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후·서성봉 작가의 공동 작품전 '나무의 속살'. 초록 숲을 품은 영상 앞에 뿌리 뽑힌 삼나무를 재료로 석고 캐스팅한 작품들이 허연 뼈처럼 설치되어 있다. 진선희기자
파헤쳐진 나무 석고 캐스팅 뼈처럼 드러난 자연의 고통
뿌리 뽑힌 자리에서 다시 자란 줄기 보며 그래도 희망이
마치 허연 뼈를 드러낸 동물의 사체처럼 느껴졌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숲을 촬영한 초록의 영상을 배경으로 놓인 그것들은 다름 아닌 숨을 멈춘 나무들의 흔적이었다. 지난 15일 제주시 삼도2동주민센터 인근에 자리한 갤러리 포지션 민 제주. 차량들이 조금이라도 더 빨리 달리도록 도로를 넓히겠다며 제주도가 3년 전부터 뭉텅뭉텅 베어낸 제주시 구좌읍 비자림로의 삼나무는 원도심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내는 중이었다.
이 전시는 판화를 공부한 평면예술가이자 전시기획자인 이종후, 조형예술가 서성봉 작가가 기획한 '비비작작(非非作作)' 프로젝트로 마련됐다. 글씨나 그림 따위를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이 쓰거나 그리는 행위를 일컫는 동음의 어휘를 가져와 기성과 관성에서 탈출하려는 의도를 담았다. 각기 다른 작품을 펼쳐놓는 2인전이 아니라 두 작가의 전공을 살려 함께 작업한 공동작을 출품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그 첫 프로젝트가 '나무의 속살'이다. 현재 제주 섬에 살고 있는 작가로서 나무로 상징되는 제주의 자연생태가 처한 현실을 환기하고 있다.
두 작가는 이 작업을 위해 지난 봄 잘려나간 삼나무가 있는 숲으로 향했다. 이들은 애초 뿌리째 파헤쳐진 삼나무의 텅빈 웅덩이를 석고로 떠낼 계획이었다. 하지만 현장에 가보니 시간이 흘러 웅덩이가 메워졌고 덤불이 우거진 탓에 결국 뿌리가 달린 밑동을 가져가 작업을 벌였다.
판화의 복제 기능처럼 몇 차례 석고 캐스팅한 나무들은 여러 형태로 변주됐다. 뿌리가 하늘을 향해 뻗은 원형의 캐스팅 작품을 지나면 그것들을 하나하나 해체하듯 석고로 떠서 설치한 형상들이 펼쳐진다. 나무의 '속살'들은 동물의 몸체가 갈갈이 찢긴 듯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나무들이 그 지경이 되도록 우리 인간들은 무엇을 했던 것일까.
그럼에도 두 작가는 상처받은 나무들이 회복탄력성을 보여주는 현장을 목격했다. 삼나무가 잘려나간 곳을 촬영한 영상과 사진엔 다시 자란 식물의 줄기가 얼굴을 내밀고 있다. 그 도저한 생명력 앞에 관람자들은 잠시 걸음을 멈추게 된다.
전시는 이달 28일까지. '나무의 속살'로 첫발을 뗀 '비비작작 프로젝트'는 앞으로 바람의 속살, 파도의 속살 등으로 이어질 예정이다. 두 작가는 공동의 주제로 공동의 작업을 통해 또 다른 감흥을 끌어내려는 예술가들은 누구든 프로젝트에 함께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