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의 건강&생활] 우울한 사람을 사랑하기

[이소영의 건강&생활] 우울한 사람을 사랑하기
  • 입력 : 2023. 02.15(수) 00:00
  • 김채현 기자 hakch@ihall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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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일보] 행복을 주는 모든 것들을 눈 앞에 두고도 행복함을 느낄 수 없고, 빠져나갈 길을 알 수 없는 절망과 불행을 견뎌야 하는 우울증이라는 병은 참 고통스럽다.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치명적인 질환이기도 하다. 우울증의 치료나 연구가 환자 본인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까닭에 환자를 곁에 둔 가족이나 친구가 겪는 어려움은 많이 거론되지 않는데, 우울증은 환자 본인뿐 아니라 그 주변 사람들의 정서와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도 각별한 주의와 관심이 필요한 질환이기도 하다.

흔히 감정에도 전염력이 있다고 말한다. 감기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염되는 것과는 다르지만 신이 나 있는 사람 곁에 있으면 같이 조금은 들뜨게 되고 어두운 사람 곁에 있으면 내 마음도 가라앉게 되는 건 인간이 가진 ‘사회 인지’ 기능의 산물로,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인간의 생물학적 특징이기도 하다. 또, 우울증에 시달리다 보면 스스로를 추스르는 것도 어려운데 다른 사람을 돌보는 건 더욱 어렵다. 우울증 환자의 가족, 특히 어린 자녀가 상처 받기 쉬운 이유이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가 우울증으로 고통받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지만 어떻게 하는 게 도와주는 건지 모르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저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에, 이걸 해 봐라, 저걸 해 봐라 권하게 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우울증 환자들은 그런 말을 들으면 뭘 하면 좋을지 몰라서가 아니라 알고도 할 수 없는 마음, 또는 무얼 해 보아도 행복을 느낄 수가 없는 마음을 전혀 이해 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더 좌절을 느끼기도 한다고 한다. 긍정적인 기분을 심어 주고 픈 마음에, 너는 이런 것도 있고 저런 것도 있고 감사할 일이 많지 않느냐고 밝은 면들을 알려주기도 한다. 그런데 그럴 때 우울증 환자들은 “나는 이런 행운을 가지고도 행복해할 줄,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구나” 하고 더욱 스스로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 되기도 한다고 한다. 어렵다. 이래서 마음의 병이 힘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역할은 그저 사랑하는 사람으로 곁에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대단한 응원을 하거나 극적인 치료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대해 들어주고, 존중해주고,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것 말이다. 상대방을 포기하거나 끊어내지 않았음을, 여전히 가족으로, 친구로 곁에 있다는 걸 알게 해주는 정도면 충분하다.

한 단체에서 우울증과 자살에 대한 인식을 환기하기 위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람들의 ‘마지막 사진들’을 모아 전시한 적이 있다. 자살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찍힌 사진에 나온 사람들의 모습은 비탄에 잠겨 있지도 눈물범벅도 아니고 의외로 너무나 평범하고 일상적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남의 속은 알기 힘들다. 있는 그대로 사랑하기,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고 올바르게 사랑하는 방법인가 싶다. <이소영 미국 하버드의대 정신과 교수·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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