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의 하루를 시작하며] 진정한 애도의 의미

[김연의 하루를 시작하며] 진정한 애도의 의미
  • 입력 : 2022. 11.02(수)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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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애도는 죽음이라는 대상의 상실에서 발생한다. 그리고 그것은 대상의 삶과 사연, 죽음의 사건과 그 원인을 추적하며 기억하고자 하는 의지의 행위가 된다. 더구나 죽음의 사건이 사회, 정치적 시스템과 연결된다면 그것은 우리의 삶과 긴밀하게 결부된다는 점에서 애도의지는 사건 자체보다 삶의 사건으로 전이된다. 그곳에 공동체의 윤리가 닿아있다. 중요한 것은, 애도란 함께 죽음을 슬퍼하는 감정적 상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진정한 애도는 사건의 규명과 평가에서 시작돼야 하고, 그에 따라 사회적 의미부여의 과정을 거쳐 진정한 위로와 수용에 이르는 행위이다. 그러한 과정을 생략하고 진실을 외면한 채 단지 지금의 슬픔에서 벗어나길 바라는 위로는 정확히는 애도의 배반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가늠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경험하지 못한 이들이 건네는 섣부른 위로는 오히려 잔인한 선의이자 무책임한 기만일 수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그러하기에 사회적 애도의 시작은 피해자들과 함께 '왜'라는 물음을 던지는 것에 있다.

축제를 즐기려 집을 나선 수많은 젊은이들이 서울의 도심 한복판에서 허망하게 무너졌다. SNS를 통해 여과 없이 보이는 그날은 음악과 비명, 절규와 이기적인 인간의 민낯이 혼재돼 마치 이 시대 지옥의 단면 같았다. 그런데 믿을 수 없는 비극의 허망함도 잠시,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날카로운 혐오성의 말들이 마음을 더욱 아프게 찔렀다. 성숙한 운명 공동체라는 말이 무색했고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은 여전히 도래하지 않았음을 무력하게 확인해야만 했다. 긴 코로나 시대가 우리에게 남긴 것이 함께함의 가치보다 각자도생의 냉혹함이었나 회의감도 들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건 발생 하루 뒤인 30일부터 11월 5일 밤 24시까지 국가애도기간으로 정하고 국정 최우선 순위를 사고 수습과 후속 조치에 두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슬픔'만을 강요하는 애도의 방식이 석연치 않다.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지난 역사 속에서 우리는 여러 번 '소'를 잃고서야 '외양간'을 고치는 비극을 뼈아프게 경험했다. 그리고 그 속에 온전히 해명되지 않는 '왜'라는 물음이 있다. 다시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 진정한 애도의 의미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생명이 우선시되는 안전한 사회에서 모두가 행복할 권리를 찾기 위해 우리 시대의 연대가 간절하다. 진정한 애도는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를 반추하고 바람직한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한 연대의 행위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하기 위해서는 '왜' 그곳에 갔는가에 대한 비난이 아니라 '왜' 그러한 참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가하는 물음이 전제돼야 한다. 또한 국가의 애도는 그 물음에 대한 해명이 우선돼야 한다. 죽음에 대한 사회적 과오와 그 의미를 인정받지 못하면 슬픔은 언제고 트라우마로 되돌아와 오랜 시간 괴롭힐 것이다.

참상에 대한 분노와 슬픔을 이 짧은 글로 전하며…. <김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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