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한라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감·심사평] 시조부문 - 김미진

[2023 한라일보 신춘문예 당선 소감·심사평] 시조부문 - 김미진
  • 입력 : 2023. 01.02(월) 00:00
  • 오은지 기자 ejoh@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당선소감] 김미진 "소심한 문학소녀가 시조의 매력에 빠졌다"

당선 통보를 받던 날 감격의 눈이 내렸습니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에서와 같은 눈바람을 맞으며 하염없이 산으로 오르는 나를 보았습니다.

"독락당(獨樂堂) 대월루(對月樓)는/벼랑 꼭대기에 있지만/(중략)/누굴까, 저 까마득한 벼랑 끝에 은거하며/내려오는 길을 부셔버린 이"

조정권 시인의 '산정묘지'라는 시집에서 읽은 까마득한 벼랑 끝에 은거하면서 고통을 초극하는 시인의 모습으로 인식됐습니다. 시인의 정신의 높이에서 오는 기품과 기상에 기가 질려 잠시 뒷걸음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전에도 일찌감치 포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뭔지 모를 두려움으로 문학개론마저 수강 선택을 하지 못하고 쭈뼛거렸던 지난날들. 문학소녀였던 소심한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의 매력에 빠져 시와 시조를 독학하기로 마음먹었던 저는 혼자 답답하고 해갈되지 않아 해쓱한 창문을 열곤 했습니다. 3장 6구 정형의 틀은 인생 같았습니다. 그 안에서 고뇌하고 살아가라는 그런 계시 같은.

부족한 제가 덜컥 시조를 잡고 보니 겁이 납니다.

내 한 몸도 버거운데 결혼은 뭐고 아이는 뭐냐, 3포니 5포니 하며 피 같은 젊은이들을 보면서 사막 같은 한 시절도 끝이 있다고, 용기를 갖자고 오아시스 같은 편의점을 그려봤는데 많이 부족합니다.

웹소설 작가 멋진 경희, 멀리 스코틀랜드 노블레스 오블리주 멋진 동생 매실, 나를 아껴준 남편과 아들, 딸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부족한 저를 뽑아주신 심사위원님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1961년 광주 출생 ▷목포대학교 무역학과 졸업



[심사평] 시적 울림과 진정성 돋보여

심사위원: 오영호(시인) 김희운(시인)

응모작 303편 중에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작품은 50편이었다. 우선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울림이 큰 작품, 자질과 개성, 참신성을 생각하며 심사에 임했다. 코로나19 상황 속에서도 팬데믹 관련 작품은 볼 수 없었다. 나름대로 시상을 압축, 정형의 가락으로 쓴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아쉬운 점은 기성 시인의 작품을 지나치게 모방하거나 덜 익은 작품들도 있었다.

그중에 명량대첩의 주인공 성웅 이순신 장군을 제재로 노래한 '울돌목', 책 제본공 아버지를 소재로 장인의 삶을 노래한 '冊 양장점', 그리고 취준생의 어려운 삶을 노래한 '오아시스 편의점' 세 편을 주목했다. 오랜 숙고와 의논 끝에 '오아시스 편의점'을 당선작으로 정했다.

시조(時調)는 시절가조(時節歌調)의 준말이다. 즉 시대나 현실 인식을 함의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당선작은 훨씬 돋보였고, 시적 울림도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같이 투고한 4편도 든든하게 뒷받침해 주었다. 시적 화자는 가판대 상품같이 어디로 팔려 갈지 모르는 존재. 사막의 신기루를 만지다가 손이 찔리면서도, 끝내 오아시스(직장)를 찾으려고 가다 보니 유통기한만 늘려간다고 처절하게 고백하고 있다. 낯설지 않은 소재와 주제를 다루면서도 남다르게 은유와 진술로 진정성 있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마음을 울컥하게 하는 가편이다. 그러나 '인생' 같은 진부한 시어는 티다. 당선을 축하하며 앞으로 시조의 품격을 잘 살리면서 시적 울림이 큰 작품을 쓰기 위한 쉼 없는 정진을 바란다.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1034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