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수의 문화광장] 현재를 만날 수 있을 때 ‘마음고생’에서 벗어난다

[박태수의 문화광장] 현재를 만날 수 있을 때 ‘마음고생’에서 벗어난다
  • 입력 : 2021. 08.24(화) 00:00
  • 김도영 기자 doyoung@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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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지난 여름 삼복더위에 마음고생이 많았을 것이다. 여기서 '마음고생'이라는 말을 쓴 데는 이유가 있다. 삼복더위가 마음을 힘들게 했다기보다 개인 스스로가 더위를 힘들다고 여김으로써 스스로 마음을 힘들게 했을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이를테면 '덥다, 덥다'라고 하면 더 덥게 느껴지고, '힘들다, 힘들다'라고 하면 더 힘들었던 경험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지난여름도 예년의 여름과 대동소이한 더위였겠지만 코로나19와 더불어 사느라 마음고생이 더 가중됐을 것이다. '마음고생'은 실제 고생이라기보다 생각이 만들어낸 고생이다. 코로나19에 감염되지 않고 생각만 하더라도 짜증이 나고 기분이 언짢아지는데 마음 상하지 않고 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마음고생'을 덜하면서 살 수는 없을까?

마음의 한 요소가 생각이다. 생각은 본능적이므로 끊임없이 떠오르고 사라진다. 멈추려고 해도 멈춰지지 않는 것이 생각이다. 그리고 우리의 행동은 일어나는 생각처럼 나타난다. 가령 아침식사 시간이 되면 밥상 앞에 앉아서 식사를 한다. 숟가락으로 밥은 떴으나 마땅한 반찬이 없어 젓가락이 갈 곳이 없다. 괜히 반찬투정을 하면서 몇 숟갈 뜨고는 수저를 놓으려고 한다. 그 순간 '나이 들면 밥이 보약'이라는 어른들의 말씀이 떠오르면서 찌개를 밥 위에 떠놓고 비벼서 식사를 한다. '밥이 보약'이라는 생각이 식사 행동을 이끌어낸다.

우리는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알아차리면서 이 순간, 현재의 나를 만난다. 현재의 나를 만나기 위해 대상에게 주의를 보낸다. 그러나 주의는 자꾸만 다른 데로 향한다. 그래서 매 순간 맞이해야 할 대상에게 온전히 주의가 가기 어렵다. 우리가 현재를 제대로 만나지 못하는 이유를 켄 윌버는 "이 현재가 정말 올바른 것이 아니고 완전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현재에 오롯이 머무는 대신 새롭고 더 나은 현재라고 생각하는 미래를 좇아 현재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는 것이다. 더위를 식히기 위해 물 한 잔을 마시더라도 우리는 물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잠시 후의 더위가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만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은 바로 물이라는 대상을 마시는 것보다 '물보다 시원함'를 만나고자 하는 더 급한 욕구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현재를 벗어난 상태에서는 어떠한 것도 성취하기 어렵다. 지금 현재를 만나지 못함을 알아차릴 때만이 현재를 만날 수 있다. 그러므로 고통이 있기 전에 고통을 자각할 수 있어야 한다. 위의 경우 음식을 먹기 싫은 이유는 나중에 더 나은 음식을 먹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밥을 온전히 먹기 위한 길은 밥을 먹는 동안 오로지 밥을 먹는 행위에 주의를 보낼 수 있어야 한다. 코로나19로 힘든 이 시기는 누구나 거쳐야 할 현실이다. 이 시기를 온전히 보내기 위해서는 코로나19가 우리를 지배하지 않도록 현재를 만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박태수 제주국제명상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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