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의 문화광장] 오멸 감독이 그리는 제주의 모습

[김정호의 문화광장] 오멸 감독이 그리는 제주의 모습
  • 입력 : 2022. 02.22(화) 00:00
  • 이정오 기자 qwer6281@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오멸 감독의 영화를 처음 접한 것은 새벽 TV 채널을 뒤적거리다가 방송통신대학 TV를 통해서다. 500만 원을 들여 만든 ‘뽕돌’(2010)은 영화를 모르는 사람이 부끄러움을 모르고 멋대로 만든 듯한 그런 영화였지만 묘한 매력이 있었다. 이것이 바로 예술의 아우라인가. 영화를 전문적으로 전공하고, 연출을 위해서 촬영과 조명 등 영화의 각 부분과 내러티브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처지에서 ‘뽕돌’은 많이 배운 사람이 많은 것들을 고려하는 바람에 영화를 못 만드는 것이 아닌가, 돈이 없다, 여건이 안된다 등 핑곗거리를 찾아서 이유를 대지만 정작 할 이야기와 열의가 없는 것이 아닌가 되돌아보게 만든다.

제주도에서 제주도의 배우들과 장편영화를 만들어온 오멸 감독은 주류와 경쟁사회보다는 우리 주변에서 찾아볼 수 있는 한량 혹은 잉여인간들을 다루고 있다. ‘뽕돌’에서 영화감독을 꿈꾸는 뽕돌은 서울에서 내려온 배우를 제주 사투리를 못 한다고 퇴짜를 놓으려 한다. 유수암 점빵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아이고 저 귀 것’에서는 가수를 꿈꾸며 서울에 갔다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돌아온 용필(양정원 출연)과 그에게서 노래를 배우려는 뽕돌(이경준 출연), 술만 마시는 귀 것 하루방 등 4명의 남자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람의 가치가 경제적 생산과 소비의 가치, 돈과 명예, 교육 수준으로 분업화, 서열화되고 경쟁과 비교로 서로 고립되는 대도시와는 다른, 모두가 태어났기에 살아갈 가치가 있는 그런 우리가 잃어가는 사회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제주도의 자연은 얼마나 아름답게 담고 있는가.

양정원은 제주도에서 음반을 내는 가수인데 나름 색깔 있는 음악을 하고 있으면서 오멸의 많은 영화에 배우로 출연하고 있다. 막무가내로 내 멋대로 만든 듯한 오멸의 영화들에 반한 나에게, 제주 4.3을 다룬 ‘지슬’(2012)은 또 다른 충격이었다. 이 영화는 이전의 영화와는 달리 영화의 형식에 대해 치밀함을 보여준다. 동양화를 전공하고, 제주지역에서 연극 활동 등을 한 오멸 감독의 저력이 이 영화의 장면에 드러난다고 본다. 모든 장면이 아름다운 흑백으로 담긴 제주 겨울의 모습들은 잉그마르 베르히만 감독의 ‘제7인의 봉인’의 장면들을 떠오르게 한다. 4.3의 무게가 이전의 자유스러움에서 미학적 충실함으로 변화를 가져왔다. ‘지슬’은 2005년 김경률 감독의 유작인 ‘끝나지 않은 세월’(2005)의 2편이며 김경률 감독의 이름이 총제작 지휘로 크레딧을 올린다. 의욕은 강했으나 여건이 성숙하지 않았던 2005년의 기억에 대한 부담감도 상당했으리라 본다. ‘지슬’로 선댄스 영화제 등 해외 영화제에서 수상한 오멸 감독은 그의 페르소나 이경준, 양정원 그리고 스카밴드 ‘킹스턴 루디스카’와 함께 ‘하늘의 황금마차’(2014)를 선보인다. 봉분이 많은 곳에서 펼쳐지는 밴드의 연주 장면이 인상적이며 ‘지슬’ 이전의 영화들과 비슷하게 향수어린 이상향의 제주를 그려낸다. <김정호 경희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9903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