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20] 2부 한라산-(16)백록담은 ‘노르’ 중 최동단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20] 2부 한라산-(16)백록담은 ‘노르’ 중 최동단
‘바쿠노르’, 백록담은 ‘노르’의 최동단
  • 입력 : 2022. 12.13(화)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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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찮은 몽골의 호수 이름
아시아 전역에 ‘노르’

몽골엔 호수가 참 많다. 그런데 그 이름은 모두 '노르'로 끝난다. 우리말 호(湖)에 해당한다. 몽골에서 가장 큰 호수는 웁스노르(몽골어: Увс нуур, 로마자: Uws nuur)다. 우리식 표현으로 하자면 웁스호라고 할 수 있다. 면적이 3350㎢에 달하는 염호다. 제주도 전체 면적의 1.8배나 되는 넓은 호수다.

백록담은 '노르'를 공유하는 호수 중 최동단

두 번째는 홉스골노르(Хевсгл нуур, Hovsgol nur)다. 면적 2760㎢로 몽골에서 가장 큰 담수호이며 면적으로는 두 번째로 큰 호수다. 역시 제주도 면적보다 넓다.

세 번째는 하르우스노르(Har-Us nuur)다. 면적 1578㎢다. 네 번째는 캬르가스노르(Khyargas Nuur)다. 면적 1407㎢다. 다섯 번째는 비르노르(Buir nuur)다. 면적 615㎢다. 이렇게 모두 호수의 뜻으로 노르라 하는 것이다.

몽골 국내에만 호수를 노르로 쓰는 건 아니다. 국경 너머 인접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노르도 많다. 대표적인 곳으로 샤라 노르(Shara-Nur)를 들 수 있다. 이 호수는 바이칼호 오르혼섬에서 가장 큰 호수다. 치유력이 있는 것으로 유명한 광천수 호수로서 물에 녹아있는 미네랄 때문에 수영 후 몸이 붉어 보여 유명한 호수다. 이 샤라-노르라는 호수 이름은 부리야트어로 '노란 호수'라는 뜻이다.

몽골에서 세 번째 넓은 호수 하르우스노르.

몽골 이외 지역까지 퍼진 ‘노르’
시베리아, 중국에도 ‘노르’는 많아

카간 노르(Chagannur)는 중국 내몽골자치구 칠링골현에 있는 면적 21㎢의 염호수다. 이 이름 '카가~'는 몽골어에서 왔을 것이다. 몽골어에서 이 단어는 '흰'을 나타내는데 아마 염분으로 호수 주변이 희게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 붙은 노르가 호수를 의미하는 것이다.

코코 노르(Koko Nur)는 중국 칭하이(Qinghai province)성에 있는 호수다. 북동쪽으로 간쑤, 북서쪽으로 신장, 남동쪽으로 쓰촨, 남서쪽으로 티베트 자치구와 연접해 있다.

노르라는 이름의 호수 중 유명한 호수가 있다. 로프노르(Lop Nur 또는 Lop Nor)라는 호수다. 여기서 '로프'가 무슨 뜻인지는 명확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진흙으로 된'이라는 추정이 유력하다. 그러나 '노르'는 몽골어 호수를 의미하는 말에서 온 것이다. 이 호수는 타림 분지의 동쪽 신장(신장 위구르 자치구) 남동부의 타클라마칸 사막과 쿰탁 사막 사이 변두리에 있으며, 지금은 대부분 말라버린 염호다. 이 호수는 행정 구역상 로프 노르 진(Lop Nur town) 즉, 중국 이름으로 루오부포젠(罗布泊镇)에 있다. 그러니 이 행정구역 명칭 '로프'는 '나포(罗布)', '호수(Nur)'는 '박(泊)', '타운'은 '진(镇)'으로 구성했음을 알 수 있다.

이 호수는 빙하기에는 타림 분지 일대에 1만㎢ 이상을 차지했었다고 한다. 이 호수는 인접한 지역에서 흘러드는 물이 밖으로 유출되지 않는 내호다. 물이 흘러들기만 하고 밖으로 배수되지 않으면 염호가 된다. 들어오는 물에 녹아있는 각종 염분은 남기고 수천만 년 이상 수분을 증발시키기만 하므로 점차 농도가 짙어지기 때문이다. 이 호수는 1928년에 3100㎢로 측정됐지만 유입되는 강물을 막아 댐을 건설하고, 각종 용수로 사용한 결과 지금은 말라버려 계절에 따라 작은 호수와 습지만 형성될 정도가 돼 버렸다. 이 호수 유역엔 두께가 30~100㎝인 소금층이 형성돼 있다. 인접한 곳에 핵실험장과 칼륨 광산이 개발되어 있기도 하다.



제주도 서쪽 3300㎞ 밖에도 ‘노르’
6600㎞ 밖 카스피해에도 '노르'


이 호수로 인해 기원전 1800년쯤부터 9세기까지는 토카리아 문화가 꽃을 피웠고, 타림강과 로프노르의 풍부한 수자원은 실크로드를 따라 기원전 2세기부터 누란 왕국을 발전시킨 곳이기도 했다. 수많은 순례자, 여행자, 그리고 대상이 이 호수를 통과했다. 마르코 폴로도 이곳을 통과한 적이 있다. 그중 유명한 탐험가들이 있다. 독일의 지리 지질학자인 리히트호펜(1833~1905)은 '중국, 그 여행의 결과와 이를 기초로 한 연구'라는 책에서 처음으로 실크로드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오늘날의 실크로드라는 이름은 여기서 유래한다. 그런데 이 호수탐험의 정점은 스웨덴의 스벤 헤딘(1865~1952)이 찍었는데 그는 바로 리히트호펜의 제자다. 스벤 헤딘은 이 로프노르가 1600년을 주기로 이동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게다가 사라진 고대 도시국가 누란을 발견하는 공적을 남겼다. 이런 역사적 호수도 똑같이 노르라는 말을 쓴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부분이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우리에겐 먼 나라의 전설처럼 들리는 이 호수는 제주도에서 서쪽으로 3300㎞ 떨어져 있다. 지난 회에 설명한 이란의 네오르 호(Neor Lake)는 이란 북서부 아제르바이잔과의 국경 근처 바그루 산맥의 아르다빌에서 48㎞ 떨어진 곳에 있는 호수다. 카스피해 연안이라고 보면 된다. 이 호수는 로프노르 호수에서 또다시 서쪽으로 3300㎞ 떨어진 곳에 있다. 그러므로 제주도에서 보면 약 6600㎞ 서쪽에 있는 것이다. 호수의 의미로 노르라고 쓰는 곳은 몽골을 중심으로 한 거의 아시아 전역이다. 아마 '바쿠노르'는 그중 최동단일 것이다.

백록담은 '바쿠→바쿠노루→백록담'으로 순차적으로 변화했을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이같이 6600㎞나 떨어진 머나먼 지역에 호수를 의미하는 말을 똑같이 '노르'라고 쓰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닌가? 사실 호수를 지시하는 중국말이 호박(湖泊), 제(泽), 호(湖), 박(泊)이다. 이들은 우리말을 한자화하는 과정에서 빌려 썼다. 그중 호(湖)는 이제 거의 우리말의 자리를 꿰찼다. 그렇다면 호수의 순우리말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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