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그 시절 초상조각은 왜 굳어있는 표정일까

[책세상] 그 시절 초상조각은 왜 굳어있는 표정일까
양정무 미술 에세이 '벌거벗은 미술관'
  • 입력 : 2021. 08.27(금) 00:00
  • 진선희 기자 sunny@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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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300쪽에 이르는 책장을 넘기며 군데군데 놓인 작품 이미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독자들은 미술관에 있는 기분에 빠질 듯 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교수인 양정무의 미술 에세이 '벌거벗은 미술관'이다.

유학 시절 미술관, 박물관 가이드를 재미있게 하는 학생으로 유명세를 탔다는 저자는 이 책에서 '반전'이 있는 미술 이야기를 풀어냈다. 생명 속에 죽음의 그림자가 있고, 에덴의 동산에 선악과가 있듯이 아름다운 미술에도 그늘이 함께한다는 그는 고전미술이란 무엇인가, 미술은 문명의 표정이 될 수 있는가, 미술관은 어떻게 탄생하는가란 질문을 던지며 그 안에 깃든 영욕의 인류사를 살폈다.

그는 그리스 남성 조각들이 보여주는 육체에 대한 맹목적인 찬양이 그리스미술의 어두운 면이라고 짚었다. 저자는 적지 않은 단독 조각상들이 전사자를 위로하기 위해 제작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리스 고전미술의 고유한 목적은 바로 전쟁이었다고 했다. 그간 고전주의자들은 이를 애써 외면하려 했거나 간과해왔다.

초상조각 등에 드러난 표정을 통해 문명의 성격을 포착한 글에서는 고전기 그리스미술에서 로마미술까지 이어지는 무표정성이 당시 철학과 맞닿아 있다고 봤다. 엄숙함과 진지함의 중요성을 말했던 플라톤, 스토아철학으로 대변되는 금욕주의가 이러한 양식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특정 시대정신이 감싸 안는 시기에도 그 틈을 미끄러져나가는 존재들이 있다. 저자는 신을 중심으로 세계의 의미가 규정되었던 중에도 인간 본연의 생명력을 뿜어내는 얼굴들이 있었음을 놓치지 않는다.

박물관이 걸어온 길에 제국주의의 침탈의 역사와 통치의 정당성을 마련하려 했던 국가권력의 욕망이 투영되었다는 대목도 마주하게 된다. 오늘날에도 박물관은 국가권력이 내세우고 싶은 이미지를 시각화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코로나19 시대에 맞춘 '미술과 팬데믹' 장에서는 흑사병 시기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등 미술을 통해 질병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어떻게 극복해나갔는지 들여다봤다. 창비.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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