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마라도까지 2시간40여분… 긴박했던 '분유 수송' 전말

[현장] 마라도까지 2시간40여분… 긴박했던 '분유 수송' 전말
생후 4개월·미숙아 "분유 떨어졌다" 신고에
제주해양경찰, 연안 구조정 투입 '수송 작전'
  • 입력 : 2022. 11.21(월) 15:22
  • 김지은 기자 jieun@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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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마라도 분유 수송 작전'에 나섰던 제주 해경이 연안 구조정으로 마라도 선착장 가까이에 접근한 뒤 분유를 던져 전달하고 있다. 이 분유는 마라도 치안센터 경찰이 건네받아 신고자에게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진=서귀포해양경찰서 제공

[한라일보] 지난 19일 오후 1시 5분쯤 국토 최남단 제주 마라도에서 긴박한 신고가 접수됐다. 생후 4개월 아이에게 먹일 분유가 바닥났다는 내용이었다. 이 신고는 서귀포해양경찰서 상황실을 거쳐 해경 화순파출소로 전달됐다.

"처음 신고자 분이 원한 것은 마라도 밖으로 나가는 거였습니다. 분유가 없으니 사러 가야 하는데 여객선이 결항해 못 나가게 되니 도움을 요청했던 거지요. 하지만 마라도 인근에 파도가 상당히 높은 상황이었습니다. 연안 구조정에 민간인이 아이를 안고 타는 건 위험할 수 있다는 판단에 '분유를 사다 드리면 되겠냐'고 물어봤습니다." 서귀포해경 화순파출소 소속 권영민 경장이 당시 상황을 전했다.

|긴박할 수밖에 없던 '분유 수송'… 힘 모은 대원들

'분유 수송'이 긴박했던 것은 아이 건강에 대한 염려 때문이었다. 생후 4개월 밖에 안 됐던 데다 미숙아로 태어난 아이였다. 먹던 분유를 함부로 바꿀 상황이 안 됐다. 권 경장은 "의료진에게 문의한 결과 분유를 바꾸거나 생우유를 먹일 경우 아이 상태가 불안해 질 수 있다고 했다"며 "꼭 그 분유를 가져다 줘야 했다"고 설명했다.

화순파출소 소속 해경 모두가 긴급히 움직였다. 우선 아이가 먹는 것과 '똑같은 분유'를 구해야 했다. 안덕면 화순리 인근 마트 3~4곳을 수소문했지만 같은 제품을 찾을 수 없었다. 권 경장은 "서귀포 시내에 한 대형마트에 문의한 뒤에야 똑같은 분유를 구할 수 있었다"면서 "마트와 가까운 (서귀포해경) 서귀포파출소에 구매를 부탁해 화순파출소와 중간 기점인 서귀포 중문에서 만나 분유를 전달 받았다"고 했다.

지난 19일 마라도 인근 해상의 높은 파도로 인해 해경 구조정 내부의 에어컨이 떨어진 모습. 사진=서귀포해양경찰서

|바다·육지 경찰의 빛난 '공조'… "기억에 남을 듯"

분유를 구했어도 마라도까지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풍랑주의보가 발효되진 않았지만, 마라도 인근은 3m 정도의 높은 파도가 일고 있었다. 관광객을 태우고 마라도 앞까지 갔던 여객선도 다시 회항한 날이었다. 별 신고가 없을 때면 해경도 "해상 순찰을 지양할 만큼"의 악천후였다.

그래도 연안 구조정은 시동을 걸었다. 류규석 경사의 지휘로 권영민 경장, 조재우 경장, 유기운 순경이 함께 배에 올랐다. 성난 파도가 선체를 때리는 충격으로 선내에 붙어있던 에어컨이 떨어졌고, 배의 속도도 붙지 않았다. 평소 같으면 20~30분이면 갈 거리를 40~50분이나 걸려 도착했다.

힘들게 마라도에 닿았지만 선착장에 접안하는 위험도 컸다. '바다경찰'과 '육지경찰'의 공조가 필수였다. 해경 연안 구조정이 최대한 선착장 가까이에 접근해 분유를 던졌고, 이를 마라도 치안센터 소속 경찰이 건네받았다. 그 시간이 오후 3시 50분쯤. 신고가 접수된 이후 불과 2시간 40여 분 만의 일이다.

권 경장은 "신고자 분이 경찰서에 전화를 해서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고 들었다"며 "모든 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도 세 살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어릴 때 아이가 분유를 바꿔 배탈이 나는 등 문제가 생겼던 경험이 있어 꼭 가져다 드려야 겠다는 마음이 컸다"며 "지금까지 근무하면서 처음 있는 일이라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지난 19일 분유 수송 작전을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 서귀포해양경찰서 화순파출소 B조. 앞줄 왼쪽부터 권영민 경장, 류규석 경사, 조재우 경장. 당시 함께 출동한 유기운 순경은 함정에서 근무하고 있다. 사진=권영민 경장

|부속섬만 67곳인 제주… 해경 수송 작전 잇따라

제주는 본섬을 제외하고도 67곳(유인도 8곳·무인도 59곳, 제주도 집계)의 섬으로 이뤄진 지역이라 해경의 긴급 수송이 필요한 순간이 잇따른다. 이번 '분유 수송' 같은 일은 특수한 상황이지만, 선거 때 섬에 설치된 투표함을 옮기거나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환자의 병원 이송을 돕는 데도 해경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제주지방해양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해경이 이송한 제주 도서지역 응급환자 수는 2020년 61명, 2021년 73명, 2022년(11월 21일 기준) 55명으로 모두 189명에 달했다.

제주지방해양경찰청 관계자는 "(분유 수송 같은) 이번 일은 현장에서도 흔치 않은 일"이라면서도 "선거 때 투표함 호송을 비롯해 도내 부속섬에서 응급 환자가 발생했는데 기상이 안 좋거나 여객선이 끊긴 상황에선 응급환자 이송도 맡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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