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의 문화광장] 대구항쟁의 뜻을 기리는 화가의 비판정신

[김준기의 문화광장] 대구항쟁의 뜻을 기리는 화가의 비판정신
  • 입력 : 2022. 02.08(화)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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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비판정신으로부터 나왔다. 비판정신을 장착하지 못한 채 수천 수만년 동안 인류 문명사를 일궈온 것은 예술이 아니라 공예였다. 선사시대로부터 고대와 중세에 이르기까지 예술은 존재하는 기성의 가치를 충실히 반영한 반면, 근대 이후의 예술은 비판정신으로부터 나왔다. 제주도를 대표하는 화가 강요배 예술의 핵심은 비판정신에 있다. 그는 1980년대라는 역동의 시대를 공감하는 민중미술 운동의 최전선에 섰으며, 1990년대 이후 4.3연작을 통해 역사와 현실을 마주하는 비판적 지식인으로 우뚝 섰다.

제주도 화가 강요배가 대구에서의 개인전을 계기로 역작을 남겼다. 대구미술관이 주최하는 이인성미술상의 수상 작가 개인전에 출품한 강요배의 신작, ‘어느 가을날’(캔버스에 아크릴, 197×333cm, 2021년)이 그것이다. 이 그림은 근대기의 대가 이인성의 그림, ‘가을 어느 날’(캔버스에 유채, 96×161.4cm, 1934년)을 오마주한 그림이다. 식민지 시대 대구 화가의 역작을 오마주한 제주 화가는 대구항쟁이라는 역사적 서사를 기념비적인 회화로 그려냈고, 이를 대구미술관에 기증하여 제주4.3의 역사와 예술의 길을 열어온 예술가다운 족적을 남겼다.

이인성의 그림은 암울한 식민지 시대를 살아간 지식인의 고뇌가 담긴 역작이다. 조선향토색이라고 해, 제국주의 본국의 예술가가 누릴 수 있는 예술적 창의력에 비해, 식민지 예술가에게 주어진 조선의 향토성이라는 좁은 범주의 예술적 영역을 강제했던 그 개념 아래, 당대의 조선 예술가들은 조선의 지역성만을 직.간접적으로 강요당하고 있었다. 예술은 지역성과 같은 특수성만이 아니라 세계성 등과 같은 보편개념을 토대로 더 역동적인 창의력을 발현하는 것인데, 일본 제국은 식민지 조선의 예술가들에게 그러한 표현의 자유를 허용할 뜻이 없었다.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 조선향토색이라는 틀은 이인성의 작품과 같은 역작을 탄생하게 했다. 작품은 식민지 조선의 황량한 현실을 표현한 것으로서 정적이고 순응적인 관점의 그림이다. 반면에 강요배의 작품은 역사적 사실을 재현한 것으로서 역동적이고 저항적인 서사를 담고 있다. 이인성에게는 부재할 수밖에 없었던 비판정신이 담긴 그림이다. 대구항쟁의 기록사진을 토대로 한 이 작품은 1946년 10월 대구에서 벌어진 시민의 시위 현장을 그린 것이다. 대구항쟁은 익히 알려진 바대로, 대구폭동이 제 이름을 찾은 결과이다.

대구는 보수적인 도시로 잘 알려져있다. 그런 대구에서 역사적 사건의 이름으로 항쟁을 채택했다. 대구항쟁이다. 여순의 10.9는 물론이고, 제주의 4.3도 이루지 못하고, 광주의 5.18도 제대로 담지 못한 항쟁의 이름이다. 무릇 역사는 정명(正名)을 통해 제 자리를 잡는 법인데, 여순항쟁이나 제주항쟁, 광주항쟁이라는 이름은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뜻밖에도 대구가 항쟁의 이름으로 역사를 갈음하고 있다는 것이 여간 낯설지 않다. 강요배의 그림은 이처럼 낯선 느낌을 덜어주는 새로운 감성적 소통을 만들어 냈다는 점에서 뜻깊다. <김준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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