 만들기 사업을 진행할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런데 알다시피 제주 최대의 현안 제2공항 문제가 터지며 모든 계획이 잠정적으로 중단됐다. 지금으로서는 제2공항에 대한 가부 간의 문제가 완전하게 매듭지어진 뒤에라야 마을을 살리는 일들이 본격화될 것 같다"고 한다. 마을을 걱정하는 김문식 이장의 주름 깊은 수심이 걷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하며 수산1리의 여정을 마치는 걸음이 자못 묵직했다.

글·사진=한진오(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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