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실의 하루를 시작하며] 응원 구경

[이종실의 하루를 시작하며] 응원 구경
  • 입력 : 2021. 12.15(수)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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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을 경기만큼 재미있게 구경한 적이 있다. 역사가 오래된 제주 도내 고교 간 축구대회에서다. 경기에 뛰는 선수들을 위해, 학생들은 리더의 지휘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신나는 노래와 율동, 그리고 한 치 흐트러짐 없는 카드섹션으로 응원전을 펼쳤다. 관중은 경기에 성원을 보내고 그 멋진 응원에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그 대회가 오랫동안 전통이 있는 행사로 이어져 오는 데는 이런 응원의 역할도 있었다. 이처럼, 경기에 알맞게 벌이는 응원은 그 대회의 일부가 되었고, 선수들뿐만 아니라 보는 이들에게도 활력과 감흥을 주었다. 응원의 이런 멋진 모습을 보고 싶을 때가 있다.

응원은 선수의 선전과 경기의 승리를 위하는 것 외에도 사회의 윤리와 상식의 수준에 맞아야 한다. 응원은 그 본분에 충실하고 그 시대의 가치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 응원은 경기와 대회의 질을 높여 줄 수 있어야 한다.

본 경기와 함께 좋은 볼거리였던 그 고교 축구 응원은 학교의 명예도 걸고 있었다. 학생들은 응원의 준비와 연습, 실제 응원전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이 응원이 언제부턴가 축소되거나 사라졌다. 대중의 사고와 사회적 인식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이 일사불란하고 멋진 응원이, 비교육적이고 비민주적이며, 군사문화에다 일제의 잔재 등 폐단이 있다는 의견이 있었다.

응원은 그 나름의 원칙과 운동 정신에 충실해야 한다. 응원이 경기와 대회의 수준을 높일 수는 없어도, 경기를 그르치고 대회를 망칠 수는 얼마든지 있다. 대회의 수준은 각 경기의 질이 결정하고, 경기의 질은 선수의 활약이 만든다. 응원은 선수들이 좋은 기량과 품성으로 멋진 경기를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응원이 선수에게 방해되거나 경기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 관중을 배려하고 상대편에 대한 예의도 갖추어야 좋은 응원이다. 좋은 응원은 관중들로부터 관심과 호응을 얻어낼 수 있다. 추한 응원은 경기와 대회에 나쁜 영향을 주고 관중에게서 멀어진다. 그런 응원은 존재 가치가 없다.

요즘 나라의 큰 선거판에서 보이는 응원은 그 존재 가치를 가늠하기 어렵다. 여기 등장하는 응원들은 본분과 내용, 예의와 질서 등, 고등학생들이 멋지게 벌였던 축구경기 응원과 견줄 만한 게 하나도 없다. 응원의 의미와 목적도 제대로 모르는 것 같다. 관중은 선수들이 뛰는 모습과 경기, 그리고 응원을 통틀어, '동조'나 '야유'로 반응한다. 관중은 좋은 응원에 끌리기도 하지만, 약한 쪽을 응원할 때도 있다. 이런 관중이 무시되고, 자기들끼리도 무례한 것 같다. 선수와 응원하는 자들이 경기에 함께 섞이고 뒤죽박죽이 되면서, 이 무질서한 장면들이 아수라장을 방불하는 느낌이다. 이 판국이 결국 맞게 될 폐해는 무엇이고 어느 만큼일지 크게 걱정스럽다. 이 느낌과 걱정이 '나'만의 것이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종실 사단법인 제주어보전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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