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때 내란죄를 뒤집어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박화춘(96)씨가 6일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에서 열린 재심 공판에서 진술하고 있다. 이상국 기자
[한라일보] 제주 4·3때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도 4·3희생자로 결정되지 않은 생존 수형인이 무죄를 선고 받았다. 4·3 희생자 '미결정' 수형인이 무죄를 선고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주지방법원 제4형사부(재판장 장찬수 부장판사)는 6일 박화춘(96)씨에 대한 재심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재판에서 피고인에 대해 유죄로 판단하려면 의심이 안될 정도로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죄를 입증할만한 증거가 전혀 없다"며 무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박씨는 1948년 12월 26일 제주도계엄지구 고등군법회의에서 내란죄로 징역 1년을 선고 받았다. 당시 검찰은 박씨가 정부를 전복할 목적으로 남로당 제주도당과 공모해 군인과 경찰을 상대로 무력을 행사하는 등 폭동을 선동했다며 죄를 뒤집어 씌웠다. 이후 박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천장에 거꾸로 매달리는 고문에 못 이겨 남로당 무장대에 보리쌀 두되를 줬다고 거짓 자백했다.
박씨는 억울한 옥살이에도 자녀들이 연좌제로 고통을 받을까봐 그동안 피해 사실을 숨기고 수십년을 살아오다 최근 4·3평화재단의 추가 진상 조사 과정에서 4·3 수형인으로 확인됐다.
이후 광주고검 소속 제주4·3사건 직권재심 권고 합동수행단(이하 합동수행단)은 지난 10월 27일 박씨에 대해 직권 재심을 청구했다. 박씨가 그동안 4·3희생자 신고를 하지 않는 바람에 희생자 결정을 아직 못 받아 제주4·3특별법에 따른 특별 재심 대상은 아니지만, 합동수행단은 4·3 당시 불법 수사를 받은 사실이 명백해 형사소송법에 의한 재심 사유에 해당한다며 직권 재심을 청구했다.
당시 합동수행단은 "고령인 점을 감안해 (박씨의) 명예를 신속히 회복할 필요가 있다"며 "생존수형인에 대해 형사소송법에 의한 직권재심을 청구한 최초의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밝혔었다.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법정에 출석한 박씨는 이날도 그동안 쌓인 한을 제대로 풀어놓지 못했다. 그는 최후 진술에서 "아이들에게 창피해서 말하지 못했다. 천장에 거꾸로 매달렸다고 어떻게 말하느냐"며 "자식을 먼저 떠나보냈는데, 나는 죽지도 않고 100살이 되도록 살았다. 나 때문에 이 많은 (합동수행단, 재판장, 법원 직원 등) 직원들이 고생한다. 나는 죽지도 않고 100살이 되록 살았는데…"라고 연신 말하고서는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6일 열린 제주43 생존수형인 박화춘 할머지 재심 재판에서 발언하는 오영훈 제주지사.
박씨는 무죄를 선고 받은 뒤에도 괜히 피해 사실을 말하는 바람에 재심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고생시켰다며 오히려 미안해했다. 이날 박씨의 재심 선고 공판에는 오영훈 제주지사가 방청객으로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재판부로부터 발언 기회를 얻는 오 지사는 "4·3으로 억울한 사람이 단 한분도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제주지법은 합동수행단이 청구한 직권재심 대상 4·3피해자 30명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로써 직권재심으로 누명을 벗은 4·3피해자는 이들과 박씨를 포함해 총 521명으로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