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서귀포시산림조합 대회의실에서 '문화도시 서귀포와 함께하는 제11회 서귀포봄맞이축제'의 사전 행사로 열린 '왕벚나무 생물주권 찾기 전문가포럼'에서 이석창 서귀포문화사업회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서귀포봄맞이축제조직위원회
빼앗긴 왕벚나무의 생물주권을 되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왕벚나무 자생지인 제주에서 울려 퍼졌다. 최근 왕벚나무 기원 논란의 중심에 선 국립수목원이 왕벚나무의 이름 등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도 거셌다.
지난 20일 서귀포시산림조합 대회의실에서 열린 '왕벚나무 생물주권 찾기 전문가포럼'에서는 이 같은 목소리가 이어졌다. 포럼은 '문화도시 서귀포와 함께하는 제11회 서귀포봄맞이축제'의 사전 행사로 마련됐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서귀포시가 주최하고 서귀포시문화도시센터와 서귀포봄맞이축제조직위원회가 주관했다.
지난 20일 서귀포시산림조합 대회의실에서 열린 '왕벚나무 생물주권 찾기 전문가포럼'에서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서귀포봄맞이축제조직위원회
# "빼앗긴 이름 '왕벚나무'… 원상태 회복을"
이날 주제발표에 나선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은 국립수목원이 변경한 '왕벚나무 이름' 문제를 집중 거론했다. 앞서 김 소장은 지난 4월에도 기자회견을 열어 이러한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국립수목원은 2020년 펴낸 국가표준식물목록(자생식물편)에 '왕벚나무'를 빼고 '제주왕벚나무'라는 이름을 넣었다. '왕벚나무'는 재배식물목록으로 옮겨 놨다. 2018년에 발표한 '제주 자생 왕벚나무 유전체 해독'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했다. "제주 왕벚나무는 일본 도쿄와 미국 워싱턴에 심겨 있는 일본 왕벚나무와 뚜렷하게 구분되는 서로 다른 식물"이라는 게 주내용인데, 이를 통해 제주 자생 왕벚나무 국명은 '제주왕벚나무', 재배 왕벚나무는 '왕벚나무'로 정했다.
김 소장은 왕벚나무 이름이 처음 기록된 1949년 '문교연구총서 제2집 우리나라 식물명감'을 언급하며 "왕벚나무는 제주도가 원산지이고 재배하기도 한다고 분명히 기록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1968년 '천연보호구역학술조사보고서'(문화공보부)와 1973년 '제주도 문화재 및 유적종합조사보고서'에도 왕벚나무 이름이 나와 있다"며 "한라산에 자생하고 있는 나무를 기준으로 했으며 정명으로 굳어져 내려왔다"고 덧붙였다.
김 소장은 "그런데도 국가 기관이 '제주왕벚나무'라고 개명하고 왕벚나무를 재배식물이라고 한 것은 왕벚나무가 자생식물임을 포기한 것"이라며 "생물주권이라는 것은 배타적 권리를 부여하는 것인데, 우리 영토 내에 왕벚나무가 없다고 선언해 대한민국 주권이 미치지 않은 나무로 만들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 소장은 국립수목원이 유전체 분석 연구에서 "일본 왕벚나무는 올벚나무(모계)와 오오시마 벚나무(부계)로 형성된 인위 잡종"이라고 전제하며 '일본 왕벚나무'를 자의적으로 인정한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인공교배로) 왕벚나무를 만들었다는 건 여러 의문이 있고 일본에서도 이를 입증한 사람이 없다"며 "생물의 기원은 추정하는 것이지 단정할 수 없다. 그런데도 국가 업무를 관장하는 기관이 풍문을 가지고 정책 결정을 하면 되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제주도 향토유산 제3호'인 오등동 왕벚나무를 둘러싼 논란도 언급했다. 이 나무는 국립수목원이 유전체 분석 대상으로 삼은 제주 주요 기념 왕벚나무 5그루 중 하나로, 일본 도쿄에 심어진 개체와 유전적으로 같은 그룹을 형성한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이 나무가 재배 중에 자연으로 옮겨졌거나 탈출한 것으로 추정했다.
김 소장은 "국립수목원의 연구 논문에는 이러한 내용이 나오지 않는다"며 "이는 연구자들이 임의로 한 얘기"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국립수목원은 이 나무가 어떻게 재배 중에 탈출했다는 것인지 해명해야 한다"며 "왕벚나무 이름과 자생 상황을 즉각 원상태로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0일 서귀포시산림조합 대회의실에서 열린 '왕벚나무 생물주권 찾기 전문가포럼'에서 지정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서귀포봄맞이축제조직위원회
#"국립수목원, 연구 결과 근거 부족… 잘못 바로 잡아야"
허남춘 제주대학교 교수가 좌장을 맡아 진행된 지정토론에서도 국립수목원이 발표한 연구 결과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잇따랐다. 이로 인한 파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컸다.
강문규 전 한라일보 논설실장은 "국립수목원이 국내 전문가와의 충분한 학술적 토론과 교감도 없이 일본이 오랫동안 원했던 주장을 그대로 수용했다"며 "관련 학자들의 학술적 비판과 반발에도 선뜻 식물주권을 넘겨주려는 행태에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김호천 연합뉴스 제주취재본부장은 "국립수목원의 연구 결과가 상식선에서 어디까지 과학적이라고 볼 수 있는지 생각해 봤다"며 "유전체 분석 결과가 정확하다고 전제해도 그 대상으로 삼은 일본 도쿄 재배 왕벚나무보다 더 오래된 제주 자생 왕벚나무(향토유산 3호)를 '일본 왕벚나무'라고 보는 것은 분명한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과학적 결론이라기보다는 끼워 맞추기 위한 추론"이라며 "결론에 대한 근거를 대고 해명을 하든, 결론이 잘못 도출됐다면 추가 연구를 해서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만 제주한라대학교 교수는 지난 4월 도내 5개 단체가 공동으로 국립수목원이 국가표준식물목록 자생식물에서 왕벚나무를 삭제한 것에 항의하는 성명을 발표한 이유를 언급하며 "유전자 분석 연구만을 근거로 너무 섣부른 결정을 했다는 판단이 있었다"고 했다. 이어 "국립수목원의 연구는 왕벚나무 기원을 연구하는 논문도 아니었다"며 "국립수목원 유전체 해독 연구책임자와 전화 인터뷰를 해 보니 왕벚나무를 일본 원산 또는 일본에서 교잡해 만든 재배종이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그 근거가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는 또한 "향토유산 3호를 일본에서 들어온 재배종으로 보면서도 관련 연구 결과나 과학적 증거는 제시하지 못한다"며 "왕벚나무를 국가표준식물목록 자생식물로 원상 복구하고 국가, 지방정부 차원에서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시영 사단법인 제주환경문화원장은 국립수목원이 향토유산 3호를 일본산 재배 왕벚으로 발표한 이후 "왕벚나무 '기준어미나무' 세계화 프로젝트가 무산됐다"고 꼬집었다. 앞서 국립산림과학원과 제주특별자치도, 한국식물분류학회는 2015년 향토유산 3호를 기준어미나무로 명명하고 전 세계에 왕벚 원산지인 제주를 알리겠다는 구상을 공식화한 바 있다.
강 원장은 "그 당시 국립산림과학원장이 최근 산림청장으로 취임했는데 앞으로 어떤 대응을 할지 궁금하다"며 "새 정부 국무총리로 임명된 한덕수 총리 역시 2011년 미국 워싱턴 D.C. 아메리칸대학교에 왕벚나무를 모태로 한 한국정원을 조성할 당시 주미대사로 기념식수를 한 인물이다. 정부가 어떤 대응책을 낼지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 원장은 "제주도는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등재된 곳인데도 현재까지 왕벚나무의 생물주권을 찾으려는 공식 대응이 없다"며 "정부와 제주도는 물론 관심 있는 여러 기관이 공동으로 나서 생물주권을 찾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지난 20일 서귀포시산림조합 대회의실에서 열린 '왕벚나무 생물주권 찾기 전문가포럼'에 참석한 시민들. 사진=서귀포봄맞이축제조직위원회
왕벚나무 생물주권을 찾기 위한 방안으로 기원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추가 연구와 제주도만의 보전 방안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정섭 제주대학교 교수는 "2019년 DNA 리서치에 발표된 소메이요시노(왕벚나무의 일본명) 게놈 분석 결과 그 부계가 오오시마 벚나무가 아님이 확인됐다"며 "이는 이전까지의 일본의 주장을 부정하는 결과"라고 했다.
그러면서 "도쿄 소메이요시노가 제주 관음사 왕벚나무(오등동 왕벚) 자생지에서 유래됐다는 것을 보다 명확히 증명하기 위해선 먼저 관음사 왕벚과 재배된 도쿄 소메이요시노 사이의 게놈 분석을 통해 이들이 동일하다는 확인이 필요하다"며 "이후에 이 두 나무와 일본의 주장인 오오시마 벚나무와 일본 모계 에도히간(일본 올벚)을 제주 올벚 모계와 가능성이 있는 제주 부계와 함께 게놈 수준에서 교차분석하면 관음사 왕벚이 제주에 자생하는 부계와 모계로부터 1세대 잡종으로 탄생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홍규(에밀타케식물연구소 대표) 천주교대구교구 신부는 "나라가 독립했으면 식물도 제자리를 찾아야 하는데 국민들 대다수가 벚꽃을 사꾸라로 알고 있다"며 "왕벚나무는 우리 이름이다. 일제강점기 시대 잘못된 우리 왕벚나무의 정체성을 이제라도 찾아주는 일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신부는 이어 "왕벚나무 자생지인 제주에서 도민들이 이를 보존하고 육성하며 발언권을 가지고 기원 논란 등을 정리하는 것도 필요하다"며 "에밀 타케(1908년 제주에서 왕벚나무를 발견해 표본을 채집한 프랑스 선교사 사제)가 왕벚나무를 처음으로 채집한 지역인 '호아천'에 주목하고 그 표본(표본번호 4638)을 찾아 집중 보존하고 특이화하며 왕벚나무 자생지의 내실을 더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난 20일 포럼에 앞서 진행된 '왕벚나무 자생지 생태문화탐방'의 첫 장소인 제주 오등동 왕벚나무 자생지에서 송관필 박사가 해설하고 있다. 사진=서귀포봄맞이축제조직위원회
#"왕벚나무 있게 한 제주"… 그 가치를 만나다
이날에는 포럼에 앞서 '왕벚나무 자생지 생태문화탐방'도 진행됐다. 향토유산 제3호인 오등동 왕벚나무 자생지에서 시작한 탐방은 견월악 최고령 왕벚나무와 서귀포 신례리 왕벚나무 자생지를 둘러보는 코스로 이어졌다.
국립산림과학원 난대아열대산림연구소에서 한라산 왕벚나무 자생지를 조사했던 송관필(제주생물자원 대표) 박사가 해설을 맡았다. 50여명의 참가자들은 그의 설명을 따라 왕벚나무 자생지인 제주의 가치를 재발견했다.
송 박사는 오등동 왕벚나무 자생지에서 해설을 시작하며 "한라산 왕벚나무 자생지를 4년간 조사한 결과 235개체를 발견했다"며 "이 중 50%가 관음사와 견월악 사이에 분포하고 있다"고 했다.
송 박사는 이어 "왕벚나무 자생지는 전 세계적으로 제주 밖에 없고, 제주는 지금도 계속해서 자연적으로 왕벚나무를 생산하는 유일한 곳"이라며 "종이 고립되고 숲의 면적이 한정된 섬이라는 특징이 오늘날 왕벚나무를 있게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일 포럼에 앞서 진행된 '왕벚나무 자생지 생태문화탐방' 참가자들이 견월악 최고령 왕벚나무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서귀포봄맞이축제조직위원회
수령이 270년으로 추정되는 견월악 최고령 왕벚나무 자생지에선 참가자들의 탄성이 쏟아졌다. 어른 4명이 손을 잡고 빙 둘러서야 할 만큼 거대한 나무 크기와 웅장함이 시선을 잡았다. 표지판도 없이 수풀이 우거진 곳에 자리해 가는 길이 험했지만 그만큼 값진 걸음이었다. 왕벚나무가 제주에 뿌리내려온 수 백 년의 시간의 무게가 온몸으로 다가왔다.
참가자들은 이번 탐방을 통해 왕벚나무 자생지인 제주에 한 발 더 다가섰다. 가족과 1년 살이로 제주에 머물고 있는 허세빈(대구광역시) 씨는 "우리나라가 왕벚나무 원산지라는 얘기를 들은 적은 있는데 이번 기회에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 탐방에 참여하게 됐다"며 "주변 사람들에게도 오늘 다녀온 왕벚나무 자생지를 소개해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양한수(서귀포시 서홍동)씨는 "견월악 최고령 왕벚나무는 찾아가기도 어려웠지만 별다른 보호 장치가 없이 방치되다시피 해 안타까웠다"며 "우리가 우리 것을 제대로 알고 지키면서 이러한 왕벚나무를 스토리텔링해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