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적 연구원 선발 절차 파고든 대학 비리

폐쇄적 연구원 선발 절차 파고든 대학 비리
사업 따낸 교수, 선발 과정서 절대적 권한
갑을 관계 학생들 부당한 요구 거절 못해
"공개 모집 통해 투명성 확보해야" 목소리
  • 입력 : 2022. 12.27(화) 14:53
  • 이상민기자 hasm@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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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교수가 '유령연구원'을 동원해 연구비 또는 보조금을 가로채는 사건은 제주를 포함해 전국 대학가에서 비일비재하게 있어왔지만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폐쇄적인 연구원 선발 절차와 대학 연구실에서 은밀하게 이뤄지는 비리 특성이 결합해 이같은 문제가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유령 연구원에 동원된 학생들=통상 대학 연구원은 전문분야 연구를 목적으로 대학 부속시설 등에서 연구를 수행하는 자와 연구 수행을 보조하는 자를 통칭해 일컫는다.

국가 연구과제 혹은 지자체 보조 사업을 따낸 교수, 이른바 연구책임자들은 해당 사업을 혼자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연구원들을 참여시킨다. 소지 학위 등 자격 요건만 맞으면 연구과제·보조사업을 따낸 교수와 이해관계에 얽혀있어도 연구원으로 참여할 수 있다. 다만 참여 연구원이 교수의 가족 등 특수관계인일 경우 미리 학교에 신고해야 한다.

대학원생과 학부생도 연구원으로 참여할 수 있다. 이들은 학내에서 '학생 연구원'으로 불린다. 지금까지 국내 대학에서 적발된 '유령 연구원' 대다수가 바로 이런 학생 연구원이었다.

이번에 고발된 제주대학교 A교수도 대학원생을 연구원으로 허위 등록해 인건비를 가로챘다. 감사 결과 A교수는 제주도가 사업비를 전액 부담하는 산업잠수 인력 양성사업을 수행하면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려 대학원을 다니던 제자 등 총 5명을 연구원으로 허위 등록해 이들 명의로 지급된 인건비 4400여만원을 빼돌린 것으로 나타났다.

갑을 관계에서 '을'인 제자들은 지도교수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고 자신의 명의를 빌려줄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공모제 대안 될까=연구원 선발 과정에서는 사업을 따낸 담당 교수가 절대적 권한을 행사한다.

'제주대학교 연구원 등의 인사관리에 관한 규정'과 '취업규칙'에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단기 계약직 연구원은 부속시설의 장 등이 추천해 총장 또는 단장이 임용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서 추천 권한을 갖고 있는 '부속시설의 장 등'에 연구사업을 따낸 담당 교수가 포함된다.

제주대학교 산학협력단 관계자는 "연구 과제에 대한 학문적 지식과 이해가 높은 이들이 참여해야 제대로 된 연구 실적을 낼 수 있고 구성원 간 팀워크도 매우 중요하다"며 "이런 이유로 연구원 선발 권한이 연구 책임을 맡은 교수에게 사실상 위임돼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같은 선발 방식이 비리에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점이다. 선발 대상이 교수의 지도를 받는 학생일 경우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인건비 횡령 의혹을 받는 A교수는 대학원생 제자들 중 명의를 빌려줄만한 이들을 미리 골라 허위 연구원으로 등록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공개 모집이 이런 폐단을 줄일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교수가 입맛에 맞는 학생을 선별해 선발하는 폐쇄적 구조에서 벗어나 학내 불특정 다수에게 연구원 참여 기회를 주는 등 보다 공개된 방식을 택하면 비리가 개입할 여지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실제로 서울시립대학교 공과대학은 학생 연구원을 공모로 선발하고 있었다. 이달 초 게시된 선발 공고에는 연구 과제명, 진행 방식·기간, 급여 등이 명시돼 있다.

대학 개혁 과제를 발굴해 온 대학교육연구소의 임희성 연구원은 "교수가 암암리에 제자를 연구원으로 허위 등록해 인건비를 빼돌리는 방식은 그동안 가장 흔하게 감사에서 적발된 비리들"이라며 "재정 지원사업의 경우 학생 연구원 공개 모집을 의무화해 제도화하는 것도 이런 유형의 비리를 막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학 내 비리가 만연할 때마다 각종 규제가 뒤따랐는데 이는 결국 학교의 행정적 부담을 가중시켜왔다"며 "스스로 발목을 잡는 결과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대학 내 자정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제주대는 A교수의 비위 행위를 계기로 내년부터 교수가 따낸 모든 보조사업에 대해 자체 감사를 벌이기로 했으며, 산학협력단은 학생 연구원을 상대로 연구비 부당 집행 등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 등을 묻는 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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