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28] 2부 한라산-(24)물장오리오름

[제주도, 언어의 갈라파고스 28] 2부 한라산-(24)물장오리오름
장백산은 노백산의 다른 이름 ‘노르바쿠올’에서 기원
  • 입력 : 2023. 02.14(화)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 글자크기
  • 글자크기
장올악과 장백산은 같은 어원

[한라일보] 장올악의 '장'과 장백산의 '장'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백두산이나 장백산이라는 명칭은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했다. '삼국유사'에는 통일신라 시대인 33대 성덕왕(702~737) 즉위와 관련된 왕위쟁탈전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그 가운데 백두산이 나타나고 있다.

'고려사절요'라는 책에는 "압록강 밖의 여진족을 쫓아내 백두산 바깥쪽에서 살게 했다"라고 해 백두산이 나온다. 성종 10년(991)의 일로 기록 당시의 시점으로만 보면 가장 오래된 사료다. 백두산이란 지명은 이후에도 꾸준히 이어진다.

장백산이란 이름도 썼다. 조선실록에서는 세종 13년(1431)에 "산은 장백산(長白山)으로부터 왔고, 물은 용흥강을 향해 흐르도다."라고 해 장백산이 나온다.

장백산은 현재 중국에서 백두산의 공식명칭으로 사용한다. 이 명칭은 중국에서 요금(遼金)시대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첫 기록은 요(遼) 성종 30년(1012)이다. 이같이 중국에서도 오래전부터 장백산이란 이름을 꾸준히 써왔다.

'흠정만주원류고'라는 청나라 책이 있다. 여기에는 백두산의 명칭을 '불함산', '태백산', '도태산', '백산', '태황', '장백산'으로 정리했다. 다산 정약용은 '불함(不咸)', '개마(蓋馬)', '도태(徒太)', '태백(太白)', '장백(長白)', '백산(白山)', '백두(白頭)', '가이민상견(歌爾民商堅)'의 여덟 가지 이름이 생겼다고 대동수경(大東水經)에 기술하였다. 이렇게 여러 이름이 있는 것이다.

북파 정상에서 바라본 백두산 천지. 고대인들은 천지와 쇄설물의 색깔 중 어느 특징에 더 깊은 인상을 받았을까?



장백산이 여진어 '골민 상기얀 아린'의 음역?
백두산과 장백산에게 빼앗긴 이름들

백두산의 이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해석을 하지만 이 글에서는 '머리에 호수가 있는 산'으로 정리한 바 있다. 그럼 장백산은 무슨 뜻일까? 이 지명은 여진어 '골민 상기얀 아린'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만주어에서 골민은 '긴', 상기얀은 '흰', 아린은 '산'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골민 상기얀 아린'을 한자로 옮기면, '長白山'이 되는 것이다. 중국의 여러 사서와 지리지서에는 '가이민상견아린(歌爾民商堅阿隣)'으로 표기되고 있다.

백두(白頭)는 흰 눈이 쌓인 머리의 이미지 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이에 비해 장백(長白)은 기다란 하얀 줄기의 이미지인데, 화산 폭발에서 나타나는 수증기가 길게 뿜어져 나오는 모습, 장기간 반복된 화산활동에 대한 기억과 경험으로 만들어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그 외에도 '적설', '하얀 부석'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는 입장이 있다. 또는 산 중의 우두머리라는 뜻이라는 설명도 있다.

그런데 이런 해석들은 중대한 오류가 있다. 바로 백두산 혹은 장백산 외의 명칭들을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랜 역사책이 아니라 근대에 들어 과학적 기법으로 조사한 기록에도 나온다. '장백산강강지략'(長白山江崗志略)은 청나라 유건봉(劉建封)이 1908년 작성한 일종의 보고서로 장백산 삼강(압록강, 두만강, 송화강을 말함)의 발원지, 산과 강 등 장백산 지역의 240개 이상의 지명과 장백산의 풍부한 동식물 자원을 자세히 소개한 책이다. 이 책에는 "장백은 옛날의 불함산이다… 당나라 사람들은 도태산(徒太山) 또는 보태백산(保太白山)이라 불렀고, 오대(五代) 때에는 태백산, 대백산(大白山)이라고 했다. 토착민들은 노백산(老白山)이라고 부른다"라고 했다. 저자 유건봉은 청나라 관리로서 1908년 5월부터 국경을 감독하는 감계 위원으로 임명되어 백두산을 답사하고 이 책을 편찬했다. 그의 임무로 볼 때 신뢰할 수 있는 기록이다. 여기에서 장백산을 토착민들은 노백산(老白山)이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천지 주변에 쌓인 화산쇄설물.

그 이후 한국 사람이 쓴 기록에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 있다. "만주인의 풍속에는 우리와 심상치 않은 연계를 가지는 것이 적지 않다. …만주인 중에는 이 풍습이 종족의 대원류인 노백산(老白山:백두산을 이름)을 위해 절하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자가 있지만, 어떨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만주인의 노백산 숭배는 매우 경건해서, 음력 3월 16일을 '산신(山神)루'라 해 집집마다 큰 제사를 지내는 풍속이 있으며, 산신은 바로 그들의 원조라고 여긴다." 이 글은 최남선의 '송막연운록'이라는 기행문에 나오는 대목이다. 그는 1937년 9월 25일부터 10월 15일까지 만주 일원을 여행했다. ( )내의 내용은 원문 그대로다.

장백산과 노백산은 같은 뜻

지금도 만주인들은 장백산을 노백산이라는 이름으로 쓰고 있을 것이다. 이 외에 태말산(太末山), 백산박자(白山泊子), 백산파자(白山派子), 수백산(水白山) 등이 역사서에서 추출된다. 이 이름들도 모두 호수 혹은 물과 관련된다. 만주어로 장백산을 '가이민상견아린(歌爾民商堅阿鄰)'이라고 했다는 것도 '장백산'을 이렇게 읽은 것이지. 이런 만주어를 '장백산'으로 기록했다는 주장도 믿을 것이 못 된다. 이런 이름은 16~17세기경부터라고 하니 오래된 기록도 아니다.

김찬수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장

수많은 저자와 연구자들이 이 이름들을 몰랐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해왔다. 아마도 이 이름에서 어떤 위대함이나 신격 같은 것을 느낄 수 없을 뿐 아니라 백두산 혹은 장백산이라는 이름과 연결 짓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백록동서원'이 있는 려산(廬山)은 로산(廬山), 즉 '노르~올'에 기원한다. 물장오리오름의 '장'은 호수를 나타내는 '노~르'를 표현하고자 '노루 장(獐)'의 훈가자를 차용한 것이다. 백록담에서 백록은 '바쿠노르'를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백두산 천지는 만주어로 '아브카이 노르(Abkai noor)'다. '하늘 호수'라는 뜻이다. 노백산의 '노백'과 백록담의 '백록'은 어순이 바뀐 형태이다. 노백산이나 장백산은 모두 '호수+호수+산'으로 원래는 '노르+바쿠+올'에서 기원함을 알 수 있다.

  • 글자크기
  • 글자크기
  • 홈
  • 메일
  • 스크랩
  • 프린트
  • 리스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밴드
기사에 대한 독자 의견 (0 개)
이         름 이   메   일
4616 왼쪽숫자 입력(스팸체크) 비밀번호 삭제시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