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화 작가. 제주시 관덕로에 위치한 갤러리 '포지션 민 제주'에서 오는 23일까지 작가의 그림책 원화를 만날 수 있는 펜그림전 '무등이왓에 부는 바람'이 열린다. 오은지기자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 여정
펜그림에 오롯이 새겨… 원화전도 마련
4·3 발발 후 70여 년 숨죽여 있던 서귀포시 안덕면 동광리 '잃어버린 마을' 무등이왓. 이 땅엔 지금 생명이 움트고 있다. (사)제주민예총과 탐라미술인협회 주관으로 4·3을 기억하고자 하는 예술인, 도민, 마을 주민들이 함께 조 농사를 지어 수확한 뒤 술을 빚어 4·3 영령들에게 바치는 '잃어버린 마을에서 보내는 선물' 프로젝트가 열리면서다.
지난해 6월에도 이 땅엔 노랗고 조그만 씨가 뿌려졌다. 움튼 새싹은 모진 비바람을 이겨내고 여물어 결실을 맺었다. 그 여정에 참여했던 제주의 김영화 작가는 틈틈이 작은 드로잉북에 순간 순간을 기록했다.
씨를 뿌리고, 파릇한 새싹을 틔우고, 김매고, 거센 비바람에 드러누운 대를 세우고, 참새들이 지나가고 남은 이삭들을 갈무리하며 작가가 "잡초 틈에 끼여 시달리고 태풍에 할퀴이고 참새 등쌀도 이겨 낸 소중한 한 알 한 알"이라고 한 좁쌀을 고소리술로 만들어 큰넓궤에 들여놓기까지, 그 모든 과정이 작가의 펜그림에 오롯이 담겼다. 또 오랜 세월을 견뎌온 늙은 팽나무같이 기념비 하나 없이 남겨진 4·3의 현장들도 새겨졌다.
작가는 여기에 글을 더해 그림책 '무등이왓에 부는 바람'으로 묶었다. 억울하게 죽어간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4·3의 비극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한 오늘, 우리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기록이다.
책은 그 해 12월 26일의 이야기로 끝이 나지만 겨울이 지나면 어김없이 찾아올 봄을 기다리며 '희망'을 꿈꾸고, 그때를 '기억'하길 바라는 두 개의 그림이 보태졌다.
오는 23일까지 포지션 민 제주에서 열리는 작가의 그림책 펜그림전 '무등이왓에 부는 바람' 전시장에 가면 원화로 그 기록을 만날 수 있다. 책 속 QR코드를 스캔하면 동요 듀오 솔솔의 '무등이왓에 부는 바람'도 들을 수 있다. 이야기꽃. 1만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