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정묵의 하루를 시작하며] 한 사람이 떠나갔다는 것은

[좌정묵의 하루를 시작하며] 한 사람이 떠나갔다는 것은
  • 입력 : 2022. 09.14(수)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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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사람이 온다는 건/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는 정현종 시인의 시 '방문객'에 있는 선언적(宣言的) 메시지다. 이 내용을 패러디하면서 우리는 흔히 한 사람의 일생만 오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이 열린다"고까지 말하곤 한다. 그런데 사람이 떠난 경우, 우리는 단번에 그 삶의 무상함을 말하며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탄에 머물고야 만다. 왜 우리는 소중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이 열렸던 어마어마한 의미를 되새기지 못하는 것일까.

십 년쯤 전부터 제주에서는 '곶자왈'이란 말이 강정항이나 제주제2공항이란 말보다 도민들(어쩌면 제주인들보다 외지인들에게)에게 더 생생하게 각인되기 시작했다. 적어도 지질학자인 송시태 박사의 외침이 있기 전까지 제주인들의 지난 오랜 삶에서 곶자왈은 불모지였고 생산성이 없어 그 가치가 인정되지 못하던 곳이었다. 제주의 생명성이 바로 그 곶자왈의 숨골에서 비롯된다는 걸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22일, 여름이 발악을 하며 땡볕이 쏟아져 내리던 날이었다. 급하게 보고서를 작성하고 자료(현장 실물 사진 등)를 보내기 위해 비양도를 홀로 탐사하던 지질학자는 특별한 지병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그늘도 없는 곳에서 반듯이 눕고 이 어지러운 세상을 떠나버리고 말았다. 23일 처서가 돼도 연락이 닿지 않자 아내는 실종 신고를 했고 경찰은 휴대폰 송수신 기지국을 확인해서 그 지질학자의 온전한 모습을 수습했다고 한다.

부검 전이라서 장례식장에는 그 지질학자의 평소 맑게 웃는 모습이 영정으로 놓여있었고, 며칠 전 동창회 일로 만났던 모습과도 겹쳐서인지 울컥 한 줄기 눈물이 시야를 흐리게 하고 말았다. 부재의 실감을 아직 느끼지 못하는 듯한 아들과 아내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까 더욱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아내는 경찰의 말을 옮기며 남들이 다 뜯어말려도 학교를 퇴직하고 자신이 늘 하고 싶었던 일을 했기 때문인지 너무도 편안한 모습으로 가셨다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오히려 나를 위로해줬다.

처서라도 지나서 갔어야지, 27일 한 줌의 재로 남겨진 그 지질학자의 하루가 원망스럽다. 오늘쯤은 가끔 선선한 바람도 불어주지 않느냐. 몇 번 삶의 고비를 넘긴 나로서는 죽음이 그다지 멀리 있지 않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너무도 허망하다. 학교에 있을 때에도 그렇고 박차고 나와서 여러 매체를 통해 제주의 가치를 울부짖으며 다녔지만 때로 정치꾼들의 밑밥이 되고 말거나 개발지상주의자들의 혐오이기도 한 그 외로운 길을 그렇게 즐거움으로 애썼던 것이냐.

송시태 박사가 떠나고 아직 한 달도 지나지 않았다. 다른 곳도 아닌 제주사회에서 떠도는 말들을 귀를 열고 눈을 씻고 살펴도 친구가 걸었던 그 길을 누구 하나 되새겨 보는 걸 아직도 나는 보거나 듣지 못했다. 내 언제 비양도를 찾게 되는 날 녹나무 지팡이를 들고 가서 한나절을 두들겨주마. 이런 나를 이제는 땅이 아니라 하늘에서 굽어보며, 그곳에서는 제발 열심히 살지 말기를. <좌정묵 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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