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연의 문화광장] 겨울, 하얀 미술관에서

[이나연의 문화광장] 겨울, 하얀 미술관에서
  • 입력 : 2022. 12.27(화)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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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매년 폭설이 내린 다음날 출근길은 버스를 탄다. 1100고지 진입로, 엄연히 중산간에 위치한 미술관 가는 길은 얼어있을 가능성이 크다. 40분 정도 일찍 일어나고, 30분 일찍 집을 나선다. 눈길을 걸으며 버스정류장까지 걷는 기분도 좋고, 버스에 앉아 눈내린 풍경구경을 하는 일도 한가로워 좋다. 벌써 3년째 맞는 미술관에서의 겨울이다. 재작년 이맘엔 낯설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빙판길의 버스를 탄 것 같고, 작년에는 기억이 별로 나지 않는 걸 보니 무덤덤했나 보다. 올해는 익숙하고 가뿐하니 여유로운 기분이다. 취임한 이후 코로나19의 영향에서 벗어나질 못했는데, 올해는 그 짐이 조금은 가벼워진 탓일까.

제주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전시장은 성황리에 오픈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관람객도 늘고, 부대프로그램 참여율도 높다. 단체 관람객이 부쩍 늘었고, 타지에서 일부러 비엔날레를 찾아 방문하는 이들도 많다. 작년 이맘때 비엔날레를 대체해 준비했던 프로젝트제주도 비엔날레만큼의 성과는 아니더라도, 제주 안에서 코로나 팬데믹 대비책을 강구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전시였다. 마찬가지의 맥락에서 개설한 온라인도립미술관도 가상공간에서 제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올해 가장 의미를 두고 싶은 전시는 '제주작가마씀'이다. 제주의 원로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조명하는 시리즈를 기획했다. 비엔날레가 끝나는 대로 두 작가의 작품 세계를 더 만날 수 있다. 지역미술사를 정립하는 데 초석노릇을 할 기본 전시라, 향후에도 잘 이어지길 바란다. 같은 시기에 산하의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이주작가의 전시는 작가의 유명세에 힘입어 개인전으로서는 놀라운 수의 관람객을 모으기도 했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났음을 알려주는 긍정적인 신호탄같은 전시였다. 이주작가 역시 제주작가이고, 다양한 제주의 원로작가분들의 저력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던 기회였다.

공공수장고에서 운영중인 실감콘텐츠도 저지리 예술인마을을 찾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된 듯하다. 공공수장고가 이룬 또 하나의 성취라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공사가 시작될 공공수장고 증축이다. 설계공모를 갓 마치고 당선작이 뽑혔다. 세상에 선보이기 전에 지난한 논의와 발전의 과정을 거쳐 보이는 수장고와 보존처리실을 갖춘, 제주에 꼭 필요한 시설로 지어질 일만 남았다.

비대면으로 이뤄지던 교육프로그램을 대면으로 하게 된 것도 올해부터다. 오랜만에 미술관이 북적이는 것을 보는 일이 생경할 정도였다. 유치원에서 현장학습 나온 어린이들이 열댓명씩 줄줄이 손을 잡고 나란히 서서 영상작업을 한참 보는 것을 보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곤 한다. 지난 3년은 모두에게 긴 겨울이었다. 올 겨울은 꽤 따뜻하게 금세 지날 것 같다. 내년은 한결 더 나아질 일만 남았다. 미술관에서 겪을 새해를 내가 설레며 기다리는 것만큼, 관객분들도 기대하고 기다려주시길. <이나연 제주도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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