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진행된 3차 에코투어에서는 숲길을 걷는 내내 만발한 산수국에 둘러싸여 힐링이 됐다. 양영태 작가
거친 바람도 숨죽인 매력적인 숲길갖가지 버섯·귀한 난초들로 눈 호강걷는 내내 태양의 존재 잊게 만들어
세찬 바람을 등에 업은 빗방울이 얼굴을 때린다. 양은 많지 않으나 그 기세는 사뭇 당차다. 오다 그치기를 반복하는 날씨에 비옷을 꺼낼까 말까 잠시 망설였지만 견딜만하다는 생각에 그대로 걸었다.
장마에 접어든 날씨가 변덕스럽기 짝이 없다. 오름 둘레길로 접어들면 바람이 한층 잠잠해지리라는 기대로 목장길을 걷는다. 주위에 가득 찬 구름이 오름을 둘러싸고 길도 가로막는다. 하지만 길잡이 박태석 씨는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얘기한다. 오늘은 산수국의 환한 미소를 마음껏 볼 수가 있다고. 날씨가 흐리고 바람은 세차게 불고 있지만, 일행은 가슴에 하나씩 기대를 품고 길을 따른다.
지난달 28일 진행된 한라일보의 '2022년 제주섬 글로벌 에코투어' 3차 행사는 납읍목장 공연장 주차장을 시작으로 목장길을 따라 큰바리메 둘레길을 지나 큰바리메를 오른 뒤 다시 족은바리메 둘레길을 돌아 족은바리메를 오르고 나서, 삼나무숲길을 지난 뒤 큰바리메 둘레길을 따라 걷다 초지를 지나 납읍목장 공연장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코스다. 이번 투어 역시 코로나19가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어서 비대면으로 최소한의 인원만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목이
작살나무
가지더부살이
지금은 문을 닫은 납읍목장 공연장 옆으로 난 목장길을 따라 20여 분 걸으면 큰바리메의 기슭에 닿는다. 물기를 가득 먹은 초지를 지나면 우리를 반기는 숲길로 들어선다. 그곳 큰바리메 남쪽 기슭을 따라 이어지는 둘레길은 길 양쪽에 산수국이 가득한 꽃의 나라이다. 밖은 세찬 바람과 흐릿한 안개로 어지럽지만, 숲 가운데를 뚫고 지나는 길은 산수국꽃 무더기가 끊어지다 이어지길 반복하며 계속된다. 어디 이뿐이랴. 휘파람새의 맑은 목소리가 꽃잎에 내렸다 튀어 귀를 간지럽힌다. 산수국의 꽃말은 '변덕', '변하기 쉬운 마음'이다. 꽃 색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피기 시작한 때와 지는 때의 색이 달라 그런 꽃말을 가지게 된 것이다. 오늘 날씨와 비슷하다. 둘레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덧 큰바리메 동쪽 탐방로 입구에 이른다.
솔나물
으름난초
바리메는 높이가 213m로 제법 높은 오름이다. 원형의 분화구를 가지고 있다. 분화구의 형태가 '바리때(절에서 쓰는 승려의 공양 그릇)'와 같다는 데서 바리메라 붙인 것이다. 옆에 있는 족은바리메와 함께 부를 때는 큰바리메라 부른다. 숲으로 둘러싸인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한참을 오르니 정상을 향하는 능선에 닿는다. 능선은 정상 분화구를 따라 오름을 한 바퀴 돌고 다시 만난다. 오름 남쪽 정상에 오르니 사방은 온통 흐리고 바람은 성질 사나운 주인처럼 손님을 푸대접한다. 쉽게 헤어지기는 싫지만, 이럴 때는 순한 양처럼 조용히 떠나는게 제일이다. 아직도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이 더 많으니 아쉬움은 없다. 내리는 길에서 본 분화구는 온통 구름이 차지하고 있다.
양영태 제주여행작가
바리메를 내려 족은바리메 둘레길로 접어들었다. 길은 두 사람이 나란히 걸으며 재잘대기 딱 좋은 넓이로 나 있다. 바람과 비로 어지러운 속세는 여기에는 없다. 걷고 있으면 힐링이 되고, 멈추면 휴식이 되며, 뒤돌아보면 뿌듯하고, 앞을 보면 희망이 솟는, 그런 세상이다.
족은바리메 동쪽 기슭 하천을 따라 오르다 오른쪽으로 꺾으면 다시 산수국 꽃밭이 이어진다. 숲길을 걷는 내내 우리를 반기던 산수국을 뒤로하고 삼나무 숲길로 들어서니 장마철에 그 진가를 발휘하는 목이, 동충하초 등 갖가지 버섯들, 그리고 갈매기난초, 나리난초와 요즘 보기 드문 으름난초도 만났다. 둘레길이 끝나고 목장의 초지로 내려서니 구름은 많이 없어졌지만, 오름은 아직도 구름을 떨쳐내지 못했다. [양영태 제주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