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문정의 하루를 시작하며] 세밑 편지

[김문정의 하루를 시작하며] 세밑 편지
  • 입력 : 2021. 12.29(수)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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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잠결에 칼바람 소리를 듣습니다. 멀리서 휘몰아오는 바람의 기세가 저녁 무렵의 재난안전문자를 복기하게 합니다. 대설, 강풍, 풍랑에 주의를 당부하고 있었지요. 산에는 폭설입니다. 동트기도 전에 눈길을 헤쳐 온 자동차는 발이 무겁습니다. 체인 감은 바퀴소리가 아침알람으로 도로에 울리겠네요. 여차하면 볕 좋은 마을도 진종일 눈밭일 듯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안전안내문자는 매우 자세해졌습니다. 기상특보인 경우, 강수량 혹은 적설량 기온 풍속은 물론이고 대처행동요령까지 아주 꼼꼼합니다.

얼마 전 지진도 우선은 문자로 알았습니다. 섬이 흔들렸다는데 정작 무감하게 있다가 문자 이후, 온데서 걸려오는 안부로 전화통에 불이 납니다. 문자와 안부와 뉴스로 접한 재난이지만 무슨 일이든 직면한 현장에서는 너무나 놀랍고 두려운 일입니다. 재난이 어디 지진뿐인가요. 오래된 재난, 변이에 변이를 거듭하는 코로나19로 이 겨울은 마음까지 얼어붙을 지경입니다. 백신도 3차이고 치료제가 곧 나온다지만 이 팬데믹을 2024년까지로 예견했다니 빛은 어렴풋하고 암담합니다. 어쩌다 안부가 생존신고가 되었는지. 잘 지내자는 인사가 간절합니다.

달력이 왔습니다. 다 저문 올해, 2021년 11월부터 2022년 12개월을 장마다 담고 2023년이 통으로 한 페이지입니다. 새날들은 어떨까. 달마다 그려진 그림은 아름답고 희망찹니다. 천천히 절기마다를 훑고 기념일도 헤아려봅니다. 새해에도 사계는 어김없어, 봄 잠깐에 여름이 오고 가을이 오다 겨울로 가겠지요. 무심한 듯 열심히 하루가 가고 또 한해가 저물겠지요. 같이 차를 마시던 지인의 한마디. 2023년이 올까? 쓸쓸하게 웃습니다. 그저 따라 웃다, 마른 잔을 비우며 저마저 쓸쓸합니다.

나이 들수록 시간은 빨리 흐릅니다. 유년의 시간이 시속 10㎞라면 팔순의 시간은 시속 80㎞라지요. 아이의 시간은 매 때가 새로운 자극이어서 낱낱을 기억하느라 켜켜로 쌓이는 반면, 나이가 들고 무뎌져 새로울 것 없는 일상은 뭉뚱그려져 더 빨리 흘러가는 것처럼 시간수축효과가 생긴답니다. 시속 50㎞를 넘어 60㎞쯤에서 경보등이 켜지는 속도가 제 시간입니다. 하지만 체감속도는 더 빠릅니다. 매일 집과 일터만을 오가는 단조로운 생활. 별일 없는 하루들이 쏜살같습니다.

다시 세밑입니다. 동지를 지나며 긴 밤의 정점을 찍었고 조금씩 낮은 길어질 테지만 아직 겨울의 초입입니다. 세밑 추위에 아프게 마음이 머무는 곳. 폭행당하는 유기동물, 버려진 신생아, 거리두기와 집합금지로 끊긴 돌봄과 봉사, 세상 홀로인 독거, 빚더미로 주저앉은 가게, 영영 퇴근 없는 위험의 외주, 코로나로 악화되는 모든 병상, 진실 따로 책임 따로 인 공무(公務),.. 그러다 끝내 이별.

마음을 다해 애도합니다. 지는 해 따라 나쁜 것은 다 가고 오지 말기를. 새해에는 부디 이별 없이, 무탈하시기를. <김문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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